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혁의 야매독서노트] (5) 7시간·사드까지, 기록의 사유화가 남긴 오늘

대통령 기록전쟁. 전진한, 한티재. 2016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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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난 정권의 외교적 결정과 관련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 시기에 <대통령 기록전쟁_노무현, 대통령기록을 남긴 죄(전진한 지음, 한티재 출판, 2016)>를 읽고 있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읽고 있는 책과 화제가 일치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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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광범위한 기록문화를 찬양하면서도, 오늘날 대한민국 기록이 어떻게 남겨지고 있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 기록할수록 불리한 지배집단도 물론이거니와 기록하면 한대로, 하지 않으면 않는 대로 조작되어 탄압받은 반대세력도 마찬가지였다. 양자 모두에게 기록은 ‘보안위배’였고, 조직보위를 위해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카더라 통신이 난무한다. 누가 무슨 결정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협상을 하든 ‘카더라’를 통해서 추측하고, 비난한다. 종국에 가면 진실은 아무도 모르게 생산되고 유통됐다. 세상이 이러니 공공기관 중앙부처, 지자체에 공식적인 정보공개청구를 하면 숨이 턱턱 막힌다.

“왜 (정보공개청구) 하셨어요”, “XX 새끼, XX놈”과 같은 어이없는 발언과 욕설도 듣는다. 국회의원에게 제공해 언론에는 공개되었지만, 시민에겐 줄 수 없다며 비공개 결정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전에는 공개했지만 지금은 공개할 수 없다는 고용노동부 등.

각설하고,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이 났다. 나는 참여정부 지지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몇 가지 인정하는 업적이 있다. 그중 일부가 바로 정부의 기록 관련 정책과 정보공개정책이었다.

책을 읽으면 노무현 정부가 기록과 관련된 정책을 어떻게 형성했는지, 그것이 왜 중요한 일인지, 그 일로 인해 참여정부가 이후 정권에게 왜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참여정부를 먹잇감으로 삼은 자들은 자신의 기록을 절대 남기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아마도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으니 맞아 떨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4월 16일 청와대에서 일어난 7시간의 역사를, 그토록 한국 정부가 부정하던 사드 배치가 왜 갑작스럽게 결정됐는지 영영 모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30년 뒤 미국 문서보관소의 먼지 쌓인 기록을 찾아 헤매게 될 것이다. 어떻게 확신하느냐고? 책 43쪽은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기록이 부족하니, 온갖 문제가 터질 때마다 기록으로 사건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청문회 등을 개최해 당사자들의 발언에 기댈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5.18민주화운동의 발포명령 책임자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 광주 전남도청 앞에서 광주 시민들을 향한 계엄군의 발포가 있었다. 갑작스러운 발포로 이날만 시민 54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500여명이 다쳤다. 이후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도청을 유혈진압하고 광주 전역을 장악할 때까지 민간인 176명(정부 집계)이 사망하고 16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최근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0년 광주에서의 발포명령이 자신과 관련이 없다는 말을 했는데, 이를 반박할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생략)… 불과 40여년도 되지 않은 이 엄청난 비극의 책임자를 현재까지 찾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기록은 민주주의를 위한 기본 조건이다. 전제 군주제나 독재 체제에는 기록은 없을 수도 있다. 그저 한 사람 마음에 모든 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다르다. 민주주의는 서로 갈등하고, 논의하고, 반대하기 때문에 스스로 정당성을 증명해야 한다. 기록의 객관성은 필수적이다. 누가 의사결정에 참가했는가, 누가 어떤 판단을 하는가. 이 때문에 국회에는 엄청난 속기록이 존재하고, 헌법재판소는 소수의견과 그 이유를 기록해서 국민에게 공개한다.

그런데 행정부와 청와대는 왜 그러한 의무에서 벗어나 있는가? 이는 시민이 누려야 할 기본권 침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정부는 기록을 특정인과 특정 집단을 위해서 사유화할 뿐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헌법적이다. 물론 이 정부의 반헌법적인 행태가 이뿐만은 아니지만.

저자는 책 곳곳에서 어떻게 이 기록의 민주주의를 지난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가 망치고 있는지 기록, 정보공개 전문 활동가로서 비통한 심정으로 기록하고 있다. 책은 그 제목처럼 기록 전쟁에 대한 기록이다. 이 책은 그 참혹한 전쟁터를 기록한 우리 시대 기억이 될 것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두려운 것은 몇 가지 킵(Keep)해두었다는 핑계로 진행하지 않은 정보공개와 기록에 관한 업무를 떠올리게 해 다른 의미(?)에서 ‘아…좋지 않다’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 느낌은 책을 읽을수록 노동량을 더 늘려야 한다는 압박이었다. 하지만 정말 기록의 중요성을 생각해 볼 이들은 한 번쯤 살펴보아야 한다. 상대방을 위해서도, 우리를 위해서도.

끝.

덧붙임. 이 글을 쓰는 동안  대통령 연설문과 청와대 각종 기록이 최순실 씨에게 넘어가고, 최 씨가 정책 결정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충격적인 언론보도를 접했다. 어느 페친이 썼다. 보수정부인 줄 알았는데 정부가 아니었고, 왕정국가인 줄 알았는데 신정국가였다. 우리스스로 자조하는 단어인 ‘헬조선’에 사용된 조선이라는 옛 국가에게 미안해졌다. 우리는 명과 청에게 인증 받은 조선이란 국가보다 못한 나라다.

진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