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관측 이후 최대 규모(5.8) 지진이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이후 양산단층 사활(死活)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양산단층이 활성단층이라고 지적하며 인근 원자력발전소, 산업단지 안전 문제를 우려했다.

활성단층은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단층으로 국가마다 구분 기준이 다르다. 우리 정부는 지표나 지표 가까이에서 단층이 움직인 흔적이 현재부터 3만 5천 년 이내에 1회 또는 50만 년 전 이내 2회 이상 발견될 때 활성단층으로 인정한다.

학계는 1983년부터 양산단층 활성을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와 원자력계는 이를 부정하기 바빴다. <뉴스민>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연구자료와 언론보도 확인 작업을 통해 양산단층 ‘사활’논쟁을 짚어봤다. 양산단층 사활 여부는 우리의 사활이 걸린 일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원전 밀집도가 가장 높다.

1.
1983년, 1차 사활논쟁
서울대 명예교수 이기화
“미진 조사 결과 활동단층”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양산단층 활성을 지적한 학자는 이기화 서울대 명예교수다. 이 교수는 1983년 9월 ‘양산단층의 미진 활동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해 양산단층 활성을 지적했다.

논문은 1982년 8월 26일부터 12월 17일까지 양산단층 일대에서 일어난 규모 1.1~2.7 범위의 미진(微震)을 분석했다. 논문에서 이 교수는 양산단층의 미진활동이 “샌 안드레아스(San Andreas) 단층과 같은 전 세계 다른 활성단층의 미진활동과 비슷하다”며 양산단층이 명백한 활성단층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미진활동 분석뿐 아니라 “양산단층이 통과하는 경주에서 진도 8 이상 지진이 최소한 10회 발생했다”는 역사기록도 근거로 제시했다. 이 교수는 이 연구를 근거로 다음해 당시 과학기술처(현 미래창조과학부)에 지진연구소 설립을 제안했다.

경향신문 보도(1983년 11월 24일)를 보면, 이 교수는 “지진의 위험성이 심각하게 논의되기 전에 핵발전소와 고층건물 등 기존주요시설물은 물론 앞으로 세워질 각종 시설물을 지진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장기적 연구가 필요하다”며 지진연구소 설립 필요성을 강조했다.

▲1983년 11월 24일 경향신문 보도
▲1983년 11월 24일 경향신문 보도(자료=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하지만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한민국 최초 지진연구소는 이로부터 14년 지난 1997년에야 세워진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현재는 이마저도 소장을 중심으로 수 명의 인원이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당시 정부는 오히려 한국동력자원연구소(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전신, 이하 동자연)를 통해 이 교수 주장을 반박했다. 경향신문 보도(1984년 3월 27일)를 보면 동자연 김성균, 조동행 박사팀은 ‘경상분지의 미소지진활동에 관한 연구’ 논문을 통해 이기화 교수가 채택한 지진기록 중 다수가 인공 발파에 의한 지진을 포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 교수의)조사기간 중 지진규모 3이하의 미진은 이 교수의 연구결과보다 10분의 1인 10일에 한 번꼴로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이기화 교수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이 교수는 ‘양산단층의 지구물리학적 연구(1984)’ 논문을 통해 동자연 주장을 반박했고, 2010년 ‘한반도 지진활동과 지각구조’ 논문에서는 “양산단층이 활성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김성균과 조동행(1984)이 이 일대의 인공폭파에 의한 지반진동을 미진으로 오인하였고, 불합리한 해석방법으로 성급한 결론을 내려 양산단층을 활성단층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반론을 제기했다”며 “이 반론에 대해 이기화가 미소지진들이 폭파지진이 아니고 실제로 발생한 지진임을 입증하였고, 해석방법이 불합리하다는 이들의 주장이 지진학적으로 타당하지 않음을 밝혔다. 이로부터 양산단층이 비활성임을 주장하는 어떤 반론도 제기되지 않았다”고 썼다.

