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탄신제’, “박근혜 퇴진” 시민에 욕설·폭행한 박근혜 지지자

“박근혜 퇴진” 요구 구미 시민 1인 시위 진행
1천여 명 참석, 지난해보다 절반 가량으로 줄어

15:34

“야 얼굴 좀 보자. 에이 종북 빨갱이X아. 너도 선생이 전교조냐. 똑바로 가르쳐주는 선생한테 배워라. 박근혜 퇴진 같은 소리 하네, 누구 좋으라고 퇴진하냐. 언론인들도 다 쓰레기야”

14일 오전 10시께, 경북 구미 상모동 박정희 생가 입구부터 욕설이 난무했다. 오전부터 이곳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99회 탄신제’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 여론이 맞물려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40대 구미시민은 탄신제 시작 전부터 생가 입구에서 ‘박근혜 퇴진’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이를 발견한 탄신제 참석자들은 이 시민을 향해 갖은 욕설을 퍼부었다.

▲한 구미시민이 박정희 탄생 99주년 기념식이 진행된 박정희 생가 앞에서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했다.
▲한 구미시민이 박정희 탄생 99주년 기념식이 진행된 박정희 생가 앞에서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이 시민을 향한 욕설과 물리력 행사는 1인 시위가 진행되는 약 한 시간 동안 지속됐다. 한 여성은 “얼굴 못 내놓는 이유가 뭐냐. 어디 남의 잔치에서 이런 짓이냐”고 고성을 질렀고, 한 남성은 “부모도 없고, 할아버지도 없냐”며 손가락질했다. 결국 이 시민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귀가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구미시민과 탄신제 참석자들 간 충돌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오전 11시 50분께,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조합원 5명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시작했다. 차헌호 지회장은 “오전에 1인 시위하는 분이 욕먹고, 폭행당하는 걸 보고 도움이 되려고 왔다”며 “전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데 구미시는 수십억을 들여 박정희를 신격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박근혜 퇴진 촉구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박근혜 퇴진 촉구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아시히지회 조합원들의 피켓을 빼앗은 박정희-박근혜 지지자들이 만세를 외치며 환호하고 있다.
▲아시히지회 조합원들의 피켓을 빼앗은 박정희-박근혜 지지자들이 만세를 외치며 환호하고 있다.

이들의 피켓 시위는 참석자 다수의 반발을 불러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오전 11시께 박정희 동상 옆 공터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시작된 기념식이 마무리될 무렵이어서 귀가하던 박정희-박근혜 지지자들이 피켓 시위에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박해모(박근혜를 사랑하는 해병대 모임) 회원을 비롯한 지지자들은 노조원을 향해 갖은 욕설을 하며, 피켓을 빼앗으려 물리력을 행사했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을 향한 폭행도 행해져 조합원 일부가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노조 피켓을 빼앗은 지지자들은 그 자리에서 “박근혜 만세”, “박정희 만세”,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환호했고, 애국가도 불렀다.

▲신 모 씨는 "구미 젊은 엄마들은 지금 정치 상황에 관심이 많다"고 1인 시위 참여 이유를 밝혔다.
▲신 모 씨는 “구미 젊은 엄마들은 지금 정치 상황에 관심이 많다”고 1인 시위 참여 이유를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1인 시위는 행사가 끝나고도 이어졌다. 15개월 된 아이를 업고 나온 신 모(35) 씨는 “아기 엄마들 인터넷 카페가 있는데, 거기서 1인 시위하는 분한테 지나가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폭행했다고 들어서 도움이 될까 싶어서 나왔다”고 말했다.

신 씨는 1인 시위 중 탄신제 참석자들이 갖은 욕설로 모욕을 가하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신 씨는 “제 욕 하는 건 괜찮은데 아기 욕을 하니까 울컥했다”며 “실감이 난다.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안 그러신 분들이 너무 많으신 것 같아서 많이 아쉽다. 구미 젊은 엄마들 정치에 관심 많고, 이 사태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김관용 지사, 백승주, 장석춘 국회의원, 서상기 전 국회의원(왼쪽부터)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김관용 지사, 백승주, 장석춘 국회의원, 서상기 전 국회의원(오른쪽부터)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한편 이날 탄신제는 지난해보다 저조한 참석률을 보였다. 지난해 2천여 명이 참석했지만, 올해 탄신제에는 1천여 명이 참석하는 데 그쳤다. 김관용 경북도지사, 남유진 구미시장, 백승주, 장석춘 구미 국회의원, 서상기 전 국회의원(이상 새누리당) 등이 자리를 지켰지만, 준비된 의자 천여 개는 듬성듬성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이날 기념사와 축사에 나선 남유진 시장과 김관용 지사, 백승주, 장석춘 의원 등은 여론을 의식한 듯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10월 박정희 37주기 추도식에서 남 시장과 백 의원은 각각 “이제 님의 정신과 열정은 박근혜 대통령께 이어져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이끌고 있다”거나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신명을 다해 보필하겠다”고 말한 것과는 차이를 보인 것이다.

남 시장은 최근 여론을 의식한 듯 “분위기 좀 돋우기 위해서 박수 한 번 칩시다, 여러분. 활짝 웃으십시다”며 기념사를 시작했다. 남 시장은 “최근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 추진에 일부 비판적 시각이 있는 것도 잘 안다”며 “100주년은 내년 한 번 밖에 오지 않는다. 역지사지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많이 도와주길 바란다”고 박정희 기념사업에 대한 비판 여론을 불식시키려 했다.

김 지사는 축사에 나서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나. 태어나신 지 100년을 기념하게 됐다. 당연히 해야 한다”며 “다시 한 번 민족에, 나라의 중심에 (박정희 대통령이) 서 있음을 확인시켜드려야 한다”고 박정희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