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 아나키즘의 시각에서 바라본 파리코뮌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는 자의 절대자유-아나키즘]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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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9 10:22 | 최종 업데이트 2016-09-09 10:22

6. 아나키즘의 시각에서 바라 본 파리코뮌*

1871년의 파리코뮌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정치는 물론 사상과 철학 등의 발전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그 가운데서도 아나키즘은 파리코뮌에게서 ‘사상과 실천의 세례’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파리코뮌 당시 바쿠닌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혁명적 사회주의(즉, 아나키즘)는 파리코뮌에서 비로소 인상적이고 실천적인 실증을 기획하고 있었다. 아나키즘은 파리코뮌에서 노예로 취급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방과 번영을 위한 유일한 길을 제시하였다. 파리는 부르주아 급진주의의 정치적 전통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 반면, 혁명적 사회주의에게는 현실적 기반을 주었다.”(Bakunin on Anarchism, pp. 263-4).

바쿠닌의 설명대로 파리코뮌은 파리라는 대도시가 국가나 중앙정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민들이 직접 그들의 대표를 선출하고, 구성한 조직을 중심으로 자치를 선언하고, 이를 현실적으로 실현했다는 점에서 아나키즘 사상과 많은 면에서 닮아있다. 미국의 아나키스트이자 여성주의자인 볼테린 드 클레어(Voltairine de Cleyre)의 표현을 빌리면, 파리코뮌은 ‘정치권력의 분산을 향한 일격’이었다(Voltairine de Cleyre, “The Paris Commune” Anarchy! An Anthology of Emma Goldman ‘s Mother Earth, p. 67).

코뮌의 이상과 현실은 아나키스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실제 루이즈 미셸, 르클뤼스(Reclus)형제, 유진 벌린(Eugene Varlin) 등 많은 아나키스트가 파리코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코뮌에 의해 시작된 개혁의 일례로, 작업장의 협동조합으로의 재개편을 들 수 있다. 이를 통해 아나키스트들이 협동노동의 이념을 실천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1871년 5월까지 43개의 작업장이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었고, 루브르박물관은 노동자평의회가 운영하는 군수공장이 되었다.

프루동의 주장을 따르는 기계공조합과 금속노동자협회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우리의 경제적 해방은 노동자협회의 형성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이를 통해서만 우리의 지위를 단순임금노동자에서 협회 소속노동자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코뮌노동조직위원회’(Commune’s Commission on Labour Organisation)로 하여금 자신들의 대리인에게 다음의 두 가지 목표, ①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와 노예제의 마지막 흔적의 폐지, ②공제조합과 양도불가능한 자본에 대한 노동의 조직화를 지지하도록 지시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평등을 공허한 말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코뮌이 보증하는 것이라고 아나키스트들은 기대하고 있었다(Eugene Schulkind (ed.), The Paris Commune of 1871: The View from the Left, p. 164). 기계공조합은 4월 23일 모임에서 “코뮌의 목적은 ‘경제적 해방’이어야 하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폐지하기 위해 연대책임을 지는 협동조직을 통해 노동자를 조직해야 한다”고 결의했다(Stewart Edwards, The Paris Commune 1871, pp. 263-4).

코뮈나르들은 자주관리형 노동자 협동조직뿐만 아니라 프랑스혁명 당시의 직접민주주의 지역모임과 유사한 민중클럽이나 민중조직과 같은 네트워크를 통하여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했다. “민중들이여, 자신의 공공집회를 통해, 또 자신의 언론(신문)을 통해 자치를 하자!”고 어느 클럽의 신문은 주장했다. 또 다른 신문의 기사를 인용하면, 코뮌은 결집된 민중의 표현이라고 간주되었다. 이 신문은 다음과 같이 힘주어 강조했다. “코뮌의 힘은 속박이나 예속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든 지역(동네)에 존재한다.”

파리코뮌에 의한 민중자치의 분위기에 한껏 고무된 프루동의 지지자이자 친구이기도 한 예술가 구스타프 쿠르베(Gustave Courbet)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파리는 “진정한 파라다이스다. … 모든 사회단체가 연합으로 스스로를 확립하고,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다.”(Martin Phillip Johnson, The Paradise of Association, p. 5 & p. 6). 당시의 파리의 분위기에 비춰보면, 그의 이 선언은 전혀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다.

