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이 내밀어 준 손, 제2의 인생을 살게 했다.

[사람, 삶, 노동조합] (1) 11개월 투쟁 끝에 복직한 경북대병원 배기숙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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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0 18:28 | 최종 업데이트 2016-07-20 18:29

[편집자 주: 조직률이 10% 미만인 한국 사회에서 노동조합을 경험한 사람들은 10% 안에 드는 사람이다. 긴 인생에서 한순간을 차지했거나, 인생의 동반자로 살아온 노동조합은 각자의 삶에서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의 운동을 버텨내게 해 줄 지지대를 꿈꾸는 ‘지역사회 노동자운동 지지모임’은 각자의 삶에서 노동조합은 어떤 모습일지 조명해보고, 의미를 추적해보고자 한다.]

뜨거운 땡볕 아래 사람들이 모여들고 울긋불긋한 깃발을 깃대에 달기 시작한다. 경북대병원에서 주차관리 일을 해왔던 노동자들이 해고된 지 259일째 되는 날, 대구지역 노동자들이 대구시청으로 모였다. 대구 유일의 공공대형병원인 경북대병원에서 벌어지는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문제에 대한 책임 있는 감독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주차관리 노동자들을 일터로 돌려보내자고 목청이 터져라 외치고, 경북대병원까지 뜨거운 아스팔트를 걸어 행진했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물을 마시며 삼삼오오 수다를 떨고 있는데 “소희쌤, 오랜만이에요.”라며 누군가 내 팔을 꼬옥 잡는다. 예전 칠곡경북대병원에서 해고됐다가, 투쟁을 통해 11개월 만에 경북대병원 본원으로 복직한 배기숙 씨다.

2012년 대선, “비정규직 정규직화 하겠다”는 박근혜 후보의 공약
공약이 사기였다는 사실을 폭로한 칠곡경북대병원의 노동자

2012년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길거리마다 붉은 현수막에 흰 글씨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는 박근혜 후보 공약이 걸려있었다. 비정규직 1,000만을 내다보는 한국. 대통령 당선 유력한 후보의 정규직화 공약을 보고 미심쩍은 마음이 살짝 들기도 하지만, 희망고문을 당하고 싶었을 사람이 한둘은 아니었을 거다.

결국,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정리해고와 복직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던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간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2012년 12월 21일 오전 8시 40분경 노조회의실 비상탈출용 소방기구에 스카프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그리고 얼마 후, 칠곡경북대병원 개원 당시 입사해서 갓 2년을 남겨둔 기간제 노동자 해고 소식이 들려왔다.

▲2013년 3월 21일, 농성장 앞에서 강연주(왼쪽)씨와 배기숙씨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스민 자료사진]
▲2013년 3월 21일, 농성장 앞에서 강연주(왼쪽)씨와 배기숙씨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스민 자료사진]

‘계약기간 만료’라는 해고통보를 받고 짐 싸들고 집으로 돌아갔다면 아무도 알 길이 없었을 일이다. 해고가 부당하다고 여긴 두 사람은 짐을 싸지 않았다. 칠곡경북대병원 앞에서 항의투쟁을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공약은 사기였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그 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배기숙 씨와 강연주 씨이다.

두 여성노동자는 2012년 말 해고통보를 받았지만, 자신이 해고된 그 자리에 또 다른 비정규직이 일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상시업무를 하는 이들을 계약직으로 채용해 해고할 것이 아니라, 정규직 전환을 주장했다. 결국, 칠곡경북대병원을 상대로 싸워서 복직을 이뤄냈다. 겨우 제자리로 돌아가는 데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결코 아깝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배기숙 씨는 처음 해고통보를 받았을 때는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계약기간이 끝날 즈음이기도 했고, 수술실 업무보조 6명 중 1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에서 기간제 해고노동자들과 간담회를 하자는 연락을 받았고, 이 자리에 참석했다.

“업무능력이 떨어져 무기계약 전환 안 된다”고 선전한 병원
학력도, 빽도, 연줄도 없었던 배기숙 씨 손을 잡아준 노동조합

병원은 개원 전부터 의료업무 일부를 외주화하려 했고, 이를 노조가 막아내 것을 노조가 막아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의료업무보조는 비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기로 병원이 약속했지만, 이를 어겼다. 병원은 자격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는 채용공고를 내서 42명의 업무보조 인력을 기간제로 뽑았다. 그러고는 2년을 앞둔 기간제 노동자 무기계약직 전환을 회피하는 방법을 찾았다. ‘근무평가’라는 이름을 들이밀면서, 해고 당사자들이 업무능력이 떨어지고 일을 못한다는 소문을 내는 등 악의적 선전을 했다.

