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 파리코뮌의 한계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는 자의 절대자유-아나키즘]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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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2 14:40 | 최종 업데이트 2016-09-22 14:40

 7. 파리코뮌의 한계

파리코뮌은 72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유지되고 사라져버린 ‘단명한 혁명국가’였다. 사회주의자들의 표현에 따라 파리코뮌은 ‘프롤레타리아독재’ 혹은 ‘노동자 국가’로, 아니면 ‘국가사멸’ 혹은 ‘국가폐지’의 역사적 사례로 볼 수도 있다. 오늘날에도 부르주아 계급은 여전히 건재하고, 국가 중심의 정치체제를 대체하는 ‘마침내 발견된 새로운 국가체제’는 당분간 출현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파리코뮌이 우리에게 던진 이슈는 가볍지 않다. 코뮌의 배경과 과정, 그리고 그 결과는 현대 사회의 발전과 진보가 어떻게 이뤄져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교훈과 영감을 주고 있다.

『프랑스 내전』에서 맑스는 파리코뮌의 실패 원인으로 다음 세 가지를 든다(최갑수, 147-154쪽).

코뮌의 첫 번째 실책은 부르주아계급에 대한 전격적 공격의 지연이다. 맑스는, 국민군 중앙위원회가 당시 완전히 무력한 상태에 처한 베르사유로 즉시 행군하여 티에르 정부를 끝장내지 못한 것은 코뮌의 결정적 실수였다고 보고 있다(맑스, 77쪽). 이 당시 코뮌은 새로운 혁명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내부 정비에 골몰하느라 베르사유군을 타격하지 못하였다. 코뮌이 머뭇거리는 동안 베르사유군은 파리를 제외한 프랑스의 다른 지역을 장악하고, 부르주아계급 중심으로 반혁명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코뮌은 재정조치의 확보에 실패했다. 코뮌은 프랑스은행을 곧바로 접수하여 베르사유군을 재정적으로 압박하고, 정치적 타협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해야 했는데, 이를 방치한 것은 ‘커다란 정치적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맑스, 20쪽). 맑스의 이 지적은 결국 코뮌 정부가 부르주아계급이 구축한 자본주의 중심의 소유제도 파괴에 철저하지 못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코뮌의 세 번째 실책은, 합법적 정당성에 대한 코뮌의 강한 집착에 기인한 것이다. 3월 18일 코뮌이 성립되고, 그 이틀 후인 20일 국민군 중앙위원회는 코뮌평의회의 구성을 위한 선거를 실시한다고 공포하고, 26일 선거가 실시됐다. 맑스는 국민군 중앙위원회가 권력을 잡자마자 새로운 기관에게 권력을 넘겨줄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엥겔스는 파리코뮌 20주년 기념일인 1891년 3월 18일에 쓴『프랑스 내전』독일어 제3판 서설에서 맑스의 코뮌에 대한 평가에 덧붙여 자신의 비판적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 글에서 엥겔스는 파리코뮌의 실패 원인으로 코뮌 내부의 분열을 지적하고 있다. 그와 함께 맑스와 마찬가지로 엥겔스도 프랑스은행을 통하여 재정을 장악하지 못한 코뮌의 안이하고 무능에 대해 이렇게 안타까운 심경을 밝히고 있다.

“코뮌의 수중에 있는 은행, 이것이야말로 만 명의 인질보다 더 큰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렇게 하였더라면 프랑스의 부르주아 전체는 코뮌과의 강화에 관심을 갖도록 베르사유 정부에 압력을 가하였을 것이다.”(맑스, 24쪽.)

그리고 엥겔스는 코뮌은 처음부터 다음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고 꼬집는다. “노동자 계급은 일단 지배권을 획득하면 낡은 국가 기구로는 더 이상 관리해 나갈 수 없다.” 노동자 계급이 지배권을 획득한 이상 자신들을 반대하며 이용되어 온 모든 낡은 억압 기구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엥겔스가 주장하는 핵심이다(맑스, 27쪽).

엥겔스의 이 주장은 아나키스트의 코뮌 실패에 대한 비판적 견해와도 맞닿아 있다. 즉, 아나키즘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코뮌의 실패가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중앙집권적이지 않은(즉, 분권형) 커뮤니티연합은 자유사회에 필수적인 정치형태이다. 그런데도 코뮌은 그 내부에서 국가를 폐지하지 못했고, 오히려 대의제 정부를 유지하였다. 그것이 코뮌의 갈등과 분열을 가져오는 원인으로 작용했으며, 결국 코뮌의 실패로 이어졌다. 크로포트킨이 “독립 코뮌이야말로 사회혁명이 취해야 하는 형태”라고 비판하는 이유이다.

둘째, 코뮌보다 상위의 정부는 물론 코뮌 내부의 정부가 필요한 이유 같은 것은 없다. 즉, 아나키스트의 커뮤니티는 자유롭게 협력하는 지역(동네) 모임이나 작업장 단위의 모임(연합)에 근거하여 운영되어야 한다. 물론 파리코뮌도 부르주아가 버리고 떠난 일부 작업장을 협동조합으로 개편하고 운영했다. 하지만 아나키즘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자본의 몰수 내지는 폐지로 나아가지 못했고, 협동조합 상호 간의 유기적 연결과 지원 체제도 구축하지 못했다. 베르사유군의 군사진압에 맞서 싸우면서 내부 결속과 혁명을 수행해야 하는 코뮌의 현실적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코뮌의 실패는 “소유는 도둑질이다”라는 프루동주의로 대표되는 아나키즘이 민중권력을 통해 어떻게 사회혁명을 달성해야 하는가에 대한 훌륭한 교훈을 준다.

셋째, 정치혁명과 경제혁명을 사회혁명으로 통합해야 한다. 크로포트킨의 이 말은 여전히 적절하다. 이에 덧붙여 그는 코뮌을 엄중하게 비판한다. “코뮈나르들은 가장 먼저 코뮌을 강화하려고 의도함으로써 사회혁명을 뒷전으로 했다. 그런데 그들이 무엇보다 가장 먼저 추진했어야 한 유일한 방법은 사회혁명을 통하여 코뮌을 강화하는 것이었다!”(Peter Kropotkin, Words of a Rebel, p.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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