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 사회주의의 시각에서 바라본 파리코뮌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는 자의 절대자유-아나키즘]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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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회주의의 시각에서 바라본 파리코뮌

맑스는 파리코뮌을 지켜보면서 『프랑스내전』을 썼다. 그리고는 코뮌이 패배한 직후인 1871년 5월 30일 국제노동자협회 총평의회(제1인터내셔널)에서 연설문의 형태로 발표하면서 파리코뮌을 적극 옹호한다.

칼 맑스는 『프랑스내전』에서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라는 의미에서 파리코뮌을 ‘프롤레타리아독재’(une dictature du proletariat; 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라고 평가했다. 그는 정치혁명과 사회혁명을 구분하고, 후자는 전자와 달리 자본과 국가 장치의 동시적 변혁을 요구한다고 본다. 즉, 사회혁명을 위한 과정은 집권을 위한 당이 아니라 노동자 통제라는 새로운 정치 형태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는 파리코뮌을 ‘새로운 정치 형태’로 보고, “코뮌은 본질적으로 노동자 계급의 정부였으며, 노동의 경제적 해방이 완성될 수 있는, 마침내 발견된 정치 형태”로 보았다(맑스, 9-10쪽).

파리코뮌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사회주의자는 맑스만이 아니었다. 엥겔스와 레닌 등 많은 사회주의자들은 파리코뮌을 열렬히 지지하였다.

“프롤레타리아독재. 좋다. 신사 여러분, 이 독재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은가? 파리 코뮌을 보라! 그것이 프롤레타리아독재였다.”(엥겔스, 파리코뮌 20주년 기념일인 1891년 3월 18일 런던에서 행한 연설에서)

하지만 ‘프롤레타리아독재’라는 표현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말이 “자본주의 독재(즉, 부르주아독재; une dictature de la bourgeoisie)를 해체해야 한다”, 즉 “자본이라는 ‘보편’을 해체해야 한다”는 뜻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자본’이 가지는 속성에 대해서는 레닌으로 대표되는 볼셰비키의 견해와 카우츠키의 견해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이재유, 365-396쪽). 이에 대해 이재유는 양자의 견해를 아래와 같이 정리하고 있다.

“하나는 자본이라는 보편 자체는 원래부터 선험적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상품 사회 내에서 여러 상품들의 ‘동의’를 거쳐서 존재했던 ‘일반적인 것’ 또는 ‘공통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다시금 새로운 ‘동의’를 거쳐서 새로운 일반적인 것 또는 공통적인 것을 도출해 내자는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이러한 ‘동의’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즉 자본이라는 ‘물신’을 가능하게 하는 ‘비물질적인 것’으로서의 실체로부터 다시 새로운 판을 짬으로써 자본의 ‘물신’(실체)성을 해체하자는 입장이다.”(이재유, 367쪽.)

『프랑스내전』은 맑스가 파리코뮌의 역사적 배경, 성과와 의미에 대해 쓴 책이다. 그런데 맑스가 국제노동자협회 총평의회(제1인터내셔널)에서 연설문의 형태로 보고한 1871년 5월 30일은 코뮌이 ‘공식적으로’ 진압된 지 이틀도 채 지나지 않은 날이다. 이때는 ‘자본이 가지는 보편의 해체’에 대한 논란보다는 ‘프롤레타리아독재’라는 표현 가운데 특히 ‘독재’가 가지는 부정적 의미가 가지는 파급 효과가 더 컸다. 그 때문일까? 맑스도 ‘프롤레타리아독재’보다는 ‘혁명적 독재’라는 표현을 선호하였고, 그의 생애 동안 이 표현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맑스와 엥겔스에게 그들 생애의 처음에서 끝까지 그리고 예외 없이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는 ‘프롤레타리아의 지배(rule)’, 즉 노동자 계급에 의한 ’정치권력의 획득‘, 즉각적인 혁명 이후 시기의 노동자 국가의 확립, 그 이상도 그렇다고 그 이하도 아니었다.”(Draper, 302쪽; 최갑수, 181쪽에서 재인용).

‘프롤레타리아독재’라는 표현은 블랑키(Auguste Blanqui)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그 후 마르크스가 ‘부르주아독재’로 명명된 과두정치체제와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사회의 이행단계를 ‘프롤레타리아독재’로 부르면서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종종 사용되었다. 사회주의자들이 ‘프롤레타리아독재’라고 부르는 파리코뮌의 ‘참된 비밀’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코뮌은 본질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정부였고, 점유계급에 대한 생산계급의 투쟁의 결과였으며, 마침내 찾아낸 노동의 경제적 해방을 수행할 수 있었던 정치형태였다. 이 마지막 조건이 없는 코뮌 헌법은 불가능한 것이었고, 몽상이었다.“(레닌99쪽).

마르크스를 비롯한 사회주의자들은 파리코뮌에서 국가가 소멸(절멸)한 ‘새로운 사회’, 즉 ‘새로운 정치형태’를 ‘발견’하였다. 그 점에서 코뮌은 사회주의혁명에 의하여 ‘마침내 발견된’, 노동의 경제적 해방을 수행할 수 있는 형태였던 셈이다.

레닌은 그의 저서 『국가와 혁명』에서 “모든 조직적·체계적인 폭력과 인간 일반에게 가하는 모든 폭력의 폐지”, 즉 ‘국가의 폐지(혹은 소멸)’를 사회주의혁명의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코뮌은 “국가의 폐지 혹은 소멸을 위한 이행단계”이다. 그를 비롯한 사회주의자들에게 파리코뮌은 국가의 폐지 혹은 소멸의 이행단계로서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실제 사례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레닌은 결론적으로 코뮌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코뮌은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분쇄하려는 사회주의혁명의 첫 시도이며, 분쇄된 것을 대체할 수 있고, 또 반드시 대체하여야 할 ‘마침내 발견된’ 정치형태이다.”(레닌, 100쪽.)

구소연방의 정치체제에서 보듯이 맑스의 ‘프롤테타리아 독재’가 ‘(공산)당에 의한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오히려 이 말은 사회(주의)혁명에 의해 달성된 ‘마침내 발견된 새로운 정치 형태’로서 ‘노동자 국가’로 이해하여야 한다. 파리코뮌은 맑스가 꿈꾼 ‘새로운 정치 형태’로서 ‘노동자 국가’, 다시 말해 그에게 파리코뮌은 ‘인류 최초의 노동자 국가’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