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보이는 창 100호-문화시평] 정치 참여로 시대를 건너는 연예인들 /이승한

2017-04-04 12:06 | 최종 업데이트 2017-04-04 12:55

[편집자 주=이 글은 계간 <삶이 보이는 창> 100호(2014.9.24)에 실린 글입니다. 뉴스민은 <삶이 보이는 창>과 컨텐츠 제휴를 맺고, 필자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정치 참여로 시대를 건너는 연예인들

이승한 TV 칼럼니스트. 2007년 <채널 예스>를 통해 전업 글쟁이가 되었다. 2010년 대중문화 웹진 <텐아시아> 기자로 활동했으며, 현재 <한겨레>에 ‘술탄 오브 더 티브이’를 연재 중이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연예인의 정치 참여를 터부시해왔다. 정치색과는 무관하게 폭넓은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활동이 가능한 직업적 특성과, 민주 대 개발독재로 양극화된 한국의 정치 지형, ‘딴따라가 알면 뭘 얼마나 알겠느냐’라는 예인에 대한 뿌리 깊은 천시는 연예인의 정치 참여를 막는 전통적인 기제였다. 해서 연예인의 정치 참여는 선거철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밝히고 지원유세를 나서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순재나 고(故) 이주일처럼 현실 의회정치에 발을 담그고 의정활동을 했던 연예인이 없던 것은 아니나, 주로 문화예술계의 이해관계를 정책에 반영키 위함이었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외도’를 해명해 왔다.

그러나 최근 연예인의 정치 참여는 단순히 지원유세를 나서는 수준을 지나, 대의제 민주주의가 기반하고 있는 하부구조인 경제의 영역이나, 정치적 갈등이 이뤄지고 있는 현장으로 뻗어나가는 추세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에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던 샤이니의 종현과 2PM의 찬성, 2014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3관왕을 차지하면서 수상 소감을 통해 기본소득에 대한 열변을 토한 윤영배나 최근 바른음원협동조합을 출범시킨 신대철, 과거 반값등록금 운동에 결합했고 지금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김제동 등은 단순히 정당정치,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어느 진영에 설 것인가 하는 층위를 지나 실질적인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하나의 흐름을 보여준다.

연예인의 정치 참여가 최근 들어 더 본격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SNS의 발달이다. 김여진은 2011년도 고려대학교 교지 『고대문화』와의 인터뷰를 통해 SNS의 효과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발언과 행동에 나선 지) 3~4년 되었어요. (중략) 트위터라는 걸 시작하면서 (제 활동이) 알려지게 된 거죠.” 기사나 홍보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대중을 만날 수 있는 창구인 SNS는 연예인과 대중 사이의 관계 설정을 혁신적으로 바꿨다. 대중은 연예인이 무슨 일을 하고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보다 빠르게 접할 수 있었고, 연예인은 상대적으로 빠르고 여과 없이 대중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간 보이지 않았던 정치적 소신이나 행동들이 대중에게 비춰지기 좋은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사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는 시대적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됐다는 점이다. 연예인은 위에서의 외압에도 영향을 받지만, 자신들을 소비하는 대중의 정서에도 큰 영향을 받는 직업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는 동안 지속적인 양극화 심화, 절차적 민주주의의 후퇴, 인간의 상품화 가속 등을 경험한 대중은 상시적으로 개혁에 대한 갈증을 경험 중이다. 1인 시위나 대자보, 서명운동 등 중산층 시민계급 중심의 정치 참여는 점점 확산 추세에 있고, 이런 시대 분위기는 연예인의 정치 참여에 힘을 실어준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한계와 “참지 않아도 된다”는 가능성을 동시에 보는 것이다. 용산 참사 유가족 돕기 공연 참여를 기점으로 미디어법 개악 반대 투쟁 동참, 영화 <26년> 제작 투자, 세월호 특별법 제정 운동까지 활발한 정치 참여를 하고 있는 이승환의 예처럼, 자신의 정치적 소신이 시대와 공감대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하고 정치 참여를 실천하는 연예인의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시낭송 그리고 음악회’ 에서 김장훈은 단원고 학생 고(故) 이보미 양이 생전에 불렀던 <거위의 꿈>에 자신의 목소리를 추가해 듀엣곡을 불렀다. [사진=삶이 보이는 창 100호]
▲ 녹색당 당원이기도 한 가수 윤영배는 제11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3개 부문을 수상했다. 세 번의 수상 소감에서 모두 기본소득 문제를 언급하며 웃음과 환호를 자아냈다. [사진=삶이 보이는 창 100호]

