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기동대 투입된 시신탈취와 이후, 삼성이라 달랐던 건가

[열사 투쟁으로 얻은 노조 깃발] (2)염호석 열사 시신탈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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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31 18:50 | 최종 업데이트 2018-07-31 20:11

1991년 5월 경찰병력이 장례식장 벽을 뚫고 들어와 시신을 탈취한 일이 있었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한진중공업 박창수 열사 의문사 진상규명 중 생긴 일이다. 당시 경찰의 명분은 비록 유족이 반대하지만, 부검을 위한 강제집행이었다. 2014년 5월, 경찰 기동대는 삼성전자서비스 염호석 열사의 장례식장에 난입했다. 명분은 112신고였다.

염호석 열사 장례와 관련해 경찰병력 투입이 충격을 주고 주목받았던 이유는, 법적 권한이 있는 친모와 친부 사이에 장례에 관한 의견이 다름에도 어느 일방의 편을 들어 경찰병력이 투입되었다는 데 있다. 또 이 경찰병력 투입 결정이 112신고로 이루어졌다는 데 있다. 협의로 이루어져야 할 사적 장례절차에 국가권력이 그 어떤 명분도 없이 개입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금속노조 상무집행위원회에 올해 2월 9일 ‘삼성전자서비스 염호석 열사 투쟁 및 2014년 임단협 투쟁평가안(아래 평가서)’이 제출됐다.

평가서에 따르면, 금속노조는 염호석 열사 투쟁에 대해 “열사의 유서내용은 열사정신 계승투쟁과 함께 삼성전자서비스지회(아래 삼성서비스지회)의 임단협 쟁취 투쟁의 방향을 정하게 된다. 열사 유지에 따라 염호석 열사 투쟁은 열사의 명예회복 투쟁이면서 지회의 승리를 바라를 임단협 투쟁이 되었다”고 밝혔다. 또, “5월 17일 염호석 열사의 차가운 몸이 강릉에서 발견되자 5월 18일 금속노조 산하 삼성중앙쟁대위원회는 5월 19일부터 전체 조합원들의 무기한 전면파업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 노숙농성을 결정”이라며 당시 급박한 상황을 전한다.

경찰병력은 5월 18일 서울의료원 강남분원 장례식장에 투입됐다. 또, 20일 경남 밀양화장장에서 유골함마저 탈취했다. 금속노조는 평가서 중 ‘염호석 열사 시신탈취 저지 투쟁’에서 이 같은 ‘상황’을 짧게 기술했다. 그러면서 “삼성자본이 경찰과 결탁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만행이었다. 그러나 염호석 열사의 시신탈취와 화장은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삼성에 대한 분노와 공분을 낳아 전국 투쟁을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노동운동 역사상 처음으로 열사시신 없이 치르는 열사투쟁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 출처 : 미디어충청 자료사진 ]
▲[ 출처 : 미디어충청 자료사진 ]

경찰병력 투입은 어떻게 이뤄졌나?

5월 18일 새벽과 새벽 6시30분 금속노조 장례절차에 관한 일체사항 친부, 친모로부터 각각 위임받음.
5월 18일 서울 청계광장 등 도심 곳곳 세월호 희생자 추모 ‘침묵행진’.
5월 18일 오후 6시10분 112최초 신고.
신고내용 ‘강남분원인데…유가족도 있고 노조원들에게 갇혀 나가지 못합니다’
신고 10분만에 ‘서울경찰청, 강남경찰서’ 경찰병력 300명 투입.
5월 20일 친모와 금속노조 요구에도 불구 유골함마저 빼돌리도록 ‘경남경찰청, 밀양경찰서’ 경찰병력 200명 동원.

위 사건에 대해 당시 금속노조는 삼성서비스지회가 장례절차를 위임받았고, 열사 친모조차 친부의 장례절차에 동의하지 않는 상황에서 경찰병력 투입은 ‘공권력 남용’이라고 정면 비판했다. ‘경찰 책임자를 처벌해야 하며, 시신탈취 배후에 삼성이 있다’고 제기했다. 경찰의 법 위반 혐의로 제기된 것만 해도 경찰관직무집행법위반, 직권남용, 불법체포감금, 집회방해죄, 장례방해죄 등이었다.

정치권도 ‘열사의 사망과 시신탈취 진상을 조사하고 경찰과 삼성 사측에 책임을 묻겠다’고 나섰다. 실제 새정치민주연합은 열사의 유골함 탈취가 강행된 5월 20일 ‘당 차원의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6월 14일엔 박영선 당시 원내대표가 삼성서비스 사태 해결을 위해 직접 노조측과 만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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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삼성서비스지회 자료사진 ]

드러나지 않은 사실관계

미디어충청이 최근 확인한 새정연과 경찰 간 2014년 5월 22일 국회원내대표실에서 열린 비공개 면담 내용에 따르면, 이인성 경찰청 차장은 시신탈취의 근거가 된 ‘5월 18일 18시 10분 112 최초 신고자’에 대해 “염호석의 외삼촌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유족간 협의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유체, 유골의 승계자가 아닌 제3자의 112신고만으로 법적근거 없이 장례식장에 300명의 기동대를 10분 만에 투입했던 것이다.