2.
1993년 2차 사활논쟁
일본연구진, “양산단층은 활동 중인 단층”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양산단층 사활논쟁은 일본 연구팀에 의해 다시 제기됐다. 1991년 8월 14일자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8년여 동안 되풀이돼 온 양산단층 지진대의 사활논쟁이 종지부를 찍게 됐다”며 동자연과 일본 4개 대학(교토대, 나고야대, 규슈대, 요코하마 시립대) 연구팀이 공동으로 양산단층 연구에 돌입한다고 알렸다.

▲1991년 8월 14일 경향신문 보도
▲1991년 8월 14일 경향신문 보도(자료=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그리고 2년 뒤, 1993년 10월 3일 동아일보에는 “부산~포항 활단층 지진가능성, 인근 원전 안전성 재검토 필요”라는 짧은 기사가 실렸다. 91년 동자연과 일본 공동연구팀 연구결과를 알리는 기사는 “부산과 포항을 잇는 지층에 현재도 활동 중인 단층(활단층)이 있다는 사실이 한일 공동연구팀에 의해 최근 확인됐다”고 밝혔다.

보도는 “이번에 발견된 양산단층은 길이가 약 1백 70km로 해저까지 이어져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특히 이 단층 인근에는 고리, 월성, 울진 등의 원자력발전소가 모여 있어 원전의 안전성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이 단층은 동서방향으로부터의 힘에 의해 연평균 0.05~0.1mm 정도 남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측정됐다”고 설명했다.

▲1993년 10월 3일 동아일보 보도(자료=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3년 10월 3일 동아일보 보도(자료=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해당 연구결과는 그해 10월 국회 과학기술처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국감에서 해당 문제를 지적한 사람은 대통령 당선 후 원전 세일즈에 열을 올린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1992년 14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이 전 대통령은 1993년 10월 8일 과기처 국감에서 해당 연구결과를 거론하며 “그곳(양산단층)이 지진대가 되어 위험하다 이렇게 지도와 위치를 그려서 보도가 되었으면 과기처는 그 문제를 보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정부 관계자들이 양산단층은 활성단층이 아니라고 답변하자 이 전 대통령은 “과학기술이라는 것이 60년대 말에 발전소 세울 때 조사했던 기술보다는 20년이 지난 지금은 많은 발전을 해서 연구를 하는데도 많은 발전을 했을 것”이라며 “20여 년 전에 조사한 기술을 믿고 단정적으로만 할 것이 아니라 외국의 기관이지만 자체비용을 들여 조사해 준 것은 진지한 자세로 받아들이라”고 꾸짖었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에도 양산단층 활성을 부정했다. 1983년 당시 이기화 교수의 연구결과를 반박했던 한국동력자원연구소는 이 무렵 한국자원연구소(이하 자원연)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로 분화했고, 자원연은 일본 연구팀 연구결과를 두고 “확대해석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강필종 당시 자원연 부소장은 60년대 국내 지질전문 연구결과와 79년 항공사진 및 인공위성 영상 등을 이용한 지형, 지질학적 조사 결과 활성단층으로 간주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3.
1997년, 3차 사활논쟁
이기화 교수 연구팀, 울산 일대 활성 근거 발견
97년 6월 경주서 4.2 규모 지진까지 발생

1997년은 양산단층 활성을 부정해온 정부와 원자력계가 당혹스러웠던 해다. 97년 5월 이기화 교수는 양산단층 활성과 관련한 새로운 증거를 제시했다. 97년 5월 12일 한겨레는 이기화 교수, 경재복 한국교원대 교수, 오카다 일본 교토대 교수 등 ‘양산단층의 활성관계 한일공동연구팀’이 울산 중남초등학교 앞 등 울산 일대에서 양산단층을 활성으로 추정할 수 있는 단층구조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이 교수 연구팀은 6월 20일 학술강연회서 연구결과를 보고하면서 재차 “양산단층이 지진 재발 가능성이 있는 활성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술강연회에는 정부 쪽 연구진도 참석했다. 최위찬 자원연 방재지질연구센터 박사는 “과거 지진으로 생긴 단층을 발견했다 해서 모두 활성단층으로 규정할 수 없다”며 “활성 여부를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 단층 발견 지점 시료를 채취, 캐나다 연구기관에 절대 연령측정을 의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해 6월 26일 한반도에 진도 4.2 규모 지진이 일어나면서 정부를 혼란스럽게 했다. 당초 정부는 포항 남동쪽 해상 94km 지점을 진앙으로 지목했지만, 7월 다시 경주시에서 남동쪽으로 9km 떨어진 지역으로 정정 발표했다.