연예인의 정치 참여가 보다 현실적인 층위로 번진 것에도 시대의 얼굴이 숨어 있다. ‘좋은 사람’을 뽑아 권력을 위임하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이 붕괴한 이후, 정치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많이 변했다. 한국의 ‘진보’ 성향 유권자들이 ‘좋은 시절’로 추억하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에도, 돈이 사람의 위에 군림하는 거대한 흐름 자체는 바뀐 적이 없다. 그 시절에도 대학 등록금은 폭등했고, 철도는 민영화를 준비하고 있었으며, 최저임금으로는 생의 존엄을 담보할 수 없었고, 불합리한 음원요율 때문에 음악인들은 말라 죽어갔다. 민주 대 개발독재라는 한국 사회의 거대담론에 정치권이 몰두하는 동안, 그 기저에 깔린 ‘돈의 정치’는 꾸준히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좋은 사람’을 뽑는 것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인 것은 이렇게 현실적인 층위의 행동에 나선 연예인 중 “정치적인 이슈가 아니다”라는 안전장치를 거부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직접 행동을 취하는 이들은 종종 자신들의 행동이 지니는 정치적 의미를 축소하곤 한다. 반값등록금을 말하는 이들이 “미래 세대의 존속을 위한 것이지 정치적 사안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식으로 말이다. 정치에 대한 대중의 혐오와 피로가 ‘정치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망설이게 만드는 것이다. 사안을 정파적,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이들은 당연히 경계해야겠지만, 정치성 자체를 부정하고픈 소심함은 정치 혐오를 가속화하고 사안의 의미를 단순화한다. 정치를 권력욕과 물욕에 사로잡힌 이들의 전유물로 생각하게 하는 자세는 나쁜 정치를 더 공고히 할 뿐이다.

최근 직접 행동에 나선 연예인들은 더 이상 사안의 정치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김제동이나 김장훈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정파적’인 요구가 아님을 강조할 뿐, 국가가 수행해야 하는 최소한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논의가 정치의 영역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신대철은 SNS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밝히는 한편 바른음원협동조합 출범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과 논의를 이어오며 정치권의 관심을 촉구했다. 심지어는 자신의 정치색을 기꺼이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윤영배는 녹색당의 당원으로 활동 중이며, 이승환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 헌정곡을 발표하며 “가수가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말리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 시민의 입장에서 좋고 싫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명백히 정치적인 사안의 정치성을 부정함으로써 정치의 주인인 인민이 정치를 혐오하게 만들고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악순환을 끊는 동시에, ‘선거가 아닌 다른 식의 정치 참여도 가능하다’는 점을 자연스레 보여주는 셈이다.

물론 낙관만 할 수는 없다. 이런 연예인에 대한 환호가 ‘우리 편 유명인’을 찾는 진영 논리를 반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개발 독재에 대한 평가와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지 못한 채 애매한 공존으로 타협한 87년 체제의 한계는, 한국의 정치를 상대 진영에 대한 종교적 수준의 증오와 절멸 의지, 진영 논리로 가득 찬 제로섬 게임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연예인이 ‘우리 편 유명인’ 내지는 ‘개념 연예인’으로 소비되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연예인의 정치 참여를 당연한 시민의 권리 행사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편 유명인’으로 소비하는 게 반복된다면 이러한 흐름 또한 지리멸렬해질 것이다. ‘폴리테이너’라는 호들갑스러운 호칭을 거두고 일상적인 흐름으로 받아들일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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