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영남학원](3)영남대의료원 해고자 박문진, 송영숙에게 박근혜는···.

“1년 넘게 집 앞 지킨 살아있는 전태일을 두고, 전태일 동상을 보러 가더라”

11:14

[편집자 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과거사 검증 논란이 뜨겁다. 정수장학회가 군사정권에 의한 장물유산으로 규정되고,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진숙 MBC 기획홍보본부장의 비밀 회동이 논란을 일으키는 등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 아버지 시대의 유산을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대구에서도 지난 9월 각계 인사들이 모여 ‘영남대재단정상화를위한범시민대책위’를 결성하고 또 다른 “장물”이라 불리는 영남학원 문제를 박 후보가 청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뉴스민>은 박 후보와 영남학원 과거와 현재를 세 차례에 거쳐 연재한다.

(1)영남대는 어떻게 “장물”이 되었나
(2)영남대, 영남이공대···박정희 찬양과 비리의 역사
(3)영남대의료원 해고자 박문진, 송영숙에게 박근혜는···.

“굉장히 폐쇄적이고 닫혀서 살아요. 그런 사람이 정치를 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가요. 정치를 한다면 억수로 뻔뻔하고 거짓말을 잘해야 할 것 같아요. 안 그래요? 우리는 1년이 넘도록 집 앞에 있는데도 안 만나고 전태일 만나러 간다고 하잖아요. 우리가 그랬어요. 너희 집 문턱 앞에서 1년 동안 해고자 싸움하고 있는 살아있는 전태일을 만나라고”

 

10월 23일부터 3천배 시작한 박문진 씨
6년 동안 이어진 복직 싸움

아침 9시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 112길은 고요한 적막만 흐른다. 3M는 족히 넘어 보이는 붉은 담벼락 아래서 두 여성이 묵묵히 절을 하는 모습은 고요함을 한층 더 한다. 이따금 늦은 출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무심하게 그 옆을 지나친다. 하루를 시작하는 그들에게 두 여성의 모습도 매일 같이 봐왔던 일상의 한 장면인 듯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갈 뿐이다.

▲ 박문진 영남대의료원 해고자(가장 오른쪽)는 지난 10월 23일부터 박근혜 후보 사택 앞에서 3천배를 시작했다. 30일, 절을 하고 있는 박 씨와 송영숙 씨(가운데) 옆으로 한 남성이 지나치고 있다.

한 시간 만에 500배를 마친 송영숙(36, 여) 씨는 절을 마치기 바쁘게 가지고 온 짐을 정리하고, 주차를 다시 하고, 생수를 사러 갔다. “매일 500배를 같이 하고 나면 송부(영남대의료원 노조 부지부장인 송 씨를 박문진 씨가 부르는 호칭)는 보급 투쟁하느라 바빠요” 함께 500배를 마친 박문진(51, 여) 씨가 웃으며 커피를 건넸다.

박 씨는 지난 10월 23일부터 매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사택 앞에서 영남대의료원 해고자 복직, 노조탄압 문제해결, 영남학원 사회환원, 쌍용자동차 문제해결 등을 내걸고 3천배를 시작했다. 기자가 이들을 찾은 날은 박 씨가 3천배를 시작한지 8일째 되는 날(10월 31일)이었다. 2만배를 넘긴 박 씨는 “무릎이 아픈 것 말고는 아직은 견딜만하다”고 말했다.

송영숙, 박문진 씨는 지난 2006년 영남대의료원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2007년 병원으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았다. 2008년 1월 중앙노동위원회는 이들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정했으나 병원은 이에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진행했다. 3년 동안 지속한 법정 공방은 2010년 대법원이 이들을 제외하고 당시 함께 해고 당한 7명의 복직을 판결하며 일단락 됐다. 이후 병원은 “대법원에서 해고가 적법하다고 판결 내렸다”며 이들을 복직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노조파괴 전문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이 2006년 당시 영남대의료원 노사분규에 관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들에 대한 해고가 부당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송 씨는 “그땐 분위기가 이상했다. 의료원장이 면담 끝에 합의한 것을 병원장이 뒤집고 협상에 나오질 않았다. 이제야 밝혀졌지만 창조컨설팅이 관여해서 우리가 파업하도록 유도한 거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2011년 6월, 방배동서 지하방 얻어 서울 생활 시작
“주인 바뀌었으니 당연히 바뀐 주인에게 요구해야”

이들은 지난해 6월 서울 방배동에 지하방을 전세로 얻었다. 박근혜 후보를 상대로 본격적으로 복직 싸움을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이들이 박 후보에게 영남대의료원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영남대의료원이 소속되어 있는 영남학원의 실질적 주인이 박근혜 후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 씨는 “주인이 바뀌었으니 당연히 바뀐 주인에게 요구하는게 맞지 않나요?”라고 반문했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영남학원에서 이사장 및 이사로 재직한 박 후보는 2009년 재단이 임시이사체제에서 정이사체제로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4명의 이사를 추천했다. 같은 재단 소속의 영남대, 영남이공대의 구성원들과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는 박 후보가 측근을 이사로 앉히면서 재단의 실질적 주인으로 복귀했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지난 9월부터 ‘영남대재단정상화를위한범시민대책위’를 결성하고 박근혜 후보에게 “장물”이라 불리는 영남학원 문제를 청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삼천배 중인 박문진, 송영숙 씨.

