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형복의 유럽연합:EU 톺아보기] EU는 인격이 있는가?

EU가 법인격을 가진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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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0 14:26 | 최종 업데이트 2017-05-10 14:28

EU는 인격이 있는가? 

인격 vs 법인격

사람은 누구나 나름의 성격과 행동 경향이 있다. 그런 경향이 어느 사람에게서 비교적 일관되게 나타날 때 우리는 그것을 ‘인격’(personality)이라 부른다. 이 말은 연극의 가면(假面)·역할·등장인물 등을 뜻하는 라틴어의 페르소나(persona)에 그 어원(語源)을 두고 있다. 인격은 타고난 성격에 따른 천성일 수도 있고, 아니면 후천적으로 노력하여 사회관계에서 학습된 역할을 통해 형성된 것일 수도 있다.

사전에서 ‘인격’을 찾아보니 뜻이 무려 일곱 가지나 된다. 인격은 일반적으로 “사람으로서의 품격”을 뜻하는 일반명사이지만, 그 외에도 법률, 사회, 심리, 종교 및 철학 등 여러 분야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법인격, 신격(神格), 주체 혹은 주체성, 독자성 등은 인격이 각 분야에서 변용되어 사용되고 있는 표현들이다.

법학에서 인격은 “권리능력이 있고, 법률상 독자적 가치가 있는 자격”의 뜻으로 사용하는데, 이를 ‘법인격’(legal personality)이라 한다. 모든 사람은 인격이 있다. 이에 반하여 법률적으로는 사람이라고 하여 모두가 법인격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사람이 법인격을 갖기 위해서는 권리능력이 있어야 한다.

권리능력이란, 권리나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격이나 지위를 말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살고 있다고 하여도 만일 ‘권리나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격이나 지위’가 없다면, 법인격이 인정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태아는 사람이지만 권리나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없어 권리능력이 제한된다. 태아도 사람인 것은 분명하지만, 법인격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권리능력, 즉 법인격을 가지는 자는 자연인과 법인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는 육체와 정신을 가진 사람을 말하고, 후자는 재단과 법인 등 자연인이 아니면서도 법에 따라 권리능력이 부여되는 주체를 말한다. 따라서 자연인 혹은 법인이든 법인격을 갖기 위해서는 법에 의하여 인정된 능력(=권리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자신의 권리 행사는 물론 의무도 지지 않는다.

따라서 누가 권리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판단은 법적 책임을 밝히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하다. 권리능력이 있는가, 아닌가에 따라 자연인과 법인의 의사능력, 행위능력, 신분행위능력, 불법행위(책임)능력에 따른 권리와 의무의 정도와 범위가 달리 인정되기 때문이다.

EU는 법인격이 있는가?

EU가 권리의무의 주체로서 권리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법인격을 가져야 한다. 이에 대해 유럽연합조약(TEU) 제47조는, “(유럽)연합은 법인격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문언이 가지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조항을 통해 EC와 EU와의 법적 관계의 명확히 정리되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93년 11월 1일 발효한 마스트리히트조약에 의해 EU가 창설되고, EEC는 EC로 그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때부터 리스본조약이 발효한 2009년 12월 1일 이전까지(즉, 1993년 11월 1일부터 2009년 11월 30일까지 만 16년간) EC와 EU, 두 개의 공동체가 유럽역내시장에 공존하였다. 법적으로 엄밀하게 말하면, EU는 일종의 ‘정치적 실체’의 성격을 가질 뿐 법인격을 갖고 있지 못하였다. 유럽공동체설립조약(TEC) 제281조는, “(유럽)공동체는 법인격을 가진다”고 규정하여 EC에게만 법인격을 부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림 1]). 그런데 현실에서 EC와 EU라는 두 실체의 공존은 유럽역내뿐 아니라 제3국 및 국제사회와의 대외관계에서 상당한 혼란을 가져왔다. EC와 EU, 둘 중에서 누가 유럽을 대표하는가? 즉 대외적 대표권의 문제가 대두한 것이다.