자격증은 없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이 일을 못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배기숙 씨. 자격증 없이도 일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병원이기도 했다. 2년을 앞두고 다시 면접을 보자고 했을 때, 3명이 있었다. 1명은 대학졸업자, 또 1명은 전문대졸업자였고, 배기숙 씨는 고졸이었다.

1명은 교회장로 사모님이라서 심사위원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였다. 다른 1명은 언니가 수술실 정규직이었다. 기숙 씨만 빽이 되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학력도, 빽도, 연줄도 없어서 해고된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일을 못해서 해고했다는 소문을 듣고 억울함이 밀려왔다. 일을 못해서 해고된 거라면, 진즉 잘렸어야 했다. 병원은 6개월마다 직원평가를 했고, 기숙 씨는 매번 평가점수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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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경북대병원 앞 천막농성장. [사진=뉴스민 자료사진]

노동조합은 원래 정규직이 하는 일을 떼어내어 비정규직 일자리를 만든 병원의 구조적인 문제라며 해고통보를 받은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그래서 포기하지 말고 부당해고에 맞서 한번 싸워보자고 손을 내밀었다. 복직 투쟁을 하자고 설득하면서 힘이 되어 줄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일을 못해서 해고됐다는 소문에 주눅이 들었던 배기숙 씨에게 노조의 위로는 큰 힘이 됐다.

“그래, 이렇게 든든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냥 짐 싸들고 떠날 것이 아니라 한번 싸워보자”

경북대병원이 칠곡에 들어온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칠곡주민 기숙 씨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러던 가운데 우연히 자격증이 없고 나이가 많아도 괜찮다는 칠곡경북대병원 구인광고를 봤다. 아이들 다 키워놓은 전업주부일 때 슬슬 바깥일을 해볼 생각이었는데 반가운 소식이었다. 발 빠르게 이력서를 넣었고 금방 채용됐다.

근무지는 수술실이었다. 수술실 의료업무보조 인력은 6명인데 3명씩 한 조로 주야 2교대 근무를 했다. 수술실 바닥 청소만 빼놓고, 수술대 정리정돈과 청소, 벽 청소, 수술실 내 집기 정리, 환경미화 관리 등 궂은일을 다 했다. 간호사들은 친절했고, 6명인 업무보조원 간 사이도 좋았다. 병원은 동료들 사이에 갈등과 불화가 심하다고 소문냈지만,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배기숙 씨의 해고를 마음 아파했다. 미안해했지만, 병원 눈치를 봐야 했기에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을 뿐이었다. 기숙 씨도 무기계약직 전환 시점에 놓인 그들의 처지를 잘 알기에 원망해본 적이 없었다. 싸움이 끝난 뒤 그들과 다시 만나 옛날이 되어버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투사로 살아야 했던 11개월
막막했던 앞날, 잊혀지지 않았던 연대의 힘

싸움을 시작하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앞은 막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결정을 한 것 같아 후회한 적도 많았다. 해고되기 전 병원에서 계속 근무하려고 자격증 준비를 위해 마음먹고 200만원 넘게 들여 간호조무사 학원을 등록해놓기도 했다. 처지가 같은 강연주 씨 둘 뿐인 천막농성장을 자주 비울 수도 없는 터라, 내면의 갈등도 많이 겪었다.

결국, 낮에 학원가는 걸 포기했다. 낮에는 투사로 살고 심야시간을 이용해 간호실습을 했고, 아무도 모르게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땄다. 해고당사자만 있었더라면 한 달도 못하고 끝냈을 투쟁이었지만,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우성환 의료연대 대구지부장의 약속을 믿고 따랐다. 또, 김영희 의료연대 경북대병원분회장 같은 사람들이 있어 모진 시간을 견뎌냈다.

▲2013년 복직 투쟁 당시 배기숙 씨.
▲2013년 복직 투쟁 당시 배기숙 씨.

무엇보다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 있었다. 겨울, 눈을 쓸어내고 얼음을 깨어가며 병원 앞에서 집회를 준비했던 날이었다. 앞만 보며 연설하기 위해 무대로 올라선 기숙 씨 눈앞에는 마당을 가득 메운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발언하면서 눈물 콧물 흘리며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현장에 돌아갈 수 있으니까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울면서 소리쳤다.

