새벽5시반 국회 상경한 성주군민…”유치원생 달래듯 우롱하고 있다”

[르포] “한반도 사드 반대” 성주군민들의 국회 방청 동행기

08:52

사드 배치 대정부 질의가 시작된 날, 성주군민들은 지역구 국회의원과 생각의 차이만 확인했다.

19일 오전 5시 30분, 성주군청 앞마당에는 관광버스 한 대가 서울로 올라갈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 새벽 버스에 올라탄 주민들은 저마다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한 지식과 입장을 공유하느라 바빴다. 마침 버스 안 TV에서는 이날 새벽 북한이 3발의 미사일을 쏘았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기자 뒤편에 앉은 한 주민은 “사드 이것 때문에 지금 3차 세계 전쟁이라 안 카드냐”며 불안함을 내비쳤다. 또 다른 주민은 “북한이 왜 핵을 만들기 시작했겠냐”며 미국과 중국 관계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어떤 이는 “사드 반대하러 가는데, 그런 얘기는 왜 하느냐”고 말을 끊기도 했지만, 주민들은 “무조건 한반도 사드 반대해야 한다”며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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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가 조금 넘어서야 국회 앞에 도착했다. 미리 마중 나온 이완영 의원실 보좌관이 주민들을 안내했다. 보좌관은 방청 중에 절대 소란을 피우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방문증을 쓰고, 핸드폰 등 소지품을 모두 맡긴 뒤 줄지어 4층 본회의장으로 올라갔다.

본회의장 앞에서 주민들은 검색대 앞에 섰고, 소란을 피우면 쫓겨날 것이라는 경고성 안내도 받았다. 회의장 안에서는 윤영석 새누리당 의원이 사드 배치의 필요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주민들은 몸을 최대한 앞으로 당겨 의원 발언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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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워커스 김용욱 기자]

모든 질문에 “북한 때문에…”라는 국방부
주민들, “저 정도는 우리도 다 알고 있다”

뒤이어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언이 시작됐다. 설훈 의원은 사드 필요성과 중국, 러시아와의 외교 관계를 우려한 질문을 시작했다. 사드가 북핵 방어보다 오히려 북한과 중국, 러시아 관계가 더 공고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끝나자, 주민들은 박수를 보내려고 했다.

몇몇 주민이 박수를 치는 순간, 본회의장 경호원은 곧장 인상을 쓰면서 “소란피우시면 안 됩니다. 이러면 나가셔야 합니다”하며 다가왔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사드 배치 반대 의견을 밝혀 반가웠던 찰나에 주민들은 이내 시무룩해졌다.

사드 배치 이유를 묻는 말에 황교안 국무총리,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북핵이 나날이 고도화되어 가고 있어…”, “국가 안보와 주민의 안전을 위해”라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한 주민은 “저 정도는 우리도 기사를 통해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 다 짜고 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어떤 이는 괜히 벽을 두드려 보기도 하고, 주먹을 줘 보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의 발언은 주민들의 화난 마음에 불을 지폈다. 그동안 왜곡보도로 시달렸던 ‘외부세력 개입’, ‘총리 감금’ 등이 김 의원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본인 고향이 성주라고 밝히며, “정부 당국에서 고생 끝에 결정했으니, 좀 이해해주시면 안 되겠냐”고 덧붙였다.

정경란 씨(47, 성주읍)는 “사실 기대는 안 하고 왔다. 김진태 의원은 아주 성주군민을 우롱하는 듯했다. 외부세력과 순수한 성주군민? 무슨 성주군민을 유치원생 달래듯이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완영 의원 발언 끝나자 뛰쳐나온 주민들
“한반도 사드 배치”아니면 국회의원도 기자도 거부

▲국회 본회의장 밖. 성주군민들이 이완영, 이철우 의원에게 따져 묻고 있다. [사진=워커스 김용욱 기자]
▲국회 본회의장 밖. 성주군민들이 이완영, 이철우 의원에게 따져 묻고 있다. [사진=워커스 김용욱 기자]

오전 내내 주민들은 속 시원한 정부의 입장을 듣지 못했다. 오후 2시, 다시 회의가 이어졌다. 오후 첫 발언자는 이완영 의원. 성주가 지역구인 이 의원에게 기대를 걸었다. 다시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 의원은 지역구 의원인 본인, 지방 정부, 지역 주민에게 정부가 미리 협의하지 않은 것을 지적했다. 또, 정부가 후보지로 내놓은 지역들과 평가 점수, 시뮬레이션 결과 등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30여 분이 지나도록 사드 배치 철회나 재검토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발언이 끝나려는 말미에 이 의원은 “성주읍민이 많이 살지 않는 지역을 찾을 수 있다면 찾아서 지역을 재선정해 볼 수도 있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주민들은 참았던 한숨을 터트리며 “에이, 나가자”, “그게 아니지. 사드 철회지. 뭐를 다시 선정하느냐”며 본회의장을 뛰쳐나왔다.

소란스럽게 하면 쫓겨난다는 경호원의 말에 화가 나면 주먹을 쥐고, 공감 가는 발언이 나오면 허공 박수를 치며 숨죽이고 있던 주민들이 우르르 일어나자 기자들 역시 우르르 따라나섰다.

한 주민은 카메라 기자들을 불러 세우며 “기자님들 똑똑히 보세요. 국회의원이 말을 저렇게밖에 못 합니다. 국회의원 뱃지가 아깝습니다. 왜 한반도에 사드 배치 철회하란 말을 못 합니까. 주민들 의견은 그겁니다”하고 소리쳤다.

뒤이어 발언을 마친 이완영 의원도 주민들을 따라 나왔다. 이 의원은  이철우 의원(경북 김천)과 함께 나와 성주 사드 배치 저지를 도와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충환 씨(55, 선남면)는 “우리한테 설득하려고 하지 말고 대통령을 설득하세요. 까놓고 말해서 새누리당에서 사드 안 된다고 말한 의원 있습니까. 성주가 아니라 한반도에 사드가 안 된다고요”라고 따져 물었다.

이어 한 주민은 이철우 의원에게 “성주 사드 반대하고, 김천으로 가면 의원님은 받으실 거냐”고 따지기도 했다.

주민들의 쓴소리는 따라 나온 기자들에게도 향했다. 이미 본회의장에서 여러 언론사 기자들이 주민 인터뷰를 얻지 못하고 포기한 상황이었다.

손호택 씨(61, 선남면)는 “한반도에 사드는 안 된다. 성주도 안 된다. 이러면 또 뒷부분만 잘라서 쓰라”며 “언론들, 언론의 자유 없지 않으냐. 똑바로 보고 우리가 하는 말 제대로 쓰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10여 분 동안 이완영 의원에게 항의한 뒤, 모두 국회를 빠져나와 성주행 버스에 올랐다. 한 주민은 “(국회에) 오나 마나다. 철회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재검토하겠다는 말은 할 줄 알았다. 정부가 설득한다고 사드 받으면 안 된다. 더 들어보나 마나다”고 말했다.

▲국회에 방청왔던 성주군민들은 일치감찌 성주행 버스를 탔다.
▲국회에 방청왔던 성주군민들은 일치감지 성주행 버스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