▲[그림 1] 리스본조약 이전/이후 EC/EU의 관계

EC와 EU, 이 양자의 모호하고, 불분명한 법적 지위 문제는 리스본조약이 제정됨으로써 분명하게 정리·해결됐다. 이 조약에 따르면, EU는 유럽연합조약(TEU)과 유럽연합기능조약(TFEU)에 기초하여 설립되고, EU는 EC를 대체·계승한다. 이에 따라 리스본조약이 발효한 2009년 12월 1일부터 기존의 EC는 폐지되고, EU만이 ‘단일한 법인격’(a single legal personality)을 가지게 됐다. 이렇게 하여 이제 EU는 ‘정치적 실체’일 뿐 아니라 ‘법적 실체’로써 명실공히 대내외적으로 대표성을 확보하고 있다.

EU가 법인격을 가진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리스본조약 이후 EC를 대체·계승한 EU가 단일한 법인격을 가지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마스트리히트조약에 의해 EU가 창설되고, EC와 EU가 공존하면서부터 국제사회는 양자를 대표하는 기구는 EC가 아니라 EU라고 인식하게 됐다. 유럽역내에서는 EC가 법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고,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설령 문제가 있다고 해도 제3국과의 대외통상권한이 유럽위원회에 있는지, 아니면 이사회에 있는지 등 역내문제일 뿐이다.

이러한 사정은 국제사회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EC와 EU 가운데 누가 법인격을 가지는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고, 또 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다. 하지만 EC 혹은 EU가 제3국이나 국제사회와 공식적인 대외관계를 맺을 때는 상황이 다르다. 일례로, 조약을 교섭·체결할 때 제3국 혹은 국제기구는 과연 EC와 EU 누구를 공식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가? 이것이 분명치 않다.

대외관계에서 야기되는 혼란은 비단 제3국이나 국제사회뿐 아니라 유럽당국으로서도 곤혹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해결방법은? EC·EU의 공존체제를 단일체제로 재편, 즉 EC를 폐지하고 EU에게 법인격을 부여함으로써 유럽역내외를 대표하는 단일기구로 만드는 것이다. 이 방법에 따라 리스본조약은 EC를 폐지하고 EU에게 단일한 법인격을 부여했다.

EU가 법인격을 갖게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다시 말하여, EU는 법인격을 바탕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EU가 법인격을 가진다는 것은, EU가 유럽역내외적으로 권리능력을 가진다는 뜻이다. 이를 역내적 능력과 역외적 능력으로 나누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역내적인 면에서 EU는 이 능력을 사용하여 동산 및 부동산을 취득 처분할 수 있고, 소송 당사자 능력을 가진다. EU는 직접소송과 선결적 부탁제도 등 다양한 소송제도를 두고 있다. 만일 EU가 당사자가 되어 소송에 참가하는 경우, 통상 유럽위원회가 EU를 대리하여 소송을 수행한다(TFEU 제335조). 또한 각 회원국은 국내 법인에게 부여하는 능력을 EU에게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EU는 모든 회원국에서 국내 법인과 차별 없이 자신의 권리능력을 행사한다.

역외(대외)관계에서 이 능력을 이용하여 EU는 제3국과 체결하는 조약에 서명하고, 국제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거나 출석하며, 또한 국제조직에 가입할 수 있다. 이로써 제3국과의 관계 유지가 보다 명확해지고, 그 유효성과 법적 확실성이 강화되어 대외관계에서 보다 효과적인 행동이 가능하게 됐다. 이것은 소위 ‘국제법인격’의 문제로써 법인격을 가진 EU가 제3국 및 국제사회와의 관계에서 행사하는 대표성의 문제이다.

국제법인격을 바탕으로 EU는 어떤 권리의무의 주체가 되는가?

