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미화원 (2)

우리가 힘든 걸 알아주는 이들도 역시 같은 미화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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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8 12:44 | 최종 업데이트 2015-08-08 12:44

10.
퇴근 전, 옷을 갈아입느라 방에 모였을 때 우리가 자주 입에 올리는 이야기는 화장실, 더 적나라하게 말해 바로 ‘똥’이다. 주간한테서 인계받은 화장실 상태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부터, 변기가 막혀서 혼이 난 그날의 고생담이 우르르 쏟아지기 일쑤다. 우리가 이렇게 지저분한 이야기로 매일같이 수다를 떠는 이유란, 배수구로 통하는 구멍이 지나치게 좁은 그놈의 메이드인 아메리카 양변기 탓이다. 어쨌든 나는 굵기가 어마어마하다는 그 전설의 똥 덩이를 아직 만난 적이 없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겠고, 화장실 문을 잠그지 않고 속옷을 갈아입는 남자 고객과 마주치는 행운(?)을 누리지도 못했다.

사실 내가 골치를 썩는 상대는 흡연자들이다. 그들은 내가 없는 틈을 귀신같이 골라 담배를 태우고 꽁초를 변기에 버리고 간다. 이런 흡연자들 탓에 남자 화장실에는 휴지통이 없다. 화재의 위험이 있어서 차라리 변기에 그냥 버리기를 권장하는 꼴이다. 화재로 비상이 걸릴 땐 영업이 끝나고 슈터장 문을 잠가버리기 때문에 쓰레기를 버리러 지상에서 지하로 가야 하는 불편까지 따른다. 더군다나 어딜 가나 금연구역이니 흡연욕구에 시달렸던 흡연자들은 한꺼번에 서너 대씩 줄담배를 태우고 간다. 일을 보고 물도 내리지 않은 채 그 위에 그대로 꽁초를 버리고 가는 대범 형(大犯 型)도 있다. 휴지와 똥과 꽁초로 잔뜩 막혀버린 변기를 뚫고 있자면 이즈음의 금연열풍이 무슨 매카시즘 같아서 흡연에 비교적 너그러운 나도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다.

화장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희한한 경험담 하나! 가족나들이를 온 것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 고객이 있었다. 주문 마감 즈음인 늦은 시간, 아내와 자녀들을 식당 안으로 들여보내는 걸 봤는데, 나중에 화장실을 점검하러 가서 보니 그가 안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나란 인간은 본래 상상력이 뛰어나지 못한 편이라, 이 남자가 왜 가족들을 두고 구태여 화장실에서 컵라면을 먹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어쨌든 남편과는 따로 외식을 즐겼을 그의 식구들이 마냥 행복하게 여겨지지만은 않았다.

똥이 어떻고 엉겁결에 본 사내의 ‘물건’이 어쩌고 하며 우리가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날은 비교적 일이 수월했다는 증거다. 입에 단내가 나도록 뛰어다닌 날은 지쳐서 모두 기분이 나쁠 정도로 시무룩하다. 그럴 땐 서로가 서로를 측은해하는 심정이 된다. 그렇더라도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 있을 법한 끈끈한 유대감 같은 건 별로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일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대인관계가 원만한 것 같아도 자기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특징이 있다. 입사했다가도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하는 사람들, 혹은 아침에 멀쩡하게 출근했다가 저녁에 갑자기 그만두는 사람들을 워낙 많이 보아온 탓에, 정을 줘봤자 자기만 상처 입는다는 생각에서이다. 전근대적 개인에 맥이 닿아 있는, 전통적 공동체가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나란 인간은 여기까지 와서도 참 낭만적이다.

