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파탄에 맞선 가난한 자들의 저항

[민중총궐기 연속기고] (8) 정주리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18:43

[편집자 주] 뉴스민은 오는 11월 12일 민중총궐기를 앞두고 12대 요구안과 관련해 대구경북지역 시민의 목소리를 매일 싣습니다.

(1) 최일영 민주노총 대구본부 정책교육국장
(2) 최창훈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 부의장
(3) 홍승용 현대사상연구소 소장

(4) 김덕중 함께하는대구청년회 대표
(5)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6) 황성운 전국여성노조 대구경북지부장
(7) 10월문학회 고희림 시인
(8) 정주리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서명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서명하고 가세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광화문역 지하에서 들리는 소리다. 농성장 앞에는 1,540일이 지나면서 영정사진이 하나둘 자리했다. 장애 3급이라서, 부양 의무가 있는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많은 죽음에 내몰린 이들이다.

박근혜 정부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지난 2015년 5월, 정부는 <장애등급제 개편 시범사업 계획>을 통해 장애등급을 중증·경증 2등급으로 단순화하는 개편방안을 장애등급제 폐지로 둔갑시켰다. 기존 6등급이었던 체계를 2등급으로 바꿨을 뿐, 장애인 차별과 낙인을 강화했던 등급제는 그대로였다.

또, 장애등급제 폐지가 감면할인제도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를 조장하며 전체 서비스 총량을 유지하는 원칙을 세웠다. 1차 시범사업 결과인 <서비스 욕구별 제공, 연계 실적>을 보면 72%가 단순 정보제공에 불과했다. 맞춤형 복지를 말하지만, 필요가 아닌 정해진 예산에 맞추기 급급했다.

약속했던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도 마찬가지다. 2015년 7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개정하면서 급여별 선정기준을 정하는 맞춤형 개별급여를 도입했다.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많았던 최저생계비도 그랬다. 정부는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상대빈곤선을 도입해 급여별 기준을 만들고 매년 중위소득 기준을 정해 공표하면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비수급 빈곤층’은 117만 명은 여전했고, 고작 12만 명을 수급자로 흡수했을 뿐이다. 또, 중위소득 40%에 미치지 못하는 상대적 빈곤층은 전체 장애인 중 48.4%다.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립생활을 돕는 것이 목적인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최저생계비조차 받을 수 없는 장애인이 31.1%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내걸고 제1호 국정과제로 ‘복지 부정수급 근절’을 내세웠다. 정부합동 복지부정신고센터를 설치하고 부정수급 사례를 대대적으로 조사했다. 출범 100일 만에 총 100억 원의 부정수급액을 적발했다고 선전했다. 권리보장과 복지 사각지대 해결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더불어 유사·중복 복지사업비 ‘정비’를 추진하며 2015년부터 1년 동안 예산 35%를 삭감했다. ‘장애인 활동보조 사업’ 추가 지원까지 삭감 대상에 올렸다. 박근혜 정부가 공약으로 약속해 대구, 인천 등 광역자치단체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하겠다던 중증장애인 활동보조 24시간 보장은 휴짓조각이 됐다.

정부 예산 중 복지예산 비율은 얼마인가?2011년 기준으로 OECD 주요국가 GDP대비 장애인복지비 지출 비율은 0.49%다. OECD 회원국 중 뒤에서 세 번째다. 이제 두 달밖에 남지 않은 2017년 예산안을 봐도 여전하다. 전체 예산 중 장애인 정책국 예산은 0.41%로 비율이 더 줄었다. 세부적으로도 자립생활과 탈시설을 위한 예산은 줄어든 반면, 장애인 거주시설 예산은 물가인상률보다 더 많이 올랐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 농성 4년을 알리는 영상에 이런 말이 나온다. ‘켜켜이 쌓여 있는 농성장의 먼지처럼, 바닥에 남아버린 천막의 자국처럼, 우리의 일상 속에 남아버린 광화문에서의 4년의 시간.’ 언제 쌓였는지도 모르는 먼지처럼 우리 삶 속에 장애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만연하다. 장애인은 시설에 갈 수밖에 없다며, 수십 년을 시설에서 살다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을 맞는 순간들이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싸워왔다. 이러한 힘을 모아서 국정파탄 책임자들이 스스로 물러나도록 만들자. 장애인과 가난한 자들의 생존이 위협받지 않도록 하자.

다만, 종종 집회 현장에서 나오는 ‘진짜 장애는 신체 장애가 아니라 마음, 정신의 장애입니다(장애라는 개념을 ‘부정적 이미지화’ 하는 발언)’라든지, ‘병신년(여성과 장애인을 비하하는 단어)’ 등 소수자에 대한 비하/혐오/인권침해적인 분위기와 발언은 하지 않도록 약속했으면 한다. 서울뿐만 아니라 경기, 대구, 부산, 대전, 제주 다양한 곳에서 함께 외치며 민중총궐기로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