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에서, 바꿔보자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보수 성지'에서 '평화 운동 성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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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1 11:31 | 최종 업데이트 2016-10-11 11:32

*이 기사는 주간 <워커스> 23호에도 실렸습니다

10월 1일, 대구 중심가인 반월당 네거리부터 수성교까지 차량 정체가 시작됐다. 교통사고가 아니었다. 이따금 열리던 마라톤대회도 아니었다. ‘1946년 9월 전평 총파업과 10월 항쟁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참가 행렬이 줄을 이었다. 노동자와 시민 5,000명이 깃발을 들고 삼덕 네거리를 지나고 있던 탓이었다. 민주노총 창립 이래 대구에서 처음 열린 전국노동자대회. 5,000명은 경북대 사대 부속 고등학교를 왼쪽에 두고 도로 위에 앉았다. 사대부고 전신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나온 대구사범학교다. 사대부고 교정에는 항일학생운동 기념비와 박정희 대통령 기념비가 나란히 서 있다. 이곳에서 노동자대회 참가자들은 “박근혜 정권을 끝장내자”고 외쳤다. 어떤 이들은 “설마, 대구에서?”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믿기 싫겠지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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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대구경북을 TK로 묶어 ‘보수’와 ‘여당 지지기반’으로 퉁친다. 대구와 경북은 또 다르고, 그리 딱딱한 지역도 아니다. 이들이 설사 박근혜 정부를 끌어내리지 못해도 시계는 계속 흘러 갈 테니 이 정부는 1년 4개월 지나면 끝난다. 집회장에는 사드 배치 철회 운동을 80일 넘게 펼치는 경북 성주군 시민들도 참석했다. 대구경북 출신의 여의도 정치인만 겪은 사람들은 대구경북 시민을 향해 “그래도 새누리당 찍을 것 아니냐”,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쩌나. 여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해고 1년을 넘긴 경북 구미 아사히글라스. 차헌호(45)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이 노동자대회 무대에 올랐다. 그는 “비정규직도 노조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회사는 시간이 지나면 투쟁을 포기할 것으로 생각한다. 1년이 지나는 동안 실업급여나 생계기금을 받으며 싸웠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없다. 모두가 비정규직 투쟁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싸우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힘을 모아 달라”라고 호소했다. 구미에서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호소는 많은 박수를 받았다. 생계비 마련 월 정기후원에 600여 명이 동참했다. 경북 성주에서 온 참외농사꾼 이재동(48) 사드배치철회성주투쟁위원회(성주투쟁위) 부위원장도 무대에 올랐다. 그는 “평화가 오는 그날까지 사드 배치 철회를 위해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다음날인 10월 2일 성주군청 광장에서 이 둘을 다시 만났다. 성주군농민회장인 이재동 부위원장은 82일째 사드 철회 촛불집회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다. 차헌호 지회장은 틈이 날 때면 성주를 찾아 촛불집회에 함께 한다. 4만 5,000명이 사는 작은 농촌도시 성주는 사드 반대, 평화 운동 상징이 됐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86%가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던졌던 성주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하나같이 한국 사회와 국가를 향해 의문을 던졌다

대구경북 지역 사람들은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점을 지적했지만, 책임을 모두 정부와 대통령을 향해 떠넘기지는 않았다. 부족했던 시민 의식과 권력 감시, 부조리함을 자정해야 할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데 대한 비판이 많았다.

이재동 부위원장은 “사드 문제가 터지고 촛불집회에 나오면서 이때까지 지방자치단체나 정부가 해온 실정에 속고 살았다는 이야기가 많다. 모르고 살았던 것에 대한 자괴감도 있었다. 성주에서 농민회 활동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 못했다. 농민회는 불순, 과격하다는 이미지를 언론이 덧씌웠는데, 사드 반대 운동을 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더라”고 말했다.