EU가 국제법인격을 가진다는 말은 EU가 권리능력을 가지고 국제사회에서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 활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28개 회원국으로 이뤄진 EU는 상당히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국가 발전단계에서 EU는 준연방국가이고,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이기도 하다. 또한 지역주의 측면에서 EU는 대표적인 공동체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다양한 성질을 가진 EU는 자신의 법인격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다음과 같은 활동을 하고 있다.

첫째,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EU가 조약체결권을 가지는가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주로 ‘혼합협정’ 체결권과 관련하여 논의됐다. EU가 제3국이나 국제조직과 직접 조약을 체결할 권리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EU가 완전한 정치공동체 내지는 연방국가가 아닌 이상 모든 영역에서 배타적 권한을 행사하여 국제조약을 체결할 수는 없다. 회원국의 이익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일부 영역에서 EU는 회원국과 공동으로 제3국과 소위 ‘혼합협정’을 체결한다. 세계무역기구(WTO)협정을 체결할 때 이 협정의 체결권한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둘러싸고 논쟁이 제기됐다.

1968년 7월 1일, 유럽관세동맹이 설립되면서 역내시장에서 관세장벽이 철폐됨은 물론 제3국에 대한 대외공동관세가 도입됐다. 이로써 개별 회원국이 가진 통상정책을 수행할 권한이 EU로 전격 이전되어 이때부터 유럽 차원의 공동통상정책(Common Commercial Policy: CCP)이 실시됐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일반적인 통상정책 분야에서 이제는 회원국을 대신하여 EU가 제3국과 조약을 교섭하고, 체결할 권한을 행사하게 됐다. 이에 대해서는 회원국도 인정하는 내용이므로 WTO협정을 체결할 때 별다른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

그런데 논란이 된 것은, 일반상품무역이 아니라 서비스무역(GATS)과 무역관련 지적재산권(TRIPs)에 대한 조약체결권이었다. GATS와 TRIPs는 새로운 무역정책분야로써 회원국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민감하기 때문에 회원국들은 EU에게 배타적인 조약체결권을 행사하는데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이 사안은 유럽사법재판소(ECJ)에 제소되어 법적 논쟁을 다투었다. ECJ는 최종 판결에서, GATS와 TRIPs협정은 ‘혼합협정’이므로 EU와 회원국이 공동으로 이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리스본조약은 EU에게 단일한 법인격을 부여하고 있지만 EU는 아직도 연방국가 형태의 완전한 정치공동체에는 도달하지 못한 상태이다. 따라서 혼합협정 체결권에 관한 논쟁은 EU가 정치공동체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 회원국과 조약체결권한을 나누어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제3국 혹은 국제사회에서 체결하는 조약의 성질이나 내용 등 그 중요도에 비추어 개별 회원국의 주권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경우에는 당분간은 혼합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국제법인격과 관련한 두 번째 문제는, EU가 국제기구의 회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이다. 원칙적으로 국가만이 국제기구의 회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지만(유엔헌장 제4조), 기구의 설립 목적에 따라 독자적 관세영역의 가입을 허용하기도 한다(WTO설립협정 제12조 1항). 후자에 의거하여, EU는 1947년 GATT 체약당사자와 함께 WTO의 원회원국(Original Membership)으로 활동하고 있다(WTO설립협정 제11조 1항).

