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항쟁부터 박근혜 탄핵까지…대구 도심에서 만난 항쟁의 역사

동성로 민주광장, 서문시장 앞  6월 항쟁 기념 표지석 세워
"앞으로 전 영역에 민주주의가 깊이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하자"

22:48

87년 6월 항쟁, 02년 故 신효순, 심미선 추모, 08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16년 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까지. 6월 항쟁 30주년을 맞아 항쟁으로 이룬 민주주의 역사가 대구 도심에서 연결됐다.

10일 오후 7시 대구 중구 대구백화점 앞 민주광장에서 6월 항쟁 30주년 대구행사 ‘1987~2017 우리들의 사랑 이야기’가 열렸다. 6.10민주항쟁30주년대구경북위윈회가 주최하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후원한 이번 행사에는 시민 200여 명이 모였다.

행사에 앞서 이날 대구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6.10민주항쟁30주년대구경북위윈회는 동성로 민주광장과 서문시장 앞에 6월 항쟁이 일어난 곳을 표시하는 기념 표지석을 세웠다.

지난 3월 10일 박근혜가 탄핵된 지 3개월, 이날 시민들은 다시 광장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구호를 외쳤다.

장세룡 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상임대표는 “대구는 그저 박정희, 삼성 이야기만 하던 영혼 없는 도시였다. 박정희를 통해 권력에 미친 인간을 만들어 냈고, 삼성을 통해 물질에 미친 인간을 만들어냈다”며 “그런 대구에서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을 통해 깊은 영혼의 주춧돌을 놓았다. 자유, 연대, 평화, 인권의 주춧돌을 놓았다. 그동안 무척 힘들었지만 앞으로 힘내서 계속 투쟁해 나가자”고 말했다.

87년도 경북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박형룡(54, 당시 23세) 씨는 “한일로에서 한참 연설을 하고 있으면 전경들이 빵빵빵 최루탄을 쏘면서 다가온다. 6월 10일부터 29일까지 전개되면서, 전경들이 시위대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리가 민주주의 함성으로 가득 채워졌더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박형룡 씨(오른쪽)

박 씨는 한일로에서 전경들이 몰려오면 학생, 시민들에게 팔짱을 끼고 평화 집회를 사수하자고 연설을 이어갔다. 최루탄, 사과탄, 지랄탄을 맡고 시위대가 흩어지면 다시 뒤로 모여 전경들을 에워싸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박형룡 씨는 “노태우가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면서 미완의 6월 항쟁은 마무리됐다. 6월 항쟁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획득하는 투쟁이었다면, 지난 촛불 혁명은 권력을 정당하게 행사하지 못한 정권에 대한 심판이었다”며 “우리 민주주의가 퇴보도 했지만 다시 성장해가는 도중에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경제, 문화, 사회 전 영역에 민주주의가 깊이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다.

02년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신효순, 심미선 추모 집회를 이끌었던 이상수(33) 씨도 무대에 올랐다. 당시 청소년이었던 그는 “2002년 한창 월드컵 열기가 뜨거울 때 이 소식을 접했다. 세이클럽 카페를 통해서 이 사건을 알렸다. 미군 운전병이 무죄판결을 받던 11월이 지나면서, 수백 명이던 회원이 2천여 명으로 늘어났다”며 “지금도 저는 장애인 인권 활동가로 살고 있다. 비상식이 상식을 지배하지 않는,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가 제공되는 사회를 원한다. 그런 사회를 위해 항상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이상수 씨(왼쪽)

08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 당시 ‘앞치마 부대’를 맡았던 이경선(49) 씨도 딸과 동료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그는 “당시에 앞치마를 입고 냄비 뚜껑을 두드리면서 아이와 함께 거리에 섰다. 05년부터 생활협동조합 활동을 했지만, 보신주의 운동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었다”며 “08년 촛불 집회를 지나면서 먹거리가 얼마나 우리 일상에 중요하고, 먹거리가 정치와 국가와 맞닿아 있다는 걸 우리는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2시간가량 이어진 뒤, 참가자들은 상록수, 행복의 나라로 등을 부르며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