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 칼럼] 추수감사절, 미국 원주민들의 투쟁과 저항에 지지를 보내며

스탠딩 락 ‘물의 수호자들’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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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8 15:33 | 최종 업데이트 2016-11-28 15:33

11월 넷째 목요일은 미국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다. 한국처럼 전국 모든 고속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하는 정도의 ‘귀성 전쟁’은 없지만, 일 년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이동하는 날인 건 여느 한국 명절과 마찬가지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모여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나누며 서로에게 감사하는 날이다. 대부분 학교와 직장에서는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금요일도 휴무에 들어가 많은 사람이 나흘 동안 긴 추수감사절 연휴를 보낼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미국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620년 영국에서 박해를 받던 청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왔다. 지금 미 동부 연안 플리머스라는 곳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새로운 땅에서 보낸 첫해 겨울은 춥고 가혹했다. 험난한 여정에서 살아남은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그해 겨울에 추위와 괴혈병으로 사망했다. 추위와 괴혈병에 희생되지 않은 이들은 원주민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원주민들에게 배운 경작법으로 옥수수를 재배해 그 이듬해인 1621년 가을에 큰 수확을 거두었다. 감사의 표시로 청교도들은 자신들의 정착을 도운 왐파노아그 부족을 초대해 추수한 곡식과 야생 칠면조, 사슴을 잡아 함께 나누어 먹으며 축제를 벌였다. 이게 공식적인 추수감사절 유래다. 참 훈훈한 얘기다.

특히 인상적인 건, 원주민들이 사전허가도 받지 않고 자신들 땅에 무작정 도착한 유럽 이방인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또는 불법이민이라며 추방하겠다는 위협 같은 거 없이 받아들이고 이들이 새 땅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는 대목이다. 요즘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미국 정치인들이 꼭 배워야 할 덕목이 아닌가 싶다.

미국 대부분 학교는 거의 일괄적으로 이렇게 추수감사절 유래를 가르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추수감사절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반 아이들 절반은 청교도 복장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원주민 복장을 하고 사이좋게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음식을 나눠 먹는 광경은 너무 보기 좋았다. 인종을 초월한 사랑과 나눔-이것이야말로 추수감사절의 참된 의미가 아닌가.

여기까지는 정말 훈훈한 미담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이 정말 그랬을까. 물론 이 공식적인 설명에는 일부 진실이 담겨 있다. 하지만 많은 주류 역사 서술이 그러하듯이, 이 이야기는 ‘승자’인 유럽인들 관점이다. 예를 들면, 스콴토라는 이름의 원주민이 실제로 청교도들에게 옥수수 재배법을 가르쳐 줬다고 한다. 하지만 유럽에서 온 이방인들과 원주민인 그가 어떻게 의사소통이 가능했을까? 스콴토는 금을 찾아 미 대륙에 와서 약탈을 일삼던 유럽인들에게 납치되어 수년 동안 유럽에서 노예살이하면서 영어를 배웠다. 이런 야만스런 약탈의 역사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초의 추수감사절을 함께 축하한 원주민들과 유럽인들은 그 이후에도 서로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며 살았을까? 아시다시피 불행히도 그에 대한 답은 부정이다.

첫 추수감사절로부터 5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왐파노아그 부족과 그 주변에 살고 있던 다른 원주민 부족들은 유럽에서 온 정착민들에게 학살당하거나 그들이 지니고 온 새로운 질병에 대한 면역력 부족으로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 미국 초기 역사는 원주민에게 침략과 강탈, 제노사이드, 인종 청소, 강제 이주의 역사다. 유럽인은 원주민과 같이 나누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원주민을 그들이 살던 땅에서 몰아내고 학살했다. 원주민들은 저항했지만, 유럽인들의 강력한 화력을 이기지 못했다.

미국 건국 후 초기에 제정된 소위 ‘인디언 이주법’에 의해 원주민들은 백인이 없는 곳으로 강제 이주를 떠나 지정된 지역에 살게 됐다. ‘인디언 이주법’에 따르지 않는 부족은 멸족될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다. 많은 원주민 부족이 저항했지만, 결국 ‘눈물의 길’을 따라 대이주를 해야 했다.

▲1891년 벌어진 운디드니 학살 [사진=http://www.loc.gov/]
▲1891년 벌어진 운디드니 학살 [사진=http://www.loc.gov/]

한국에도 출간된 책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에는 원주민의 저항과 학살의 역사가 잘 묘사되어 있다. 비교적 널리 알려진 운디드니 학살은 1890년 인디언 전쟁 막바지에 운디드니에서 미국 기병대가 수(Sioux) 부족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이다. 부족 전체 350명 중 노인, 여성, 아이들이 포함된 약 300명이 학살됐다. 이와 비슷한 학살은 대륙 곳곳에서 반복됐다.