11.
야간의 미화일은 대략 세 종류로 나뉜다. 쓸고 닦는 일이 주를 이루는 ‘일상’과 에스컬레이트와 관련한 작업, 그리고 약품과 기계를 사용해서 바닥의 찌든 때를 벗겨내고 광을 내는 특수 작업이 있다. 맨 나중 작업을 전자는 ‘엠피’ 그리고 후자를 ‘왁스’라고 하는데, 일상을 능숙하게 해치울 실력이 되고, 또 이내 퇴사할 눈치가 없어야 안심하고 그 일을 맡기는 것 같다. 엠피나 왁스를 위해 야간미화반이 존재하는 거나 마찬가지인지라, 이 작업 시엔 반장이나 감독이 직접 지휘를 한다. 그러니만치 두 사람의 의견이 맞지 않을 땐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때로는 노동자들 특유의 고성이나 욕설이 오가기도 한다. 얼핏, 쉽게 싸우고 쉽게 화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스트레스는 스트레스일 뿐이다.

입사 초엔 일상 중에서도 주로 지하 1층을 청소하곤 했다. 내 뒤로 들어오는 사람들에 비해 나는 유독 지하 1층을 오래 했는데, 아무래도 이내 그만둘 사람으로 보여 관리자들이 마구 부려먹은 눈치기는 하다.

일상 팀은 2인 1조로 매일매일 조와 담당하는 층이 바뀐다. 그날 지하 1층을 맡게 된 두 사람을 두고 우리는 ‘당첨’되었다고 놀리곤 한다. 그만큼 일이 고되다는 말이겠다. 식품관과 푸드코트(f?od c?urt)가 입점해있어서 고객들이 평일에도 붐비고, 푸드코트는 별별 음식을 취급하다보니 백화점 내에서는 가장 냄새나고 지저분한 곳이라서 그렇다.

눈에 가시는 단연 아이스크림가게와 과일음료수 등을 만들어 파는 가게다. 앞서도 말했다시피, 아이스크림과 음료수가 일으키는 말썽은 상상을 초월한다. 다음으로 미운털이 박힌 곳은 볶은 땅콩 등을 파는 견과류 가게 및 모든 음식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견과류 가게는 땅콩껍질이 많이 나오는데, 이건 쓸어 담기가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그러니 우리를 편하게 하는 매장은 포장용기에 얌전하게 담긴 상품들만을 파는 데다. 예컨대 티백으로 된 차 세트나 홍삼 제품 등의 건강식품을 파는 가게들만 모여 있다면 우리로서야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일이 편하다면 미화원 수를 줄일 게 빤하니 마냥 그런 가게들만 있기를 바랄 일이 아니다.

한편으로, 인심이 풍부한 곳 역시 푸드코트다. 일본식 김밥을 만들어 파는 가게는 특히 그러해서, 한번은 팔다 남은 거라며 챙겨주는 김밥과 주먹밥으로 지하 1, 2층에서 일한 사람들이 모여 새벽에 포식한 적도 있다. 백화점 측의 손익계산에 맞지 않으면 바로 퇴출당하는지, ‘매대’ 철거가 비교적 잦은 곳도 지하 1층이다. 우리로서야 지금의 김밥집이 번창하고 오래 버틸 수 있기를 빌어줄 따름이다.

12.
일을 하고부터 어디를 가든 그곳의 미화원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잘은 모르지만 우리들 세계에서는 ‘신의 직장’이라 통하는 공공기관의 미화원들은 그래도 형편이 조금 나은 걸로 아는데, 내 눈에 띈 미화원들은 어떻게 된 노릇인지 열 명이면 열 명 다 ‘파김치’같은 인상이거나, 쉬는 모양도 피곤에 지쳐 축 늘어진 자세로 벽에 기대앉아 있곤 한다. 혹여 그런 그들에게 밝은 표정과 활기찬 자세를 기대한다면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바울의 권면을 들려줄 일이다. 그렇더라도 긍정에 대한 일방적 요구는 삶의 구체성을 무시할 때 종종 폭력이 됨도 잊지 말기를.

