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 칼럼] 트럼프 ‘反난민’ 행정명령, 히잡을 쓴 안네 프랑크가 보인다

트럼프의 반이슬림 정책에 대한 국제적인 저항

13:23

벌써 2년 전 일이다. 처음으로 예멘 출신 의뢰인을 만났다. 세계 곳곳에서 모인 사람들이 함께 사는 뉴욕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을 만나왔지만, 예멘 출신 의뢰인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기억하는 이유는 첫 예멘인 의뢰인이어서만은 아니다.

그녀는 예멘에서 온 이민자로 미국시민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고향 예멘 남성과 결혼했다. 그녀의 남편은 이민비자가 발급될 때까지 미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예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의 비자 인터뷰가 하루라도 빨리 잡히기를 기다리던 중 그녀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전쟁이 악화되면서 예멘 주재 미국 대사관이 철수했다는 소식이었다. 비자 업무 또한 중지됐다. 설상가상으로 며칠 전 연락이 끊겼고, 그녀는 남편의 생사마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언론에서만 보았던 예멘 공습과 드론 공격이 보통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그녀에게 나는 변호사로서 아무런 법적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그저 전쟁이 빨리 끝나 그녀처럼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 고통받는 이들이 더는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27일 예멘을 포함한 무슬림 7개국 사람들과 난민들의 미국 입국을 잠정적으로 금지한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 소식을 듣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예멘 출신 의뢰인 생각이 났다. 그녀의 남편은 무사히 미국에 도착해 그녀와 행복한 신혼을 보내고 있을까? 아니면 언제 만날지 기약할 수 없는 남편을 그리며 다시 한번 절망에 빠졌을까?

그녀를 생각하며 함께 떠오른 또 다른 장면이 있었다. 지난여름 본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이었다.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아귀처럼 달려드는 흉악한 좀비들이 아니었다. 공격하는 좀비들을 가까스로 물리치고 안전한 차량에 도착한 사람들. 하지만 안전한 차량에 있던 사람들은 매몰차게 문을 잠가 버린다. 사투를 벌이며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미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수도 있다는 선동, 그리고 이에 동요한 사람들의 두려움과 편견. 문을 열지 않으면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다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매몰차게 문을 걸어 잠갔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분노를 느꼈을 장면이다. 만약 사람들을 공격하는 좀비가 그 안전한 차량에 타고 있는 소수 사람들 때문에 생긴 것이라면 어떨까?

우리는 이 영화 같은 장면을 현실에서 보고 있다. 이라크, 이란, 리비아,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예멘. “외국인 테러리스트들의 입국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한다는 제목의 행정명령에서 테러 위험국으로 지정돼 국민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한 나라들이다. 인구 다수가 무슬림인 이 나라들은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이 제국주의 군사개입을 벌인 나라들이다. 미국의 제국주의 전쟁과 공습, 드론 공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있는 나라들이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세계적으로 사상 최대의 난민위기를 겪고 있는 와중에 나왔다. 난민위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중동에서 벌인 미국의 군사개입이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유엔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6천5백3십만 명이 터전을 잃고 길을 떠나고 있다. 전 세계 인구 113명 중 1명은 난민이다. 세계 난민의 절반이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에서 발생하고 있다.

행정명령이 내려온 후 연방법원이 임시 유예 명령을 내린 2월 3일까지 일주일 동안 많은 사람이 혼란과 공포의 생지옥을 경험했다.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일주일 동안 입국이 금지되거나 추방당한 사람들이 6만여 명에 달한다. 이들을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과 친구들이 겪은 고통은 이 수치에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하고 거주할 수 있는 비자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도 입국이 불허되어 구금되거나 추방됐고, 영주권자는 물론 미국 시민권을 가진 이중국적자들도 입국 금지 대상에 포함됐다.

공항에서 억류된 무슬림 가족 중에는 이제 겨우 다섯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도 있었다. 입국이 금지된 사람들과 미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해외 공항에서 미국행 비행기 탑승이 거부된 사람들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로 되돌려 보내졌다. 뉴욕 케네디 공항에서는 입국이 금지되어 추방 직전 사람들 중 두 명이 자살 시도를 했다고 전해진다. 많은 이들에게 추방명령이 사형선고와 다름없다는 걸 보여주는 예다.