운디드니 학살로부터 80여 년 후인 1973년 2월, ‘미국 인디언 운동’(American Indian Movement)과 오글라라 라코타 부족(수 부족이 원주민어로 스스로를 일컫는 이름) 200여 명이 1890년 학살 장소였던 운디드니 마을을 점거했다. 그들은 원주민 보호구역에서의 부정부패 조사 및 책임자 처벌, 그리고 원주민들의 열악한 실태에 대한 해결을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이들의 요구를 무시하며 '당장 항복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결국 71일간 대치 끝에 투쟁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원주민들의 비참한 실상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원주민 인권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

여전히 계속되는 원주민들에 대한 탄압과 저항

▲강제 진압에 맞선 '물의 수호자들' [사진=http://369news.net 갈무리]
▲강제 진압에 맞선 '물의 수호자들' [사진=http://369news.net 갈무리]

무자비한 학살과 인종 청소에서 살아남은 미국 원주민 인구는 현재 520만 명 정도다. 2013년 인구 통계에 따르면 원주민은 전체 미국 인구의 약 2%를 차지하고, 전체 노동력의 약 1%를 차지한다. 하지만 실업률은 전체 인구의 거의 두 배에 가깝다. 원주민 네 명 중 한 명은 절대빈곤선 이하에서 살고 있다. 대부분이 ‘보호구역’에 고립되어 살면서 적절한 의료와 교육, 주택 부족을 겪고 있고, 알코올과 약물 중독, 도박 등의 문제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특히 청소년 자살률은 심각할 정도다. 미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나빠지면서 원주민들의 삶은 더욱더 황폐해지고 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원주민들의 투쟁 전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난 10월 31일 소개한 노스다코타 스탠딩 락에서 수 부족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송유관 건설 반대투쟁이 바로 그 한 예이다. 내가 다시 이 지면에서 스탠딩 락에 대해서 얘기하게 될 때는 그들의 투쟁이 승리로 끝났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물의 수호자들’에 대한 중무장한 경찰의 진압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지난 몇 주 동안 더욱더 폭력적으로 변했다.

추수감사절 불과 며칠 전인 지난 11월 20일 밤, 무장한 진압경찰은 스탠딩 락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통하는 다리를 막고 있는 바리케이드를 치우려고 모인 ‘물의 수호자들’을 공격했다. 400여 명의 평화적인 시위대를 해산시키려고 물대포와 소방호스를 동원해 차가운 물을 쏘아댔다. 노스다코타의 겨울은 매섭기로 유명하다. 그날 밤은 영하로 떨어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시위대에게 쏟아진 것은 물대포가 뿜어내는 살인적인 물살뿐 아니라 최루탄, 페퍼스프레이, 고무탄 그리고 심지어 진탕수류탄도 있었다. 진압 과정에서 100여 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고, 그중 17명은 심하게 다쳐서 병원으로 후송됐다. 많은 사람들이 물대포와 최루탄 공격 앞에 의식을 잃었다.

이날 밤 가장 심각하게 다친 사람은 한 여성이다. 그녀의 이름은 소피아 윌란스키. 뉴욕에서 노스다코타까지 스탠딩 락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 달려간 21세 활동가이다. 그녀는 다친 사람들에게 물을 가져다주다가 진압경찰이 던진 진탕수류탄에 왼쪽 팔을 맞았다. 수류탄은 그녀의 팔에서 폭발하며 뼈와 동맥을 으스러트렸다. 투쟁이 승리로 끝나 추수감사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길 꿈꿨을지도 모를 그녀는 지금 팔을 절단해야 할지 모를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다. 기자들에게 딸의 상태를 설명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바로 여기 미국에서요. 딸 아이는 미국에서 수류탄에 맞았어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라...아이가 입은 부상은 전쟁터의 병사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부상이에요”라며 흐느꼈다. 실제로 많은 목격자들은 11월 20일 밤 스탠딩 락은 전쟁터 같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오바마는 백악관 전통대로 올해도 터키 한 마리를 특별사면했다. 그 행운의 터키는 평생 인간에게 잡혀먹을 걱정 없이 살다가 자연사하도록 사면된 것이다. 오바마는 터키에 보인 이런 너그러움을 스탠딩 락에서 땅과 물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원주민들에게는 반의반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 반대로, 추수감사절 바로 다음 날 오바마 정부는 12월 5일까지 시위대 캠프를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로 해산시키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에 대응해 수 부족장은 다음과 같이 대응했다. “원주민들과 유럽에서 온 초기 이민자들이 선의로 함께 나눈 추수감사절 다음 날 이런 결정이 내려진 것은 유감스럽고 역설적이다. 이 소식이 슬프긴 하지만, 지난 500여 년 동안 우리들이 어떻게 취급당해 왔는지 생각해 보면 전혀 놀랍지 않다.”

다행히 미 전역에서 원주민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연대를 보내고 함께 싸울 것을 다짐하고 있다. 정부의 최후통첩에 굴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이 스탠딩락과 같이 하기 위해 가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는 정부의 탄압을 규탄하는 행동이 조직되고 있다. 스탠딩 락의 ‘물의 수호자들’도 조상대대로 내려온 땅과 생명의 원천인 물을 지키는 싸움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다.

스탠딩 락 원주민들의 땅과 물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꼭 승리하길 바란다. 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한 연대자의 말처럼 “스탠딩 락, 꿋꿋이 버텨라. 그 자리에서 물러나지 말고 버텨라. 그들이 당신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려고 한다. 처음부터 그들의 땅도 아닌 이 땅에서.”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에서 인종을 초월한 원주민과 이주민들이 모두 조화롭게 어울려 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배우는 추수감사절의 유래와 의미가 거짓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날이 꼭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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