또한 코뮌의 <프랑스 민중에 대한 선언>에는 많은 중요한 아나키즘 사상이 드러나 있다. 이 선언은, 사회의 ‘정치적 통일’을 “모든 지역적 발의의 자발적 협력, 만인의 행복 · 자유 · 안전이라는 공통의 목적을 향한 모든 개인의 에너지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결집”에 의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코뮈나르가 마음에 그린 새로운 사회의 기초는 “개인의 완전한 권리를 보장하고, 개별 프랑스인이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또 노동자로서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코뮌의 완전한 자치였다(“Declaration to the French People”, quoted by George Woodcock, Pierre-Joseph Proudhon: A Biography, pp. 276-7). 코뮌연합(또는 연방)이라는 이 비전과 함께, 바쿠닌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파리코뮌은 “대담하고 명확하게 계획된 국가의 부정”이었다(Bakunin on Anarchism, p. 264).

연합에 관한 코뮌의 사상은 프랑스 급진주의에 영향을 미친 프루동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1848년 프루동은 이미 ‘구속력 있는 위임의 실시’에 대해, 또 그의 저서 『연방의 원리』에서는 ‘코뮌연합’(federation of communes)에 대해 찬성하고 있다. 실제 파리코뮌 당시 코뮈나르는 유권자의 위임 명령에 구속받고, 그들이 원한다면 언제든 소환의 대상이 되었다. 파리코뮌은 대리인의 연합(a federation of delegates)에 근거한 ‘코뮌의 프랑스'(a communal France)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코뮌의 이 비전은 프루동의 사상과 같은 것이다(No Gods, No Masters, p. 63).

경제적 및 정치적 면에서 파리코뮌은 아나키즘사상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경제적으로 프루동과 바쿠닌의 협동생산이론은 혁명을 통하여 실천되었다. 정치적으로 코뮌이 연합주의와 자치를 요구하는 가운데, 아나키스트는 다음과 같은 비전을 보았다. “미래의 사회조직은 … 노동자의 자유협동조직 또는 연합에 의해 아래에서 위로 실행된다. 이 사호조직은 협동조직에서 시작하여 코뮌에게, 지방에게, 국가에게,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대연합에 도달한다.”(Bakunin, Op. Cit., p. 270).

그러나 아나키스트에게 있어 파리코뮌은 충분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코뮌은 대외적으로는 국가를 부정하고 있었지만, 내부에서는 국가를 부정하지 않았다. 바쿠닌이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듯이 코뮈나르는 자코뱅적 방식에 의해 조직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 크로포트킨은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자유 코뮌을 선언할 때 파리 민중들은 아나키즘의 주요 원칙을 선언했다. … 하지만 그들은 이내 좌절하고 말았다. 그리고 고대 시의회를 흉내낸 코뮌평의회에 자신들의 몸을 던졌다. 즉, 파리코뮌은 국가의 전통·대의제 정부의 전통과 결별하지 않고 그 독립과 자유연합을 선언함으로써 코뮌이 착수할 예정이라고 간주한 단순한 것부터 고도화된 것들에 대한 조직화를 코뮌 내부에서 도달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코뮌평의회가 관료적 형식주의로 꼼짝할 수 없게 된 참사의 원인이었고, 또 대중과 지속적으로 접촉함으로써 생기는 감성을 잃어버리게 한 원인이기도 했다. 이로 인하여 코뮌평의회는 혁명의 중심 세력-민중-에서 멀어지게 되어 무력화되었으며, 민중의 발의도 무효로 만들어 버렸다.”(Words of a Rebel, p. 97, p. 93 and p. 97).

또한 파리코뮌에서는 경제 개혁의 시도도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즉, 모든 작업장을 협동조합으로 개편함으로써 자본을 몰수하는 시도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협동조합 상호 간 서로의 경제활동을 지원하고 조정하기 위한 협동조직을 만들지도 않았다. 이에 대해 볼테린 드 클레어는, 파리는 “경제적 압제를 타격하는 데 실패했다. 파리가 도달하고자 했던 분명한 목표는 생기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녀가 생각하는 ‘파리가 도달하고자 했던 목표’는, “세계의 자본이 소유하고 있는 쓸모없거나 유해한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경제문제가 실제 생산자와 분배자 집단에 의해 합의를 통하여 조정되는 자유공동체”이다(Op. Cit., p. 67). 파리가 프랑스군에 계속 포위되어 있었으므로 코뮈나르들이 다른 일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던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크로포트킨의 말에 따른다면, 그런 자세야말로 재앙이었다.