국적과 종교를 빌미로 사람들을 무차별적인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취급하는 일이 과연 타당한지, 그래서 정말 안전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 의문이다. 테러 위험국으로 지정된 7개국 사람들이 2001년 9월 11일 이후 미국에서 테러 공격을 감행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하버드 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결핵 치료법을 연구하기 위해 미국에 들어오려던 한 이란 과학자는 자신의 트위터에 다음과 같이 썼다.

“보스턴의 연구소에서 일하게 되어서 무척 기뻤는데, 내가 이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비행기 탑승이 거부되었습니다. 자, 이제 더 안전하다고 느끼십니까?”

다행히 현실은, 영화에서 사람들이 힘을 합쳐 문을 걸어 잠그던 장면과 다르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무슬림 입국이 제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즉각 미국 전역의 공항으로 모여들었다. 여행가방 대신 손수 만든 피켓을 들고 모인 사람들은 인종주의 행정명령을 분명하게 반대했다. “난민과 이민자들을 받아들여라!”라고 한목소리로 외치며, 생지옥을 빠져나온 사람들 눈앞에서 문을 걸어 잠그려는 시도에 반대했다.

뉴욕 케네디 공항에서는 ‘택시노동자연합’ 소속 운전기사들이 시위대에 동조해 한 시간 동안 파업을 벌였다. 그들은 성명서에서 “대부분의 멤버들이 무슬림이고 이민자인 조직으로서 그리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방어하는데 기반을 둔 노동계급 운동으로서, 이 비인간적이고 반(反) 헌법적인 금지령에 반대”함을 천명했다.

뉴욕에는 보데가라고 불리는 델리와 식품잡화점이 있는데, 주로 예멘 출신 이민자들이 운영하고 있다.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 금지에 항의하는 뜻으로 보데가 상점 천여 개가 8시간 동안 일제히 문을 닫았다. 필라델피아에서는 최대 케이블 회사인 캠캐스트 노동자들이 근무 시간에 거리에 나와 시위를 벌였다. 일부 노동자들은 “테크놀로지에는 국경이 없다”는 피켓을 들고나와 눈길을 끌었다. 이밖에도 트럼프가 대통령으로서 첫 워싱턴 밖 나들이를 할 예정이었던 밀워키의 할리 데이비슨 공장 방문은 반대 시위 때문에 취소됐고, 취임한 지 2주 만에 휴가를 떠난 플로리다의 초호화 리조트 마라라고에서도 3천 명에 이르는 시위대가 모여 인종주의 정책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대통령 취임 2주밖에 안 된 트럼프는 가는 곳마다 그를 반대하는 대중의 분노를 피할 수가 없다.

▲런던에서도 트럼프의 반무슬림, 반난민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사진=flick.com/alisdare1]

트럼프의 반(反)무슬림 인종주의에 대한 저항은 국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2월 4일 런던에서는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금지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고, 4만여 명이 모여 행진을 했다. 이외에도 맨체스터, 브리스톨, 셰필드 등 영국 각지에서 수천 명이 모였고, 트럼프의 영국 방문을 반대하는 서명에 현재 180만 명이 서명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 파리와 독일 베를린에서도 반트럼프 시위가 벌어졌다.

이러한 거센 대중의 저항과 반대가 행정명령을 임시 유예한다는 미국 연방법원 결정에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트럼프가 행정명령에 서명한 1월 27일은 국제 홀로코스트 기념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은 히틀러의 인종청소를 피해 유럽을 떠나는 유대인들의 미국 입국을 제한했다. 당시 루즈벨트 정권은 난민들 속에 나치 스파이가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며 유대인을 잠재적 나치 동조자로 취급하며 인종주의적인 입국 제한을 정당화했다. 미국으로 망명이 거부된 수많은 사람 중에는 <안네의 일기>로 알려진 10대 소녀 안네 프랑크와 그녀의 가족도 있었다. 안네 프랑크는 가족들과 함께 나치 치하 네덜란드에 숨어 지내다가, 강제수용소에서 죽음을 맞고야 만다.

지금 우리는 히잡을 쓴 수많은 안네 프랑크와 그 가족을 보고 있지 않은가. 역사의 비극을 반복하지 말자. 수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들고나온 “Never Again!” 이라는 피켓이 가슴을 파고든다.

▲안네 프랑크의 묘지. [사진=pixabay, 저작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