WTO의 사례처럼 EU가 원회원국인가 여부를 떠나 각 회원국들은 개별적으로 WTO에 가입하고 있다. 무역통상 이슈는 EU와 회원국이 공동으로 대처할 것도 있지만, 회원국 차원에서 개별적으로 처리해야 할 것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EU와 개별 회원국이 각기 따로 WTO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현상은 주권국가들의 합의에 의해 설립·운영되는 지역공동체인 EU 체제로서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연방국가가 아닌 이상 EU와 회원국은 각자 또는 독자적으로 국제기구에 가입하여 회원국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EU는 국제기구에서 법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상당히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전형적인 예로, 유엔을 들 수 있다. 유엔헌장은 개별 국가에게만 유엔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고 있으므로 원칙적으로 ‘국가가 아닌’ EU는 유엔에 가입할 수 없다. 하지만 리스본조약이 발효하자 EU와 회원국들은 유엔 총회에서 EU에게 업저버(observer) 지위를 인정할 것을 강하게 요청했다. 유엔 차원에서 제공하는 저개발국 원조 시 가장 많은 기금을 제공하면서도 EU를 대표하는 유럽이사회 의장과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가 유엔 회원국 정상들과 동등한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바티칸시국, 국제적십자사 및 아랍연맹과 같은 기구와 같은 자리를 배치 받고 있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게 주장의 핵심 내용이다. 이 요청에 대해 2010년 9월 14일 열린 제65차 유엔 총회는 EU에게 업저버 회원국으로서의 특별지위를 인정하는 결의를 채택하였다.

이리하여 EU는 유엔 회원국에게 인정되는 권리의 일부를 행사하게 되었다. 업저버 회원국으로 앞으로 EU는 유엔 총회의 토론에 참가하고, 제안을 제출하거나 또는 제안된 사안에 대한 수정안을 제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총회의 의제를 제안하고, 또 그에 대한 답변을 제출하며, 문서를 회람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처럼 EU는 유엔 총회에서 상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되었고, 추가적으로 좌석도 배정받았다. 당초 EU 회원국들은 28개 회원국들이 하나의 ‘블록’을 형성하여 유엔 총회에서 EU의 이익을 위하여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투표권을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유엔 총회는 EU에게 업저버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일반 회원국에게 준하는 권리를 인정하였으나 투표권은 부여하지 않았다. 앞으로 이 문제는 유엔을 비롯한 기타 국제기구에서의 EU의 대표성과 관련하여 지속적으로 논란이 될 전망이다.

국제법인격과 관련한 세 번째 질문은, EU가 국제관계에서 면책특권을 가지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에 대해 TFEU 제343조는 “연합은 유럽연합의 특권 및 면제에 관한 1965년 4월 8일자 의정서에 따라 회원국 영토에서 그 임무 수행에 필요한 특권 및 면제를 향유한다. 이는 유럽중앙은행 및 유럽투자은행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동조의 1965년 4월 8일자 의정서는 유럽역내영역, 즉 회원국 영토 내에서 적용될 뿐 제3국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아니한다. 그러나 EU의 외교관계는 주로 제3국내에서 설치․운영되고 있는 ‘EU 대표부(EU delegations)’를 통하여 행해지고 있고, 또 필요에 따라서는 EU의 정치지도자 혹은 특사가 파견되기도 한다. EU대표부는 외교공관이고, 대사와 직원들도 외교관과 외교직원으로 파견되므로 이들에 대해서는 국제법상 인정되는 외교특권 및 면책(특히, 1961년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에 의거한 면책특권)이 인정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EU는 국제법 위반 국가에 대하여 제재조치(혹은 제한조치)를 취할 수 있다. EU는 ‘일국 또는 복수의 제3국에 대한 경제․재정 관계의 일부 또는 완전한 중지 또는 제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TFEU 제215조 1항). 이 조치는 국가뿐 아니라 ‘자연인 또는 법인, 그룹 또는 비정부단체’를 대상으로 하여 채택될 수도 있다(TFEU 제215조 2항). 이 조항에 의거하여, EU는 북한을 비롯한 많은 국가와 비정부단체를 대상으로 다양한 제재조치를 취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에 따른 제재조치를 예로 들면, EU는 북한정부를 직접 대상으로 하는 것뿐 아니라 주요 군사산업에 대한 투자 금지와 무기개발프로그램 개발 및 지원자 등 개인에 대해서도 강력한 제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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