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우리는 항쟁하는 사랑기계들이다 /김수상

14:24

우리는 항쟁하는 사랑기계들이다

김수상

울고 있다
성주촛불이 울고 있다
성주촛불이 광장에서 울고 있다
골프장을 빼앗긴 어제는 원통하고 분해서 땅을 치며 울었지만
오늘은 ‘사랑으로’를 부르며 함께 울고 있다
아이도 어른도 노인도 노래를 따라 부르며 울고 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아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경찰은 26일 새벽 0시부터 소성리로 가는 모든 길목을 차단했고
노인들만 사는 작은 마을에는 8천명의 군경이 들이닥쳤다
미군은 26일 새벽 4시 43분과 새벽 6시 50분 두 차례에 걸쳐
엑스밴드 레이더와 발사대 6기, 요격미사일 등 사드 핵심 부품을
트레일러로 실어 날랐다
미소를 머금은 미군들은 골프장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통곡의 소리가 소성리의 아침 하늘에 번졌다

소성리 이장님의 비상사이렌이 울렸고
길에 주차된 차량의 유리창은 깨졌고
미사를 드리는 제대는 탈취당하고
원불교 교무님들은 들려나가고
임순분 부녀회장의 앞니는 팔꿈치로 가격당하고
평화지킴이의 갈비뼈는 부러졌고
할매들은 땅을 치고 통곡하며 실신했다
불법연행은 자행되었다
모든 게 불법이었고
모든 게 폭력이었다
소성리는 군사독재의 계엄령보다 더 지독한 암흑천지였다

평화를 강탈당한 같은 날 오후,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유력 대권후보와 한반도 비핵화구상을 지지하는 명망가들이 모여서
‘천군만마 국방인 1천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을 했다

불법천지 무법천지의 땅, 소성리에는
천군만마는 고사하고 단 한 명의 군사도, 단 한 마리의 말도 보태주지 않았다

이제 우리가 믿을 건 우리들의 사랑밖에 없다
성주촛불들이 부둥켜안고 운다
우리가 우리의 온기로 몸을 녹이며
이 사랑의 항쟁을 이어나가는 수밖에 없다
성주촛불 동남청년단 이강태 팀장은 울먹이며
4월 26일 새벽을 이렇게 증언한다

“오늘 사드가 다 올라간 후에 경찰들과 대치 중에 용봉3거리에서 막혀서 못 들어오신 김충환 위원장님과 김형계 단장님께서 그 먼 길을 걸어서, 경찰 무리를 뚫고 들어오시면서, 제게 고생했다, 며 안아주시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지난 새벽에 저희들은 정말 힘들고 외로웠습니다.”

이 말 앞에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 말 앞에 무슨 말을 더 보탤까
말들이 민들레 꽃씨보다 더 창궐하는 시절,
아무 말 없이 찾아와서
할매들 야윈 손 한 번 잡아주는 온기가 우리는 그립다
거짓 울음은 통곡하는 척 하지만
진짜 울음은 입을 틀어막고 운다
소성리가 울고 있다
문상도 오지 않고
명복을 빈다고 입말만 지껄이는 사람들을 성주촛불은 믿지 않는다

소성리가 군홧발에 짓밟혔다
여기 이곳의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 건드리지 마라
여기는 너희들이 짓밟는다고 고개 숙일 땅이 아니다
짓이길수록 더욱 당당하게 고개를 쳐드는 이곳은
평화의 씨앗을 가득 품은 민들레의 영토다

사랑은 기억이다
함께 웃고 울며 끈질기게 투쟁한 사랑의 기억들이다
함께 나눠먹은 밥들의 기억들이며
함께 부른 노래들의 기억들이다
우리는 이 따뜻한 사랑의 기억만 데리고 평화의 나라로 갈 것이다
소성리 할매들이 마을회관에 병사처럼 누워서
깜빡잠을 자며 꿈길을 걷는다
‘산 만데이’에 있는 미사일을 끌어내릴 꿈을 꾸신다

당신과 나 사이에 소성리가 있다
그 사이를 사랑으로 채워야 한다
사랑만이 야만의 폭력을 평화의 씨앗으로 바꿀 수 있다
사랑만이 우리를 평화의 거룩한 땅으로 데리고 갈 수 있다

소성리 사월의 민들레는
옆의 풀들에게 상처 하나 내지 않고
구만리장천을 날아간다
우리는 항쟁하는 사랑기계,
우리도 그렇게 싸울 것이다

전쟁무기 사드를 당장 철거하라!
사드가고 평화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