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혁의 야매독서노트] (7) 대리를 위한 나라는 없다.

대리사회_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2016, 김민섭, 와이즈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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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4 16:19 | 최종 업데이트 2017-04-04 16:21

전작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로 대학 지식노동자의 삶을 처연하고 담담하게 서술하였던 저자의 두 번째 책 ‘대리사회_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을 읽어본다. 동갑내기 저자의 이력과 삶의 궤적이 낯설지 않아 감정이입에 이르는 시간이 짧다. 여전히 글의 힘을 믿는 그의 믿음이 부럽다.

전작의 모태가 된 게시물이 인터넷에 화제가 되었을 때 필명(309동 1201호)만으로 존재하던 그가 정체를 잘 숨기길 바랐다. 언제나 그렇듯 비판하는 내부자는 정당성을 인정받기보다 배신자라는 레떼르가 주어진다. 그가 페이스북에 대학을 떠나게 된 경위와 소감을 담담하게 밝혔을 때, 대단한 수사학적 문장과 포부 같은 건 없었다. 다만 왠지 모를 서글픔과 함께 새로운 책의 저자를 만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같이 왔다.

새로 게시물을 연재하고 책이 나왔을 때 그 막연한 희망이 실현된 기분이었다. 나는 이 책을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처럼 스스로 땀으로, 스스로 힘으로 살아간 자서전적 르뽀로 읽었다. ‘대리사회’라는 거대한 사회적 구조에 주목하는 이들도 있지만, 저자의 말처럼 대리사회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낯설지 않았다. 우리는 너무나 대리인이 되기를 강요받고,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몇 달째 토요일은 나의 육아를 대신하는 이가 있으며, 심지어 이 글을 쓰는 순간조차 누군가 나의 대리 노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래 문장들은 조금 더 내 양심을 건드리고 마음을 아리게 한다.

“여전히 나의 역할을 대리하는 소중한 이들이 있다. 아내는 지금도 하루보다 긴 하루를 살아낸다. 이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나의 부모님은 아직도 나의 걸음마를 지켜보는 듯 하다. 내가 버텨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추억하지 않기로 한다. 대신 온전히 기억하고 아파할 것이다. 그렇게 어제보다 조금은 더 아이의, 아내의, 그리고 내 소중한 이들의 눈을 조금 더 오랫동안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어서, 그 어느때보다도 즐거운 나날들이다.”  -p. 139

이 책은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사회를 해부하지 않는다. 단지 대리운전 사회 생태계를 저자의 땀으로 생생히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대리운전은 일상이 됐지만, 단편으로만 대리운전을 만난다. 일상이 된 단편을 하나의 세계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우리시대 노동르뽀의 한 정점이 될 것이다. 대리운전 노동자를 이처럼 보여준 글은 본 적이 없다.

적어도 이 책은 21세기 대한민국 노동현실을 기록한 저작으로서도 평가받아야 한다. 대리기사가 경험하는 대한민국, 도시는 외롭다. 경쟁이 서로를 잡아먹는 수준을 넘어, 존재조차도 사라지는 야수들의 밤이기도 하다. 또, 도시의 밤은 협력을 통해 어둠을 벗어나고 타인의 존재를 존중하는 문명이 교차하는 곳이다. 마치 우리시대 대리 세계에 대한 참여관찰을 통한 학술서를 만나는 느낌이다. 아니, 캠퍼스 지식인의 학술서라면 절대 다다를 수 없는 현장성이 녹아들어 있다. 아마도 우리는 수 없이 명멸하는 대학 연구자 중 1인을 얻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노동현장 르뽀를 작성하는 노동자/작가를 얻었다고 감히 추천할 수 있으리라.

저자와 나는 동갑내기다. 똑같이 지방대를 나왔다. 나는 세대론에 친화적인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자와 나는 88만 원 세대로 유명해진 삼포세대 선두에 서 있는 인구집단의 일원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삼포, 오포, 칠포. 나날이 포기할 욕망이 늘어나는 우울한 시대 속에서 적어도 포기의 첫 장을 열었던 오늘날 우리 또래가 그래도 한 걸음, 한 걸음 삶을 나아간다는 정서적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삶이 빛나지 않더라도, 다시는 우리에게 빛나는 경제성장의 시대가 오지 않을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더라도. 위대한 영웅과 신화들을 쌓았던 앞선 세대들에게 작고 소심하고, 무능하다고 질타받을지언정 삶의 주인이고자 하는 분투를 책으로 써주어서 너무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어쩌면 이 책은 삼포세대의 분투기다. 그래서 더 감동적이었는지 모르겠다. 눈앞에 쌓여 있는 상품들 앞에서 1대리, 2대리하는 것들이 우리 삶을 쪼잔하게 만들지는 몰라도 저자의 표현대로 저 괴물들의 세상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분투하는 삶과 노동들이 너무나 정겹다. 현실이 암울하고 세상이 우리를 소외시키지만, 우리가 모든 것을 포기할지라도 스스로를 포기할 수 없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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