지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두 해고자는 일명 ‘그림자 투쟁’을 이어왔다. 박근혜 후보의 일정을 따라다니며 피켓 시위나 항의를 이어온 것이다. 박 후보의 사택, 새누리당 당사, 국회, 유세현장 등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았다. 박 후보의 열성 지지자에게 밀쳐지고, 어떤 할아버지에게 주먹질을 당하기도 하며 1년을 넘게 따라다녔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대단한 사람이에요. 옆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카메라만 쳐다보더라고요” 송 씨가 실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박문진 씨는 “지난 6년 동안 할 수 있는 건 거의 다 해봤어요. 파업도 하고, 농성도 하고, 피켓팅, 삼보일배, 삭발… 안 해본 거 없이 다했는데 여전히 저 여잔(박근혜 후보) 우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죠.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야긴데, 아마 우리가 이렇게 절하고 있는 걸 자기 당선 기원 절로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라며 말을 보탰다.

“강남 3구 중 한 곳, 처음엔 걱정… 오히려 우호적이더라”
“여기가 박근혜 집이냐” 묻는 이들도 많아

이들이 절하고 있는 곳은 강남구 삼성동이다. 지난해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압도적인 투표 참여율을 보이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지지했던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 중 한 곳이다. 이들의 행동에 반감을 보이는 이들이 많지 않았을까. 박 씨는 “저희도 그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인심을 어떻게 해놨는지 주민들이 오히려 우리에게 우호적인 분들이 많았어요. 피켓 문구 아이디어 주시는 분도 있었고. 들어보니 두 발로 집 밖으로 나온 적이 없다고 하더라구요”라며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실제 기자가 취재 간 하루 동안 이들에게 다가와 “여기가 박근혜 집이냐”고 물어오는 이가 적잖이 있었다. 인근에서 2년째 경비 업무를 보고 있다는 60대 남성은 “한 번도 (박근혜 후보) 얼굴을 본 적이 없다. 항상 새까맣게 선탠 해놓은 차를 타고 다닌다”고 말했다. 송 씨는 “하루에도 한두 명씩 다가와서 여기가 박근혜 집이냐고 묻곤 한다”며 “항상 ‘소통’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이웃과도 소통하지 않고 지낸 것”이라고 말했다. 정작 3천배에 관심을 보여야 할 이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웃들만 이들의 고통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사실 3천배를 시작하기까지 박문진 씨는 혼자 고민을 많이 했다. “지난여름부터 고민했어요. 할까. 말까. 혼자 많이 울기도 하면서 고민했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일이니까. 내가 할 수 있을까. 수없이 반문하고 반문했었죠”

긴 고민 끝에 박 씨가 3천배를 시작한 이유는 이렇게 해서라도 박 후보와 말 한마디 나눠보기 위해서다. “대구에서도, 서울에서도 그렇게 많은 일을 해왔는데 눈길조차 주지 않았어요. 김정우 지부장이 단식을 하고,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15만 볼트가 흐르는 철탑에 올라야 그때서야 ‘무슨 일이 있구나’ 하면서 들여다보잖아요”라며 박 씨는 자꾸만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는 노동자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 절을 하고 있는 박 씨 옆으로 박 후보가 탄 차량이 지나치고 있다.

“노동자와 해고자의 꿈이 이뤄지는 나라”

이날 오전 11시 30분쯤 박 후보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새까맣게 선탠된 고급 세단을 타고 집을 나섰다. 송 씨는 “8일째 3천배를 하고 있습니다. 영남대의료원 문제 해결하세요”라고 소리쳤고, 박 씨는 묵묵히 절을 이어갔다.

박 씨는 “박 후보가 안거낙업,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 국민이 행복해지는 나라라고 공약을 이야기했잖아요. 노동자와 해고자도 안거낙업하고, 노동자와 해고자의 꿈도 이뤄지는 나라, 노동자와 해고자가 행복해지는 나라가 그런 나라 아닐까요?”라고 말하며 쓰게 웃었다.

지난 6일 전국 수산인한마음대회에 참석한 박근혜 후보를 만나기 위해 김정우 지부장을 비롯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서울광장을 찾았다가 경찰에 입이 틀어 막힌 채 끌려나갔다. 오늘로(7일)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5만 볼트 전류가 흐르는 철탑에 오른 지 21일차를 맞았고, 박 씨가 3천배를 시작한지 16일째를 맞는다.

박 후보는 여전히 소통과 안거낙업의 국가를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