차헌호 지회장은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비정규직으로 함께 일하던 동료 다수가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 비정규직인 우리 삶을 조금이라도 바꿔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였다. 그런데 집권 4년 동안, 홧김에 더러워서 일을 그만둬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는 비정규직 일자리마저도 사라졌다. ‘사회 정의’라는 게 사라지고 나니 누군가에게 기대하기보다는 바꿔보자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과거 기독교 농민운동을 했던 배윤호(61) 씨는 사드 철회 운동을 벌이면서 성주투쟁위 공동위원장을 맡게 됐다. 배윤호 씨는 “사드를 잘 몰랐다. 누군들 알았겠는가. 우리 지역에 왜 이런 게 들어오는지 궁금해서 촛불집회에 나오게 됐다. 그런데 정부는 국민 사정을 보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한다. 아버지가 하는 걸 보고 배운 대로만 한다. 문제는 언론이었다. 언론이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자꾸 왜곡 보도하니 성주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자부심이 훼손당했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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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을 향한 불신은 성주 시민 대부분이 비슷했다. 촛불집회에 참석하면서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에 대한 국가폭력에도 관심을 갖게 된 배미영 씨. 그는 처음 사드 철회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유를 ‘불안함’으로 꼽았다. 배미영(39) 씨는 “불안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모여서 같은 소리를 내니까 내 안에 있는 불안함이 조금씩 사라졌다. 그다음은 분노였다. 처음 당해보니까. 언론이 우리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러면서 우리 앞에 있었던 세월호, 제주도 강정마을, 밀양 송전탑 할머니들. 이런 사건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부끄러움이 몰려왔다”고 말했다.

“모든 걸 박근혜 정부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국가, 정부, 언론, 권력이든, 돈이든 가진 자의 편에 서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이 모든 걸 박근혜 정부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과연 진보세력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대구에서 비정규직 노동운동을 하다가 4년 전 성주에 귀농한 손소희(42) 씨는 “사드가 온다고 했을 때 절망적이었다. 삶의 문제였기 때문에. 7월 15일 국무총리가 올 때였다. 다들 절망과 불안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날 큰 싸움을 벌이면서 함께 싸우면 끝까지 갈 수 있겠다는 기대를 확인했다. 그동안 지역에서 서열, 억압적인 분위기, 권력관계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는데, 이 공간(사드 반대 운동)에서는 가능했다. 무엇보다 자발성이 컸다. 노조 활동을 하면서도 겪어보지 못했던 경험이었다. 앞에 나서는 사람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차헌호 지회장은 “지금 상황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사드 촛불집회와 노동자투쟁이 하나도 다르지 않다. 진보라면 사회 문제가 발생했을 때 끊임없이 변화해서 실천해야 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스스로 갇혔다. 집회는 잘 준비된 무대와 음향, 공연이 더 중요해졌다. 힘을 모아 싸워야 하고,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재동 부위원장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그는 “권력과 정부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데, 야당은 안 싸운다. 대구경북이 여당 성향이 강하다고 하는데, 성주와 김천은 눈을 뜨기 시작했다. 진보진영은 지역부터 광범위하게 조직을 만들고, 지역을 바꾸는 역할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미영 씨는 “그동안 민주주의 국가로 알고 살았지만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미디어도 그렇고 권력은 여론을 수용해 제시하고 각자가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사드 철회 운동을 하면서 모인 힘이 성주를 바꾸는 데 기여하면 좋겠다. 배우고자 하는 열정도 있고, 직접 나와서 토론하는 민주주의 장이 만들어지고 있다. 오랫동안 만들어진 관습이라 빨리 쫓아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천천히 새로운 시도가 지역에서부터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는 이시훈(31) 씨는 “국가가 할 수 있는 역할과 할 수 없는 역할을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 정권교체 만능론도 문제지만, 국가를 타도 대상으로만 보는 것도 문제다. 또, TK라고 통칭하지만, 대구와 경북도 다르다. 변화의 단초가 있다면 지역 바닥에서부터 일어나는데 진보진영은 여기가 약점이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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