그러자 언론은 정부가 양산단층이 활성이라는 사실을 감추려고 최초 진앙을 속였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진앙이 월성원전으로부터 약 15km 떨어진 지점이라 의혹은 더 짙었다.

경향신문(1997년 7월 3일자)은 “진앙지를 밝혀낸 한국자원연구소는 과기처 산하의 출연연구소로 조사결과를 과기처 고위관계자에 곧바로 보고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과기처는 원전부지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 주민들의 반발을 예상해 조사결과를 놓고 부심한 것으로 보인다”고 조사결과 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진앙이 양산단층 일대고, 원전과 가깝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는지 경향신문뿐 아니라 언론 대부분은 기사를 쏟아냈다. 매일경제(1997년 7월 4일자)는 “지난달 26일 발생한 진도 4 규모의 지진 진앙지가 기상청이 당초 발표한 동해안이 아닌 월성원전 인근 내륙인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고 썼다.

하지만 정부 반응은 얼마 전 진도 5.8 강진에 대응한 것과 한치도 다름이 없었다. 정부는 “원전을 건설할 때 리히터 지진규모 6.5에 대비해 설계했기 때문에 큰 문제 없다”는 입장을 반복해서 밝혔다. 또, 이기화 교수 연구팀 연구결과도 부정했다.

세계일보 보도(7월 1일자)를 보면 최위찬 자원연 박사는 “분석 결과 등을 종합할 때 주단층인 양산단층은 50만년 내 1회의 단층운동을 한 것으로 밝혀져 원자력법이 정한 활성단층 범위를 벗어났다”고 말했다. 50만년 내 2회 이상 운동한 단층을 활성단층으로 본다는 원자력법상 기준을 충족하지 않은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대신 같은 해 9월 경주 외동읍 말방리 일대 말방리단층은 원자력법 기준에 부합하는 활성단층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최위찬 박사는 “말방리 단층이 앞으로 큰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단층인지 아니면 단순히 산사태나 지반침하에 의해 지표면만 끊어진 것인지는 불분명하다”며 지진 위험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정부 역시 말방리 단층이 월성 원전과 12km 떨어져 있다는 점을 들어 “원전 반경 8km 활성단층이 없어야 한다는 원자력 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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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분지 일대 단층 분포 현황 및 지난 9월 12일, 19일 발생한 지진 진앙(자료=환경운동연합)

4.
2000년대, 계속 제시되는 활성 근거
1983년부터 2016년까지 정부 반응은 동일

2000년대 이후에도 이기화 교수 등 학자들은 양산단층이 활성 단층이라는 근거를 제시하며 대규모 지진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는 번번이 이를 외면했다. 다만 2000년부터 자원연 후신인 한국지질과학연구원 등을 통해 조사활동은 계속했고, 양산단층을 제외한 경상분지 내 단층 23개 중 단층 8개의 활성을 인정했다.

2006년 영남일보는 “2001년 한국지질과학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월성원전 주변은 지진발생 위험이 높은 8개 활성단층이 불과 5km 거리에 있다”며 “정부 산하 연구소가 단층대의 존재를 당시 처음 인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경주 월성 일대에 새로운 원전(신월성)을 짓거나 방폐장을 짓는데 꺼림이 없었다.

원자력 활성화 정책은 30년째 변함이 없었다. 지난 22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용환 원자력안전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내진설계를 기존 원전 0.2g. 신규 원전은 0.3g로 한다. 0.2g는 10~15km 내에서 규모 6.5 지진, 0.3g는 규모 7.0 지진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다”

1983년부터 2016년 현재까지 정부 반응은 한결같다. 이들에게 규모 6.5 이상 지진이 일어나면 어떡하느냐는 물음, 규모 8의 지진도 경주 일대에서 발생했다는 역사 기록도 공허하게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