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 칼럼] ‘러빙 대 버지니아’, 불법 사랑·불법 인간은 없다

어떻게 사람의 존재와 사랑이 불법일 수 있나

18:52

버지니아주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밀드레드와 리차드 러빙. 그들은 어른이 되어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건 위험한 일이었다. 1958년, 버지니아주에서 백인인 리차드와 흑인인 밀드레드의 사랑은 불법이었다. 노예제가 폐지된 지 거의 백 년이 다 되었지만, 버지니아는 여전히 타 인종 간 성관계와 결혼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미국의 여러 주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밀드레드와 리차드의 사랑을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둘은 백인과 유색인종의 결혼이 합법화된 워싱턴 D.C로 가서 결혼한다. 그리고 고향인 버지니아에 돌아와 둘만의 보금자리를 꾸몄다.

마침내 부부가 되었다는 행복도 잠시. 버지니아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새벽, 낯선 침입자들이 곤히 잠들어 있던 러빙 부부를 깨운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자고 있는 ‘범행 현장’을 급습한다는 명목으로 새벽 2시에 문을 부수고 쳐들어온 것이다. 침실 벽에 걸어 놓은 결혼증명서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부부는 현장에서 체포돼 투옥된다. 밀드레드는 당시 만삭이었지만 법은 냉정했다. 백인인 남편이 하루 만에 풀려난 것과 달리 유색인종인 그녀는 며칠을 더 구치소에 갇혀 있었다.

▲워싱턴 D.C.에서 러빙 부부. (Credit: Bettmann / Getty Images)

밀드레드와 리차드는 타인종 사이 결혼과 성관계를 금지하는 소위 ‘인종순결법(Racial Integrity Law)’을 위반한 중범죄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는다. 러빙 부부는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25년간 버지니아에서 추방되는 조건으로 형 집행유예를 받았다.

버지니아에서 추방돼 워싱턴 D.C로 터전을 옮긴 러빙 부부는 이후 세 아이를 낳고 살아간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버지니아에 두고 온 가족과 친지들을 만날 수 없다는 고통과 아이들을 고향에서 평화롭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나 버지니아로 돌아간다는 것은 러빙 부부뿐 아니라 태어난 아이들에게도 위험한 일이었다. 가혹한 법 앞에 아이들은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범죄 행위 증거로 여겨질 뿐이었다.

러빙 가족이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가족으로 버지니아에서 살 수 있는 길은 그들의 사랑을 불법으로 규정한 주 정부에 맞서는 것뿐이었다. 마침 흑인 민권운동의 분수령이 된 1963년의 ‘백만인 대행진’이 러빙 부부가 살고 있던 워싱턴에서 열린다. 민권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 행진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명연설을 한다. 이에 고무된 러빙 부부는 고향 버지니아에서 사는 꿈을 이루기 위해, 불법으로 규정된 자신들의 존재와 사랑을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결심한다.

인권 신장의 새 지평을 연 ‘러빙 대 버지니아’

그렇게 밀드레드와 리차드 러빙 부부는 1967년 6월 12일 내려진 미연방 대법원의 역사적 판결인 ‘러빙 대 버지니아 주 (Loving v. Virginia)’ 소송 원고가 된다. 이 역사적 소송의 원고 이름으로 너무나 걸맞은 ‘러빙’이라는 성을 밀드레드와 리차드가 가진 게 우연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만장일치로 러빙 부부 손을 들어 준 연방대법원은 타 인종 간 연애와 결혼을 금지한 버지니아 주법이 연방헌법에 어긋나고, 백인우월주의에 기반한 인종차별임을 천명했다. “타인종과의 결혼 여부 결정은 개인이 결정할 문제이지, 국가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

60년대 민권운동의 중요한 승리 중 하나인 ‘러빙 대 버지니아’ 판결은 인간의 존엄성과 보편적 인권을 확대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한 소송 중 하나이다. 이 역사적인 사례는 최근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판례로 인용되기도 한다.

러빙 부부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몇 차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가장 최근에 나온 영화 <러빙>은 작년 깐느영화제에 공식 초대됐고, 각종 영화제에서 남녀주인공이 연기상 후보에 오르는 등 호평을 받았다. 올봄 한국에서도 개봉됐다.

