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200일 촛불 드는 성주, 따뜻한 동남풍을 기다린다

사드철회 촛불 200일 앞둔 성주, “설날, TV에 황교안이는 안 나왔으면...”

10:03

“요즘 반기문 나오면 TV를 꺼버린다니까. 황교안 얼굴도 보기 싫어. 설날에는 TV에라도 안 나왔으면 좋겠다”

설 연휴를 앞둔 26일, 성주시장에서 이점수(67) 씨는 전을 폈다. 장날은 27일이지만, 대목 손님맞이를 위해 점포 몇몇이 문을 열었다. 성주시장 점포 곳곳에는 빛바랜 “사드OUT” 스티커가 드문드문 붙어 있다. 이 씨도 작년 7월부터 사드 반대 스티커를 붙이고 촛불집회에도 꼬박꼬박 나갔다.

▲이점수 씨

겨울이라 참외 농사짓는 아들 일이 바빠지자 덩달아 바빠진 이 씨는, 매일 열리는 사드 반대 촛불집회에는 자주 나가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이 씨는 자주 보던 연속극도 끊고 뉴스를 보며 사드 소식에 귀 기울이게 됐다.

“여기 시장에 있으면 요즘에는 사람들이 사드 얘기도 잘 안 해. 나는 집에 가면 TV로 뉴스만 보지. 다시 성산포대로 올 수도 있다는 뉴스 보니까 가슴이 뜨끔하더라. 이제 명절인데 우리 성주사람들 건강하고 앞날이 다 잘 됐으면 좋겠어. 사드는 썩 물러갔으면 좋겠고. 반기문, 황교안이는 얼굴 안 보이면 좋겠고.”

사드가 몰고 온 한파 이겨낸 사람들
촛불에서 만난 주민들 공동 상점 열다

시장 입구로 발걸음을 돌려 1번 점포. 새해와 함께 커피·빵·지역농산물을 파는 ‘빵야’가 문을 열었다. 정식 개장은 2월 1일이지만, 벌써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점포 곳곳에 사드 반대 스티커와 현수막이 큼직하게 붙어 있다. 이곳은 사드 반대 촛불집회에서 만난 청년들이 합세해 만들었다. 서북청년단과 맞짱뜨자며 만든 ‘동남청년단’ 김상화(38), 방민주(39), 이민수(39) 씨는 촛불집회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다가 함께 상점까지 열었다.

부동산 일을 하던 이민수 씨는 지난 7월 15일 황교안 총리에게 “뺑소니”를 당한 후, 직장을 그만두고 농사를 시작했다. 처음 수확한 참외로 방민주 씨가 만드는 참외 빵에 효모를 공급할 계획이다. “가게에서도 잡일을 합니다. 가게도 새로 열고 보니 새롭고 미래도 밝아요. 뺑소니로 액땜 제대로 했으니까 올해는 우리 동남청년단과 함께 대박 날 겁니다.”

방민주 씨는 수원에서 장사하다 아내 따라 성주로 들어왔다. 10년 정도 살 계획이었는데 사드 투쟁을 겪으며 아주 눌러살기로 결심했다. “장사 스트레스가 심하잖아요. 옛날에는 그랬는데 요즘은 하루하루 눈 뜨면 기대되고 행복합니다. 빨리 나와서 사람들 보고 싶어요. 투쟁하며 만난 사람들 덕분에 공동체가 이런 거구나 하네요. 다른 데서 못 만날 사람들이니 여기에 뿌리 내리려구요.”

▲왼쪽부터 김미영, 방민주, 이민수, 김상화 씨

방 씨의 친형처럼 보이는 김상화 씨는 사실 방 씨보다 한 살 아래다. 성주 사람들은 이제 “더 귀여운 쪽이 방민주, 더 듬직한 쪽이 김상화”라고 외웠다. 김 씨는 “사드 촛불 통해서 좋은 사람도 많이 알게 됐다. 이 사람들과 함께 할 공간도 필요했던 차에 우리가 나서서 만들었다. 빵야는 지역 생산자와 소비자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새해에 대박 날 것”이라고 말했다.

백철현 성주군의원도 빵야를 찾아 고구마와 파를 양손 가득 쥐었다. “젊은 시장으로 바뀌는 것 같아 좋습니다. 사드 문제도 있고 지역에 문제가 많아서 고생도 많이 했는데 이제 살기 좋은 농촌, 함께 살 수 있는 지역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동남쪽으로 시장이 트인 탓일까. 빵야에는 웃음기 머금은 손님들과 함께 따뜻한 바람이 불어 들었다.

끝나지 않은 투쟁···
소성리, 투쟁 위해 설 마을 윷놀이도 미뤘다
“제발 올해에는 사드 물 건너갔으면”

한반도 사드 반대를 외쳤는데 초전면으로 사드가 온단다. 벼락같은 소식에 초전면 소성리 주민 임순분(63) 씨는 지난여름부터 편히 쉴 날이 없었다. 60가구, 100여 명이 사는 소성리 주민들은 연말 마을 회의에서 설날 행사도 다 취소했다. 매년 하던 윷놀이 행사도 취소하고, 대신 성주읍 평화나비광장에 나와 같이 촛불을 들 계획이다.

“설에 아들 하나 딸 둘 집에 오면 떡국이나 끓여 줘야지요. 올해에는 애들한테도 덕담으로 사드 보내자는 이야기 하려구요. 매번 설날에는 소성리도 집집마다 복작복작했는데 이제는 합동 세배도 안 드리고 여기 집회 나올라구요. 얼마 전에 더민주 당사에도 갔었는데 뭐 하는 게 없어요. 지금 자리 촛불이 만들어준 건데 자기들이 이제 다 된 것마냥 코빼기도 안 보이고. 정신 차려야 합니다.” 

사드배치철회성주투쟁위는 초전 주민들과 함께 설을 보내고, 사드 철회를 위해 다시 기세를 다듬을 계획이다. 이재동 성주투쟁위 부위원장은 “초전이 성주고 성주가 대한민국이다. 소성리와 함께 생명평화 지키는 것에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며 “설날은 촛불 투쟁 200일이 되는 날이다. 설에 걸맞게 풍물도 하면서 사드 반대 기운으로 다시 화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