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주권자로 생각하지 않는 시대착오 / 박성민

[연속기고] 한반도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 (5)

19:30

정말 답답하다. 해방 후 70여년 만에 경제적 성장과 민주적 발전을 이룩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사사건건 납득할 만한 제대로 된 설명을 해 주기가 이렇게도 어렵다는 말인가?

종말단계에 있는 높은 고도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방어체계인 사드(THAAD)를 한반도에 설치하면 도대체 어디서 쏘아 올린 미사일을 막겠다는 말인가? 북한에서 쏘아올린 미사일이 그렇게 높은 고도를 올라가 포물선을 그린단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중국이나 러시아, 일본에서 쏘아올린 미사일을 요격하겠다는 말인가? 종말단계의 고고도권역방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따지면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한국에 배치하는 사드의 그 첫 단어, 터미널(terminal)이 진짜 종말 단계의 미사일 요격에 방점이 찍혀 있는지 아니면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의 말단의(terminal) 탐지레이더에 방점이 찍히는지 대한민국 국민이 왜 물어볼 수 없다는 말인가?

우리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무기 체계라고 이야기할지 몰라도 과연 그 말을 주변국들이 믿어줄 수 있는 형편인가? 그래서 대외적으로 빚어지는 갈등과 위기는 고스란히 우리가 떠안아야 하는데 국가 안보를 위한 결정이기에 위임받은 자가 결정하면 무조건 따르라는 말이 타당한가?

서로 뿔을 걸고 뒷다리에 힘을 주어 대치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느 쪽도 편들지 않겠다고 한들 그 각축이 벌어지는 땅이 우리가 눕고 일어서는 땅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밀고 밀리는 발길질로 밟히고 차여 한바탕 혼란해지면, 어디로든 떠나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야 온갖 허세를 부리며 싸움의 흥을 돋우고 이문을 챙길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이 땅을 지키는 소리이며 몸짓이며 기운은 바로 이 땅에 부는 바람에 따라 눕고 일어서야 하는 우리다.

여전했던 120여년 전, 외세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라며 들불처럼 일어난 이 땅 민초들을 무참하게 진압한 것은 일본군과 이를 지원한 관군이었다. 주변 열강이 자국 이익을 추구하는 외교적, 군사적 행동은 전쟁의 돌풍으로 휘몰아쳤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대한제국의 중립 선언은 아무 소용도 없었다.

120년이 지나도 주변국의 복잡한 셈법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전혀 다른 우리의 신념과 헌법적인 근간이 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왕이나 황제가 결정하는 나라가 아니라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고 스스로 지키는 나라를 살아가고 있다는 믿음이다.

절반을 넘어 거의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던 성주군민들이 사드라는 전략적 무기 배치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단순히 우리 집 뒷산에 전자파를 발생시키는 레이더와 표적이 될 미사일을 가져다 둔다고 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절대적 지지를 받아 집권하고 지배적인 질서를 만들어오던 세력들이 이야기하듯 외부세력의 선동에 놀아난 탓도 아니다. 우리의 수 헤아림으로는 묘수가 될지 패착이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전략적 선택을 하면서 제대로 된 논의 한번 없이 폐쇄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성주군민뿐만 아니라 국민을 통치 대상으로만 여길뿐 주권자로 생각하지 않는 시대착오다.

[사진=청와대]
[사진=청와대]

북한, 중국 같은 나라는 그런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없다고 비난하는 우리이다. 그러하기에 더욱 대한민국은 국민이 나라의 정체나 미래에 대해서 주권을 가지고 결단할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고 스스로 확인해야 한다.

시민이 총기를 소유하는 것이 헌법적인 권리라고 믿는 미국이야 전략 무기를 통해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겠지만, 과연 그 무기로 이 땅 한반도에 평화를 이룰 수 있을지 근본적으로 되물어봐야 한다.

성경에는 신언(神言)을 전하는 예언자들이 나오는데 그들이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신에게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유명한 이사야라는 예언자는 소명의 이야기를 뒤로 미룬다. 소명의 이야기조차 뒤로 미루고 이사야가 외치는 고발은 오늘 한국교회와 우리 사회가 들어야 하는 예언들이다.

그 수많은 예배와 기도가 왜 응답되지 않는지, 어떻게 하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않고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을 수 있는지, 왜 예루살렘은 멸망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심판을 받아야 하는지 찬찬히 읽고 들어보라.

(하나님의 백성인)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이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이 너희의 집에 있도다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냐(사3:14,15)”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1:16,17)”

지킬 만한 가치를 함께 만들어가고 이뤄나가는 나라가 바르고 강한 나라이다. 결코 외부세력으로 우리나라의 주권과 평화를 지킬 수 없다. 인간으로서 존엄과 자유를 지키는 것은 바로 공의와 사랑을 행하는 우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