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사드를 반대하며 / 이민호

[기고] '휴전선'이라는 '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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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왼발 두 번째 발가락에는 조그마한 흉터가 하나 있다. 크기는 작지만 내 마음에 큰 두려움을 남긴 흉터다. 그 흉터는 국민학교 4학년,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건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던 때에 생겼다.

당시 가정 형편이 녹록지 않아 마당에 축사가 있는 시골집에서 살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가난함으로 얼룩진 시기였지만 어릴 적에는 나만 아는 비밀스러운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내심 흐뭇해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축사 한쪽에 쌓아 놓은 지푸라기 틈 사이로 ‘동굴’과 같은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에게 혼이 나거나, 친구들이 놀리거나, 심심할 때 조용히 틀어박혀 있기 좋은 공간이었지만 날카로운 작두와 가축용 주사 용품 같은 위험한 물건들도 함께 있었다. 하지만 지푸라기가 주는 편안함으로 인해 큰 위험성을 느끼지 못했다.

햇볕이 따스했던 어느 가을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날이 위로 고정되어 있어 별다른 의심 없이 왼쪽 발을 작두 아래 놓고 장난을 쳤다. 갑자기 헐거워진 안전장치가 풀리면서 고정되어 있던 작두날이 발가락을 강타했다. 뼈가 보일 정도로 날이 깊이 박혔지만, 고통을 참고 방으로 들어갔다. 마침 어머니가 일을 나간 후라 바로 병원에 가지 못하고 혼자 응급조치를 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고통을 느낄 새가 없었다. 며칠 뒤 병원에 갔지만, 의사 선생님께서는 바로 와서 조치하더라도 상처가 깊어 흉터는 피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발가락이 절단될 수도 있었는데 이 정도인 것도 다행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로 상처는 흉터를 남긴채 말끔히 나았지만, 날카로운 칼만 보면 마음이 두려워진다. 약이 마음까지 치료해주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도 그때의 생경한 경험이 칼이라는 것의 위험성을 체득하게 해주었고, 34년을 살아오면서 칼로 인한 안전사고는 아직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사드 배치 문제를 생각해보았다. “이 작디작은 상처도 개인에게 엄청난 두려움을 안겨 주는 데, 전쟁은 어떨 것인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 것 같다. 한국을 가로지르는 ‘휴전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참혹함을 모두 잊어버린 것 같다.

‘휴전선’은 1950년 6월 25일 발발된 전쟁이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협정으로 인해 그어진 군사분계선이다. 3년 동안의 전쟁을 겪으면서 희생된 사람들의 수를 합치면 약 600만 명에 달하고 민가와 공업시설도 대부분 파괴되었다. 또한 전쟁후유증으로 인해 슬픔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 정도의 피해를 겪어보았던 민족이라면 총과 미사일만 봐도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되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드 배치 문제를 바라보면 꼭 그렇지 않은 것 같다.

Allright ⓒ LeeMinHo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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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에 총력을 기울이는 자들의 행태를 보면 지금도 선명하게 그어져 있는 ‘휴전선’이라는 ‘흉터’를 마치 다른 나라, 다른 행성에 그어진 ‘흉터’로 치부하고 있는 것 같다. 전쟁이라는 역사를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것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며, 국가 안보를 이유로 군대를 확장하고 있는 모든 나라에 해당된다. 특히 전쟁 구도를 통해 실리적 이익을 구할 권력자들, 폭력이라는 본질은 보지 못한 채 안보라는 껍데기에 현혹된 사람들, 정의 실현을 위해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선택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지구 곳곳을 전쟁터로 만들고 있다. 그로 인해 무고한 생명들의 빛이 사라져가고 있다.

내가 칼을 꺼내면 상대는 총을 겨누게 되어 있고, 내가 손을 내밀면 상대는 손을 내밀게 되어 있다. “경제와 국방력을 통한 대북 압박이 ‘칼’이라면 북한의 핵실험은 세계를 겨누는 ‘총’이 아닐까?” 사드 배치는 남한을 보복의 굴레에 다시 걸어 들어가도록 강제하고, 처참했던 시간으로 회귀하도록 할 것이다. 그 시간 안에 우리의 세계가 존재했고, 우리의 아픔이 있었다. 지금도 아픔은 진행되고 있다.

오늘도 하얀 살을 가득 채운 ‘흉터’를 바라보면서 작두날이 한 번 더 나를 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푸른 초목이 가득 채운 ‘비무장지대’을 바라보며 우리 스스로 스스로를 해하지 않기를 그때의 처참함이 재현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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