그렇게 약속했지만 수십 번을 더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그때마다 의료연대와 민주노총은 기숙 씨와 연주 씨를 놓아주지 않고 끌어당겼다. 결국, 2013년 11월 의료연대 경북대병원분회 임금단체협상으로 두 사람은 복직했다.

원래 배기숙 씨는 칠곡경북대병원 소속직원이지만, 삼덕동에 있는 경북대병원 본원에 파견하는 방식으로 응급실 업무보조로 발령을 받았다. 그렇게 현장에서 일하던 기숙 씨에게 김영희 분회장이 요청했다. 주차관리 노동자들의 해고 철회 집회에 투쟁선배로 이야기를 좀 해 줄 수 있느냐고.

그러나 기숙 씨는 주차관리 해고노동자들의 천막농성장을 보고 싶지 않았다. 천막농성장을 보면 마음이 아파서 힘들었다. 그때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복직합의 후, 복직 일자를 정하지 못한 채 2014년 1월과 2월이 흘렀다. 합의가 뒤집히지 않을지 걱정하며 초조하고 불안했고, 쌓였던 스트레스와 심리 치유는 하지 못한 채 긴장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3월 복직을 하자마자 응급실의 정신없는 업무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자신을 돌볼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뒤늦게 후회했다. 그래도 주차관리 해고노동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 있었다. 배기숙 씨가 투쟁을 시작할 때 어느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포기하지 않고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는 날이 올 거다”라는 말을 그들에게 해주고 싶었다. 배기숙 씨도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다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믿으려고 노력하고 흔들릴 때마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의논하면서 다잡아나간 시간이었다. 배기숙 씨가 겪었던 것을 지금 투쟁하는 노동자가 똑같이 겪지 않는다고 해도 그 믿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투쟁해나간다면 언젠가 꼭 결실을 볼 날이 올 것이라고 기숙 씨는 말한다.

▲2014년 3월 복직해 경북대병원 본원에서 근무중인 기숙 씨. [사진=손소희]
▲2014년 3월 복직해 경북대병원 본원에서 근무중인 기숙 씨. [사진=손소희]

노조가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던 기숙 씨
“제2의 인생을 살게 해 준 노조”
“우리같이 싸움해본 사람은 노조의 절실함을 안다.”

칠곡경북대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할 때만해도 경북대병원에 노조가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노동조합이 먼저 배기숙 씨 손을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끝까지 일 못해서 쫓겨난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낙인찍고 자괴감에 빠져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라고 이야기해준 노동조합은 기숙 씨의 자존감을 지켜줬다. 투쟁할 수 있어서 자식들 앞에서 부끄러운 엄마의 모습으로 남지 않았다. 어쩌면 내게 제2의 인생을 살게 해 준 셈”이라는 노동조합.

▲2013년 열린 해고 철회 집회에서 노래에 맞춰 몸짓을 하는 배기숙 씨.(가운데) [사진=뉴스민 자료사진]
▲2013년 열린 해고 철회 집회에서 노래에 맞춰 몸짓을 하는 배기숙 씨.(가운데) [사진=뉴스민 자료사진]

“투쟁하는 동안 노동가요 정말 많이 따라 불렀는데, 무엇보다 노래에 맞춰 몸짓을 배워서 4050아지매들과 공연했던 것은 내 생에 잊혀지지 않을 기억이다. 투쟁하는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 만났고, 가는 곳마다 관심받고 격려받고 환영받았다. 앞으로 살면서 이런 대접 받을 일 또 있을까? 아마도 최고 사랑받았던 때가 아니었을까? 우리같이 싸움해본 사람은 노조의 절실함을 안다. 경험해봤던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늘 미안한 마음 안고 살고 있다. 병원 응급실에서 업무보조로 일하면서 3교대 근무를 하다 보니 피곤하다는 이유로, 시간이 안 맞는다는 이유로, 투쟁하는 곳이 이렇게 많은데 연대를 못하고 있어서 마음속에는 늘 돌덩어리가 얹힌 듯하다. 민주노총을 포함해 노조 간부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여전히 노동조합이 있어도 해고가 만연한 현실, 노동조합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노동조합 활동은 처음처럼 열심히 해 갈 것이라는 다짐을 밝히며 우리의 긴 이야기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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