신의 이름으로 부정된 사랑

“전지전능한 신은 백인, 흑인, 황인, 말레이인, 홍인종을 창조해 각각 다른 대륙에 살게 했다. 타인종 간의 결혼은 이러한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다. 인종을 서로 따로 둠으로써 섞이지 않게 하려는 것이 신의 뜻이다.”

러빙 부부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버지니아 법원이 판결문에서 한 말이다. 타인종 간 사랑이 신의 뜻을 거스르는 죄악이라는 주장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스꽝스럽게 들리기까지 하는 궤변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타인종 간 사랑을 ‘인간 본성’과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비정상’으로 여겨 혐오해 온 사회에서 널리 퍼진 생각이었다. 신의 이름을 이용해 백인우월주의를 도모하는데 이용된 악법은 미국뿐 아니라 히틀러의 나치 독일과 인종별 등급으로 나눠 분리·차별하던 아파르트헤이트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도 있었다.

이런 사회에서 백인우월주의의 기치 아래 타인종 간 결혼과 연애는 불법화되어 중범죄로 처벌됐고, 러빙 부부뿐 아니라 수없이 많은 연인들이 고통과 차별을 겪었다. 그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 또한 너무나 자연스럽게 행해졌다. 타인종 커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범죄의 산물일 뿐이었다.

얼마 전 스탠드업 코미디언 트레버 노아의 공연을 본 적이 있다. 트레버 노아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으로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당시 흑인과 백인의 성관계와 결혼은 남아공에서 불법이었다. 존재 자체가 범죄였고, 가족이 같이 손을 잡고 길을 걷지도 못했다는 것을 코미디 소재로 삼아 재미있게 얘기하는 걸 보면서 같이 웃기는 했지만, 그가 겪었을 고통의 깊이가 느껴져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백인과 유색인종 간 사랑을 금지한 남아공의 비인간적인 법들은 1985년에야 철폐됐다.

이렇듯 우리가 지금 개인의 사생활과 행복추구권 문제로 당연히 여기는 사랑이 범죄로 처벌된 예는 역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불행히도 어떤 사랑을 불법으로 금지하는 상황이 지금 한국사회에도 존재한다.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과 탄압이 대표적이다.

지금 육군은 동성애를 범죄화하는 군 형법 제92조의6을 적용, 동성애자 색출과 구속이라는 마녀사냥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대선토론에서 일부 후보들이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단호히 얘기하고, 한술 더 떠서 동성애 때문에 대한민국에 에이즈가 창궐하고 있다는 허위 주장을 당당히 하는 걸 보면서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전 국민이 지켜보는 토론에서 아무 여과 없이 나온 혐오 표현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 폭력이 난무하는 한국 사회의 열악한 인권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또, 차별에 반대한다고 말하면서도 지금은 때가 아니니 침묵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주장도 이런 상황을 용인하는 또 다른 폭력이다. 2014년 한 인권단체에서 행한 조사에 의하면 설문에 응한 청소년 성소수자 중 45%가 폭언과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살 시도율은 46%에 이른다고 한다. 일반 청소년의 자살 시도율이 약 4%라는 점을 볼 때, 성소수자 청소년이 겪는 폭력과 상황이 얼마나 열악하고 절망적인지를 보여준다. 지금 상황은 성소수자에게 더는 지체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의 문제이다. 그래서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목숨이다”라는 구호와 “제 존재를 반대하시는 겁니까”라는 절규가 아프게 와 닿는다.

▲2017년 4월 29일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성소수자 차별 발언 규탄 기자회견.

이성애자인 나는 지금 성소수자가 얼마나 아플까 상상도 하기 힘들다. 하지만 더 일찍 태어났다면 나도 밀드레드와 리차드처럼 타인종과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로 범죄자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죄가 아니다. 자유롭게 사랑할 권리는 침해해서는 안 되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억압받는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고 존엄성을 지킬 수 없다. 어떻게 사람의 존재와 사랑이 불법일 수 있나. 불법 인간은 없다. 마찬가지로 불법 사랑은 없다. 그래서 나는 성소수자의 투쟁을 지지한다. 힘내시라.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다. 밀드레드와 리차드처럼 당당히 사랑할 권리를 찾는 날이 올 때까지 같이 싸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