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성주·김천 주민을 분노케 한 사드 수송 미군의 웃음

하얀 이 드러내고 웃는 미군
천진난만하게 웃는 의경들
그 앞에서 하소연하고, 탈진한 주민들

23:01

4월 26일 낮 12시께, 지옥 같은 새벽을 맞았던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를 찾았다. 수많은 경찰 수송 버스가 소성리 보건소 앞 삼거리 일대에서부터 골프장 입구까지 늘어섰다. 수를 세는 게 의미가 없었다. 곳곳에서 앳된 얼굴을 한 의경, 그리고 경찰이 도시락을 먹었다. 밤새 뜬눈으로 지샌 경찰 일부는 버스 안에서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이날 새벽 2시께, 헤아릴 수 없는 경찰이 소성리로 몰려들었다. 약 8천 명. 전국 곳곳에서 소성리로 모여든 셈이다. 전날 저녁부터 사드 체계가 배치 예정지인 성주 롯데골프장으로 들어간다는 소문이 소성리를 배회했다. 성주와 김천 주민들, 원불교 관계자 등 60여 명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마을 지킴이에 나선 상황이었다. 경찰은 순식간에 왕복 2차선 도로에 이들이 지그재그로 세워 놓은 차량 약 30대를 견인했다. 운전석 창문은 부쉈고, 마을 지킴이에 나선 주민들은 여러 무더기로 나눠 고착시켰다. 울음과 비명, 고성이 뒤섞였다.

새벽 4시 45분과 6시 40분께 각각 8대, 23대에 달하는 미군용 트레일러 차량으로 사드 미사일과 레이더 일부로 추정되는 장비가 주민들 눈앞을 지나 골프장으로 향했다. 복수의 주민들은 당시 차량을 운전하던 미군들이 흰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고 기억한다. 박희주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원장은 “흑인 군인이 흰 이를 드러내고 웃으니까 웃음 더 부각돼 보였다”며 “순간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미군의 웃음은 박 위원장을 분노케 했다. 박 위원장은 “화가 확 오르는데, 경찰이 ‘웬만하면 이제 고만하죠’라고 하더라”며 “그 말에 너무 화가 치밀었다”고 덧붙였다. 박 위원장은 분노로 경찰에 항의하는 과정에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현장에서 연행됐다. 이날 현장에서 연행된 주민은 박 위원장이 유일했다.

▲26일 오후 2시부터 성주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집회가 열렸다.

미군의 미소는 송대근 씨도 목격했다. 이날 김천을 통해 소성리로 들어온 미군 트레일러는 초천면 용봉리 주민 송 씨 집 앞을 지나쳤다. 전날 자정께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하고 새벽 6시께 집을 나선 송 씨가 맞닥뜨린 건 거대한 미군 트레일러와 그 안에서 웃고 있는 미군의 모습이었다.

송 씨는 “군용차 큰게 들어가는데, 요샛말로 멘붕 이더라”며 “미군들 씩 웃으면서 차 몰고 들어가고 경찰들은 아예 뭐 움직이지 못하게 원천봉쇄 해놨으니까. 도로엔 차가 나갈 수도 없었다”고 전했다.

미군만 웃음을 보인 건 아니다. 윤명은 원불교 성주성지수호비상대책위 상황실장은 “제일 기분이 나빴던 건, 웃어. 그런 와중에도 애들이 웃고, 앞에서 아줌마들이 울며 불며 사정하고 있는데 웃어”라고 새벽 상황을 회상했다.

윤 실장이 기자와 소성리 보건소 뒤쪽에 위치한 원불교 교당에서 대화를 나눌 때, 의경 4명이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겠냐며 찾아왔다. 한 원불교 교무가 “평상시면 모르겠지만, 오늘 같은 날 어떻게 이렇게 오냐”는 지청구를 날렸지만, 이들은 화장실 사용을 ‘허가’ 받았다. 4명은 10여분간 화장실을 사용했고, 올때와는 달리 2명씩 교당을 벗어났다. 한 의경은 양치질도 마친 듯 한 손에 칫솔을 들었다.

▲칫솔과 경찰

윤 실장은 “저렇게 천진할 수가 있냐고, 생글생글 웃고 교육을 그렇게 시키기도 하겠지만··· “이라고 화장실 앞에 서 있던 의경들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윤 실장을 포함한 주민들은 밤새 그들을 괴롭혔던 경찰의 모습과 천진난만하게 ‘적진’을 찾아와 화장실 사용을 요청하고 웃는 모습 사이에서 갈 길을 잃은 모습이었다.

경찰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오후 2시께부터 각 지역에서 소성리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 약 500여 명이 규탄 집회를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집회장 인근을 배회하는 경찰들에게 일부 시민들이 “부끄럽다. 태극기 떼라”며 야유를 보냈다. 경찰복에 박음질 된 태극기를 가리키는 거였다.

소성리 노인회장 신동옥 씨는 경찰 대신 한민구 국방장관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신 씨는 “만 명, 만 명이 뭡니까. 노인 몇 명 사는 이 골짜기 시골에. 그것도 한밤중에 무엇을 한다고 대한민국 경찰을 다 모아다 놓고, 약한 시골 노인들 밀어내고, 이걸 통솔하는 대한민국 정부, 이거 정말 눈물이 난다”고 울분을 토했다.

신 씨는 “여태 다른 사람들 다 욕해도 한민구 국방부 장관 욕한 적 없는데, 오늘 아침엔 정말로 욕이 나오더라”며 “어떻게 경찰을 써먹을 때가 없어서 이런 데다 써먹느냐 말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골프장 입구 앞 100미터 지점에서 집회 참석자들이 ‘불법사드철거’ 의지를 다졌다.

오후 3시 40분께, 규탄 집회가 정리되고 집회 참석자들은 법원이 허용한 골프장 입구 100m 앞까지 행진을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경찰은 이들의 행진을 불허했지만, 법원은 이날도 골프장 입구 앞 100m까지 행진을 허용토록 했다. 꽤 가파른 오르막이 행진을 시작한 시민들 앞에 펼쳐졌다. 롯데골프장을 만나기 100m 전, 시민들은 바닥에 락커칠을 시작했다. “불법사드 철거”

▲4월 26일 구 롯데골프장 입구에서 100m 떨어진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