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고 이틀째 “국정교과서 철회” 학내 집회···출근한 이사장 역정만 내

"학생들 외면하지 말고, 회피하지 말라"
철회 의사 묻자, 홍 이사장 "그걸 나한테 왜 물어"

13:23

경북 경산 문명고등학교 학생들이 국정교과서 철회를 요구하며 홍택정 재단 이사장을 만나길 요구했으나, 홍 이사장은 학생들이 법인 사무실 밖에서 1시간 동안 집회를 하는 동안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21일 오전 9시 30분, 경북 경산시 문명고 학생 40여 명과 학부모 20여 명이 교장실 앞에 모여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철회를 요구하며 이틀째 집회를 이어갔다.

문명고는 이날까지 자율학습을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통지했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교복을 입고 등교했다. 같은 시각 문명고는 1학년 각 반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문명고 교장 김태동 씨는 이날도 병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김 씨는 지난 17일 이후 칩거하며 학생 및 대다수 언론 접촉은 꺼리면서도 <동아>, <조선> 등 국정교과서에 우호적인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문이 굳게 잠긴 교장실 앞 복도에 서서 “교장 선생님, 나와서 해명하십시오”, “교장 선생님, 나와서 사과하십시오” 등 구호를 외쳤다.

▲오늘도 교장실은 불이 꺼진 채 문이 잠겨 있다.

올해 3학년인 오재복(18) 씨는 “무엇보다 신입생들에게 미안하다. 교장선생님은 저희와 대화하지 않으면서 언론 인터뷰에서는 저희가 선동당했다고 말한다”며 “왜 저희와 대화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교장 선생님은 오랫동안 윤리 교사로 재직했다. 과연 지금 교장선생님의 행동이 도덕적인지 되묻고 싶다. 빨리 나오셔서 해명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학생, 학부모들이 교장실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던 오전 10시께 홍택정 문명교육재단 이사장이 학교 정문을 통해 출근했다. 홍 이사장은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으며 학교 관리에 신경 썼지만 정작 이사장을 만나고 싶어 하는 학생, 학부모는 외면했다. 홍 이사장은 취재진에게 “나는 전교조, 민노총이 버린 쓰레기 다 주웠어”라고 말하며 법인 사무실로 들어가 문을 잠궜다.

홍 이사장은 학생, 학부모들이 나와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데 철회 의사는 없느냐고 묻자 “학교 파가라. 내가 드러누워 죽을게”, “싫다는데 사람을 이렇게 괴롭힙니까. 그걸 나한테 왜 물어”라며 역정을 냈다. 질문이 이어지자 “고발한다”거 초상권 침해라며 사진을 찍지 말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홍택정 문명교육재단 이사장은 이날 법인 사무실 밖에서 학생, 학부모가 해명을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사무실 안에서 서류를 살펴보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학생, 학부모들은 홍 이사장 출근 소식을 듣고 법인 사무실 앞으로 옮겨가 집회를 이어갔다. 홍 이사장이 앉은 사무실 창을 향해 학생들은 “이사장님 나오세요”, “나와서 해명하세요”라고 소리쳤다.

한 학생은 “학교 교육은 정치와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 학교는 재단의 정치 이념으로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며 “아무리 재단이 국정교과서가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저희 학생들은 그 교과서로 교육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학생들을) 외면하지 말고 회피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오전 11시 무렵까지 이사장실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자유발언을 이어가며 이사장 면담을 요구했다. 하지만 학교 측 관계자는 이사장실 입구에서 사진을 찍는 것도 제지했다. 학부모 대책위는 현장에서 홍 이사장과 통화로 면담을 요청했지만, “이사장이 면담을 거부했다”고 알렸다.

학생들은 오는 22일 오전 9시부터는 예정된 자율학습을 진행하면서 국정교과서 철회 의사 표현을 하기로 했다. 학부모 대책위도 이날 학생 참여가 급격히 줄어든 것을 감안해 운동장 집회 등이 아닌 다른 방식의 대응을 논의 중이다.

한편, 이날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한 신입생들에 따르면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포함해 교과서는 받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