경찰은 장례절차 개입에 앞서 ‘서울경찰청과 강남서’ 등 병력 300명을 준비해 ‘대비’했다는 것도 시인했다. 이와 관련 서울경찰청이 새정연 측에 제출한 별도의 문서엔 5월 ‘18일 오후 3시 경력 3중, 서울의료원 강남분원 우발대비 배치(600m 상거한 강남면허시험장 대기)’했다고 적혀있기도 하다.

이날 면담자료엔 열사의 시신탈취와 관련해 일부 사실관계가 드러났고, 각종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새정연은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을 알리며 경찰에 ‘정확한 조사와 보고’를 요청했고, 경찰은 “객관적 사실을 명확하게 확인해보도록 하겠다”고 대답했다.

새정연과 경찰 간 면담에서 최소 확인된 사실관계와 새정연과 금속노조, 경찰의 후속조치는 지난 해 염호석 열사 투쟁 과정에서 알려지지 않았다. 열사 시신탈취 관련 진상규명 움직임은 노조와 정치권에서 5월말까지 성명과 기자회견, 집회 등이 진행되다가 흐지부지됐다. 시신탈취 관련 진상규명과 삼성서비스 사태 해결에 강한 의지를 보였던 새정연은 당시 국정감사까지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진행되지 않았고, 새정연의 진상조사위원회 결과자료도 찾아보기 어렵다.

새정연 관계자는 “당시 염호석 열사 사망과 시신탈취 관련 새정연 진상조사위원회의 결론은 있었다. 새정연 내 온도차이가 있긴 했지만 이와 별개로 우리가 계속 개입하긴 곤란한 상황”이었다고 전하며 “유족과 금속노조, 경찰이 ‘경찰 책임자 내부 징계를 검토하고 향후 국정감사를 포함해 이 문제를 더 이상 제기하지 않기로’ 얘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경찰이 책임자를 징계했는지에 대해선 “경찰은 당시에도 프라이버시라고 알려주지 않았으며 확인하기 어렵다”고 했다.

‘경찰 내부 징계 검토’ 수준에서 ‘염호석 열사 시신탈취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제기하지 않기로 노조와 경찰 양측이 양해했다’는 것에 대해 금속노조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지난 해 삼성서비스 투쟁을 담당했던 금속노조 선출직 임원, 국회 소통을 맡은 금속노조 간부 등 관계자 모두 취재 내용에 대해 “제가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모릅니다”고 했다.

입맛에 맞는 평가 아니라면

금속노조의 평가서와 같이 민주노조운동진영은 지난 해 ‘노동운동 역사상 처음으로 열사시신 없이 치르는 열사투쟁’을 했다. 그러나 평가서에는 경찰의 열사시신 탈취 관련 3일간의 상황이 기술됐을 뿐,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등 이후 대응에 대한 내용은 없다. 염호석 열사 시신탈취 저지 투쟁 속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했던 노조와 정치권의 대응이 어떻게 진행됐고, 무엇으로 결론 났는지 사실관계와 과정도 찾아볼 수 없다.

블라인드 교섭이라 불린 비공개 1대1 실무 집중교섭 시기였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입맛에 맞는 선택적 평가가 아니라면 노조탄압과 열사정국으로 열린 교섭이기에 금속노조와 삼성서비스지회는 ‘경찰병력의 열사 시신 탈취와 이후 노조 대응’에 대해서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측면에서 사태 해결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던 새정치민주연합도 ‘투쟁 주체의 판단을 우선’이라는 명분이 있다 해도 ‘정치권의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없을 같다.

삼성서비스 투쟁이 금속노조와 삼성서비스지회 몇몇 간부들의 투쟁이 아니었다면, 시신탈취의 책임을 경찰에 제기하지 않기로 유족과 금속노조, 경찰이 합의한 것이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어떤 배경과 이유 때문이었는지 밝혀져야 한다. 사실이 아니라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런 거짓말을 했는지도 밝혀져야 한다. 1년이 지난 지금, 시신을 탈취한 경찰 책임자를 처벌했는지 안 했는지, ‘검토’로 그쳤는지 확인조차 되지 않는 현실은 지난해 삼성서비스 깜깜이 블라인드 교섭만큼이나 염호석 열사 투쟁 의미마저 어둡게 만들기 때문이다. (기사제휴=미디어충청/정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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