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엄니열전] (1) “사드야,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 마라” /이형희

봄이면 쑥 뜯어서 자식네로, 조카네로 부치는 엄니, 도경임(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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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4 13:30 | 최종 업데이트 2017-04-14 14:33

[편집자 주=성주 글쓰기 모임 <다정>은 소성리 ‘엄니(어머니의 사투리)’를 만나고 있습니다. 사드 배치 철회 투쟁 최전선에서 선 소성리 엄니들의 생애를 더듬으며 이 시대 평화를 생각해 봅니다. <다정> 회원들이 쓴 글을 부정기적으로 <뉴스민>에 연재합니다. ]

봄이면 쑥 뜯어서 자식네로, 조카네로 부치는 엄니, 도경임(78)

이형희(성주 글쓰기 모임, <다정> 회원)

지랄한다, 지랄해!
이 손가락으로 박근혜 찍어조놓고 탄핵됐다고 이 손으로 또 박수쳤으니.
지랄한다, 지랄해, 하하하하!
대통령이 탄핵되던 날, 마을회관에 모여 다 같이 티비를 봤어. 다 먹은 음료수병을 베개 삼아 누웠다가 또 일어나서 만세 부르다가 했어. 읍에서 온 사람들이 오늘은 만세 부르고 놀자며 케이크까지 사 들고 왔대.
그라자!
오늘만큼은 사드 갖고 들어온 대통령이 쫓기나가는 날인데 까짓 꺼, 함 웃어보자, 웃어봐!

▲연좌농성 중인 소성리 주민들. 사진에서 제일 왼쪽이 도경임 엄니.

열네 살 때 엄마가 돌아가셨어. 그런 나를 우리 올케가 키워줬지. 올케가 낳은 딸이랑, 그러니까 질녀랑 한 살 차이가 난다. 얼마 전에 이 대구 사는 질녀 집엘 다녀왔어. 매년 된장이며 고추장을 만들어 택배로 부칫는데, 이번엔 직접 대구 가서 담가주고 왔어. 요새 몸이 안 좋아서 얼굴도 한 번 보고, 가서 담가 줘야 내 마음이 더 편할 것 같아서 그랬지. 이제 나이도 있고 하니 따로 짓는 농사는 없지만서도 그렇다고 시간이 남지도 안어. 봄 되면 쑥 뜯어야지, 냉이 캐야지, 고사리 뜯어야지 잠시도 쉴 시간이 없어. 셋 집 아들네로, 딸네로, 조카네로, 질녀네로. 짐 싸려면 반찬통 20~30개는 족히 있어야 해. “아지매, 무슨 장사해요?” 반찬통 가게 주인이 물을 정도지. 짚신 장수 새 짚신 못 신어본다고, 어지간히 뜯고 해도 이래 보내고 나면 정작 내 먹을 것도 안 남아. 그래도 키워준 울 올케며 자식들 생각하면 힘든 줄도 몰라.

벽진에서 시집와서 아들 세 명에 딸 한 명 얻었지. 성주에 살았지만 참외농사는 안 짓고 소도 키우고 남의 집 참외 일도 도와주며 그렇게 살았어. 그 돈으로 논도 열 두 마지기 사고 집도 짓고 했어. 집안 살림이 형편없어서 딸은 대학을 못 갔어. 그거 생각하면 평생 아픈 손가락이야. 그래서 쌀이며 김치며 계절마다 나는 나물들이라도 꼬박꼬박 잊지 않고 갖다 대주지. 애들이 공부하는데 애 마이 묵었다. 방도 사글세 얻어놓으니깐 부엌도 없고 그래. 그래도 살았다. 큰아들이 대학교 졸업할 때 ‘가다마이’도 빌려 입었을 정도니깐. 촌에서 농사 지어가 공부시킬라카이 형편이 곤란했어. 큰아들은 결혼해가 사글셋방 얻어가 있고, 작은아들은 여인숙 얻어 살면서 형수한테 밥 얻어먹고 살았어. 이사 가면 도지(전세) 얻어가 따라가고, 또 도지 얻어가 따라가고. 막내아들은 장가갈 때까지 그렇게 살았다. 그런 큰아들이라서 길가 옆에 논을 물려줬어. 골프장 가는 길 바로 옆에 그 논이 있어. 자식들도 다 컸고, 이제 슬슬 나 있는 곳으로 집 좋게 지어서 들어올라 했었어. 그런데 사드가 들어온단다. 망할 놈의 사드가.