“그들(코뮈나르들)은 경제 문제를 뒷전으로 하고 코뮌이 승리 한 후에 처리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그러나 그 후 압도적으로 패배하고, 중산층의 피에 굶주린 복수가 시작되었다. 경제 분야에서도 동시에 민중이 승리하지 않으면, 민중코뮌의 승리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또 다시 입증되었다(Op. Cit., p. 74).

파리코뮌의 경험을 통하여 아나키스트들은 분명한 교훈과 결론을 얻었다.

“만약 독립코뮌을 통치하는 중앙정부가 필요치 않다면, 또 만약 중앙정부를 폐지하고, 자유연합에 의해 전국을 통일할 수 있다면, 지자체정부도 마찬가지로 불필요하고, 유해하다. 바로 그 동일한 연합원리가 코뮌 내부에서 작동하는 것이다.”(Kropotkin, Evolution and Environment, p. 75.)

1789년~1793년의 프랑스대혁명 당시 파리지구(the Parisian “sections”)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파리코뮌은 그 내부에서 국가를 폐지하지 않고 직접민주주의에 따른 대중결사조직의 연합체를 조직하였다. 즉, 파리코뮌은 대의제정부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오히려 그로 인해 지속적으로 고통받고 시달리게 되었다. 이에 대해 크로포트킨의 비판은 신랄하고 엄중하다.

“민중들은 그들 스스로 행동하는 대신 통치자를 신뢰하고, 주도권을 그들에게 위임했다. 이것은 선거의 필연적 결과라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평의회는 곧 ‘혁명에 대한 최대의 장애물’이 되고, 그 결과 ‘정부는 혁명적이 될 수 없다는 정치적 공리’를 증명하고 있다.”(Anarchism, p. 240, p. 241 and p. 249.)

코뮌평의회는 민중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고립되었고, 그 결과 점점 그 존재는 무의미하게 되었다. 무의미해질수록 권위주의적인 경향이 대두되었으며, 평의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자코뱅파는 ‘혁명’을 테러에 의해 ‘방위’하는 ‘공안위원회’를 창설하려고 했다. 소수파인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는 그 위원회의 설치에 반대했다. 다행히 파리시민들도 그 위원회를 무시했다. 파리시민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본주의 문명과 ‘자유’의 이름 아래 그들을 공격하는 프랑스군과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1871년 5월 21일 정부군은 파리시에 돌입하였고, 7일간 장렬한 시가전이 계속되었다. ‘피의 일주일’이라 불리는 이 기간 동안 프랑스군 보병 부대와 부르주아의 무장자경단(武裝自警團)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무차별적인 살육을 자행했다. 시가전에서 25,000명 이상이 죽고, 항복 후에도 다수가 처형되었다. 그 시체는 집단묘지에 방치되었다. 장바티스트 클레망은 이때의 상황을 시 <피의 일주일>로 노래하였다.

내일이면 다시 경찰 나부랭이들이
거리에서 활개를 칠 것이다.
자기들의 복무를 뽐내듯
목줄에 권총을 차고서,
빵도 일자리도 무기도 없이
우리는 지배당할 것이다.
밀정과 경찰과
폭력적인 권력과 성직자들에 의해,
그래… 그것은 흔들리고
최악의 날들은 끝날 것이다.
그리하여 설욕전을 조심하라.
가난한 자들이 모두 함께할 때!(타르디, 319쪽.)

파리코뮌이 끝나고 부르주아들은 코뮌의 발생지인 몽마르트언덕에 사크레 쾨르 사원(la Basilique du Sacré Cœur de Montmartre)을 세웠다. 이 사원은 파리코뮌 동안 희생된 민중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지만, 실은 부르주아들을 위협하는 급진주의자와 무신론자의 반란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몽마르트언덕에 세워진 이 사원은 파리코뮌의 희생자들에게는 ‘마지막 모욕’인 셈이다.

*이 글은 아래 사이트를 참고하여 작성하였다.
<Anarchist FAQ> What is Anarchism? A.5.1 The Paris Commune
출전: https://en.wikibooks.org/wiki/Anarchist_FAQ/What_is_Anarchism%3F/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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