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성주여, 성주여! -겨레의 십자가를 진 성주여- / 이순일

18:54

성주여, 성주여!
-겨레의 십자가를 진 성주여-

이순일

성씨(姓氏)의 고향이여
참외의 고장이여
고인돌의 동네여
가야의 옛 고을이여

학생들 소풍 가던 성산에
미사일 부대가 들어서
읍네 사람들 얼씬도 못하게 하더니
이제는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하고도 요상한
사드를 배치한단다
참외처럼 깎아 먹는 거냐고?
장아치 담아 먹는 거냐고?

자자손손
땅 파먹고 살아왔어
충효예 가르치고 배우며 살아왔다고
일번만 나랏님으로 알고
일번만 찍으며 살아왔다고

뒷통수 치는 것도 유분수지
한 마디 의논도 없이
주민들 쫓아내면
누구를 위한 사드냐고
무엇을 위한 사드냐고

전자파 5.5Km에
벌이 다 죽는다는데
참외꽃은 무엇으로 수정하며
사람들은 어디 가서 어찌 살꼬

텔레비전에 비치는
데모하는 미친놈들
밥먹고 할 짓 없으니 저 지랄이제
여기며 살았느니
니가 내 돼보라고.
오늘은 성주 사람들
남녀노소(男女老少) 구백여덟 명
생머리를 자른다
백 명 넘는 미용사들
주민들 끓는 가슴을
눈물로써 빡빡 민다

어리석은 백성들도 살아야 한다
모두들 살려고
일하고, 잠자고, 밥먹고, 똥누고
하는 일인데
물어보자 사람들아,
도대체 ‘사드’란 괴물은
살려고 하는 일인지
죽으려고 하는 일인지
무기장사를 위함인지
미국의 별들을 지키기 위함인지
일본의 도쿄를 지키고 싶음인지
누구네의 불알을 보기 위해서인지
말씀 좀 하시라요

유순한 백성들도 살아야 한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무지랭이도 무지랭이도 글쟁이도 글쟁이도 의사회도 약사회도 농민회도 작목반도 성주시장 상인회도 74회 동창회도 송죽매란(松竹梅蘭) 여성회도
여남소노(女男少老)
모두들 꿈틀한다

살기 위하여
산천초목조차 외치고 있다
“배신자의 끝트머리를 똑똑히 보여주마.”

*이 글은 9월 26일 경남도민일보 ‘독자시’ 란에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