골프장이 들어오기 전에는 거기서 몇몇 사람들이 소도 먹이고 그랬었어.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자리에 공동묘지가 들어오네, 뭐가 들어오네, 소문만 무성했지. 그러더니 얼마 후 골프장이 들어왔어. 1차선이던 길이 넓어지고 마을회관도 새로 지어졌지. 골프장에서 회관에 티비도 사주고, 설·추석으로는 선물도 갖다 줬어. 여름이면 골프장 안에 들어가 몇 시간씩 풀도 뽑고 해서 돈도 벌긴 벌었어.

마을사람들이 반대할까봐 왜관으로, 대구로, 골프장이 지어진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다니며 설명도 해주고 그랬었어. 그때 골프장을 더 막았어야 했나, 지금은 그 생각도 드네.

▲사드 배치 부지로 예정된 성주롯데골프장 진입로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는 소성리 주민과 원불교도들.

골프장 가는 그 길에 천막이 또 쳐졌더라. 원불교 교무님들이 밤새 농성을 하신단다. 촛불집회를 마치고 마을로 오다 보면 천막이 눈에 들어오더라. 가슴이 찌릿해. 원불교가 없었으면 어쨌을까 싶어. 처음 마을에 원불교가 들어올 때 차 두 대를 맞춰, 한 집에 두 명씩 마을사람들 관광을 시켜줬어. 전라도 이리에 가서 원불교 대학이며, 병원을 구경했지. 원불교 정산종사 생가 근처로 마을 몇 집을 사들여 들어온 게 우리하고 인연이라면 인연이야. 서울집회에 따라가 청계천 다리를 가득 메운 교도들 보고 깜짝 놀랐어. 전국에서 왔다는데 끝이 안 보일 정도였으니까. 우리 마을에 원불교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딸은 저녁에 집회 가면 춥다고 조끼를 사주고, 아들은 밤 열시면 나한테 전화가 와. 촛불집회 마치고 집에 오는 시간이 걱정되나 봐. 거길 다니다 보면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나지. 그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사람은 왜관에서 오는 아저씨야. 매일 저녁 친구 2명을 태워서 이곳 성주로 온대. 바로 근방에 사는 나는 관심이나 있었나. 근데 자기 지역을 비껴갔는데도, 그 심정을 잘 안다고 매일 촛불에 온다고 해. 참 대단하다 싶어.

이제 대통령도 탄핵됐으니, 사드만 물리치면 된다고 다들 그래. 그런데도 누구를 뽑아야 할지 아직 정하지를 못했어. 사드는 안 된다고 확실하게 얘기하는 사람이 없어. 그래도 나는 다짐해 볼란다. 이제 선거할 때는 내 자식이 좋다는 후보한테, 내 손자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후보한테 투표할라 그래.

멀리 사는 조카가 전화 와서 그런다.
“고모, 고생 어지간히 하고 포기 하이소. 국가가 하는 일은 못 막아요.”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죽을 때까지 한번 해 볼란다.
끝까지 한번 해 볼란다.

맵은 칼바람이 부는 내 속마음하고는 다르게 또 봄이 왔어. 쑥 한 봉지 택되면 딸네로 부치고, 또 한 봉지 택되면 조카네로 부치고, 또 쑥이 더 커서 억새지면 떡 해 먹게 뜯어야 해. 내한테는 이게 봄이야.

사드야!
내가 가는 길에, 내 봄날에,
태클을 걸지 말그라, 어이!

te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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