동병상련이라고, 우리가 힘든 걸 알아주는 이들도 역시 같은 미화원들이다. 지나가던 고객 중에 가끔, 걱정 반 참견 반을 하느라 자기 신분을 노출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가령 계단을 쓸고 있는 사람 곁을 지나가면서 “거, 빗자루 좀 새 걸로 사달라고 하세요. 손목 작살나겠네, 원.”이라며 혀를 끌끌 차는 아줌마가 있다면 그이는 십중팔구 미화원이거나 미화원이었던 사람이다. 말마따나 미화원들의 사지육신은 어디 한 군데 멀쩡하기가 힘들다. 처음에는 파스를 붙이다가 손목보호대나 발목보호대를 찾게 되고, 급기야 팔꿈치보호대와 무릎보호대로도 해결이 안 되면 물리치료를 받거나 독한 약을 의지하게 된다. 나는 현재 열손가락 모두 통증이 심해서 자판을 두드리는 건 물론이고 젓가락질조차 하기가 힘든 상태다. 이런 나를 향해 “만성이 되면 견딜만하다.”라는 게 그들이 들려주는 유일한 위로다. 이런 위협 아닌 위협도 한다. “지금 번 만큼, 아니 나중에는 병원비가 더 들어갈 걸 각오해라. 그래도 어쩌겠나, 목구멍이 포도청인걸.”

13.
단순동작을 장시간 반복하노라면 정신없이 돌아칠 때와 달리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잠이 모자라 책상 위에 며칠째 펼쳐만 둔 제발트의 소설이 읽고 싶거나,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의 어느 대목이 갑자기 궁금해지면 내 방 책장에 꽂혀있을 책들이 생각나면서 별수 없이 울컥해진다. 실존주의니 들뢰즈 식으로 해석해왔던 카프카의 작품들이 모조리 자전적 소설로 ‘선연히 재해석’되는 경험을 책상 앞이 아니라 문화센터의 일곱 개 홀을 혼자 대걸레질하면서 겪기도 했다. 낮에는 원치 않는 보험회사의 직원으로,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글쓰기를 할 수 있었던 작가의 삶에 나의 현재를 투사해서일 것이다.

휴무를 맞아, 그동안 벼르던 제발트의 소설을 펼쳐 들었다. “보고에 대한 보고이며, 역사적 기록들이며 문학적 사생아이다.”라는 이리스 라디슈(Iris Radisch)의 말처럼, 그의 소설에는 역사적 기록들이 넘친다. 그중에서도 노동에 관한 글에 유독 관심이 갔으니, 뭐 눈에는 정말 뭐만 보인다.

그래서 그가 걸어가면서 다시 한 번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거울 표면을 올려다보며 (수은과 청산염의 증기를 흡입한 결과 해롭고 치명적인 직무를 요구하는 그러한 거울 제조 시기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었는지 아느냐)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높은 대기실 거울의 제작에 사용된 절차를 설명하기로 작정한 것이 내게는 잊히지 않는다.(17쪽)

요새 주변을 둘러싼 통로는, 검게 타르를 칠한 처형장의 기둥들을 지나 수감자들이 오로지 삽과 손수레만을 이용해 담장 주변에 쏟아 부을 25만 톤 이상의 돌과 흙을 운반해야 했던 작업장으로 이어졌다. 요새의 창고에서 볼 수 있는 이 수레들은 분명 당시에도 가공할 정로도 원시적인 것이었다.(26쪽)
-W. G. 제발트, 『아우스터리츠』, 을유문화사

죄의 대가로 에덴에서 쫓겨나게 된 아담이 ‘노동’의 형벌까지 떠안았다지만, 의식적이고 목적지향적인 행위로서의 ‘일반 노동’과 차별과 배제의 삶을 강요하는 ‘노예 노동’은 분명 구분되어야 한다. 그런데 자본가가 될 가능성이 거의 0%인 이 21세기 노동자들의 노동은 어디에 속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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