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의 욕구는 곧 창조의 욕구다!”: 미하일 바쿠닌 ②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는 자의 절대자유-아나키즘] (12)

09:19

3. 종교와 국가, 그리고 아나키사상: 사회혁명론

“파괴의 욕구는 곧 창조의 욕구다!”
“The passion for destruction is a creative passion, too!”

<독일에서의 반동>(The Reaction in Germany, From the Notebooks of a Frenchman, October 1842) 마지막 문단에 쓰인 이 문구는 바쿠닌의 아나키사상을 대변하는 표현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의 욕구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이고, ‘사회혁명’(social revolution)이다. 이 가치관에 따라 바쿠닌은 모든 권위를 부정하고, 명령권을 가진 모든 권력에 대한 반역을 주장했다. 그는 인간의 권위와 권력에 대한 불복종의 기원을 창세기 <실락원>에서 찾고 있다.

인류의 성스런 역사는 아담과 이브의 ‘원죄’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신은 에덴동산의 과일 가운데 유독 ‘지혜의 나무’에 열리는 ‘선악과’(善惡果)만은 따먹지 못하게 금지한다. 이 열매는 아담과 이브가 먹으면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선악과 나무의 열매’이기도 하고, ‘지혜의 나무의 열매’이기도 하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낙원에 살고 있던 인류의 조상에게 내린 신의 명령에 대해 바쿠닌은 “그것은 공포에 가득찬 전제군주의 명령이었다”고 평가한다. 만일 아담과 이브가 신의 명령에 따라 계속 그 낙원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바쿠닌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그들이 신의 명령에 복종하였다면, 인류는 가장 굴욕적인 노예상태로 살았을 것이다. 그들의 불복종이야말로 인류를 해방하고 구제한 것이다. 그것은 신화적으로 말한다면, 인간적 자유를 위한 최초의 행위였다.”

이 의미에서 “인간의 역사는 자유의 침해에 대한 반역이라는 사고를 통하여 역사를 발전시켜왔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신의 금지명령을 거역한 인류의 조상은 ‘사고하는 능력과 반역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신에 대한 반역은 악마의 행위”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의 입장은 단호하다. “인간은 자유다. 사탄, 그는 ‘영원한 반역자이자 최초의 자유사상가이며, 세계의 해방자’다.”(Michel Bakounine, <Oeuvres>, tome III, 1900, pp. 19?21)

이처럼 바쿠닌은 모든 권위를 부정하고, 권위를 주장하는 모든 권력에 대한 반역을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권력은 그 본질상 필연적으로 자유를 제한하고, 자유의 완전한 부정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신과 국가가 인간의 자유에 대한 침해의 원천인 이상 반역은 천상(天上)과 지상(地上)의 우상에 대항해야 한다. 이 주장에 대해, 그레이(Alexander Gray)는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신과 신의 관념에 대한 반역과 국가에 대한 반란-결국 무신론과 아나키즘-이란 바쿠닌에게는 불복종이라는 복음의 두 가지 단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심중에 이 양대 폭군은 하나로 융합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Alexander Gray, p. 354.)

바쿠닌의 경우, 무신론과 아나키즘은 “둘이면서 하나고, 하나이면서 둘”, 즉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혁명가는 무신자여야 하고, 무신자는 혁명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바쿠닌은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勝田吉太郞, p. 21). 바쿠닌은 모든 권위를 부정하는 맥락에서 종교를 거부한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국가를 거부한다.

“사회는 인간에게 영원하지만 국가는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필요악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라는 말은 이 세상으로부터 사라져야 할 모든 악을 대표한다.”(Bakhunin, <Statehood and Anarchy>(1873)

이 말에서 보듯이 그에게 있어 자유야말로 지상의 최고 가치이다. 그 외 모든 가치나 관념(이를테면, 신과 국가), 특히 권위는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고 침해하므로 자유와 양립할 수 없다. 따라서 애국심은 국가의 존속에 사활적 이익을 가지는 자(특권계급)가 국가에 대해 가지는 심정에 지나지 않는다. 애국심이란 종교에서 신에 대한 예배가 국가 체제를 통하여 현실화된 것이다. 그것은 특권계급의 연대 이익을 위한 것 일뿐 민중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애국심을 빌미로 민중들에게 국가라는 제단에 몸을 던져 희생양이 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바쿠닌은, “존재의 요구는 항상 사상의 요구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하면서, 국가의 폭력성을 경계한다.

“국가는 인간 의지의 합법적 강제자이고, 인간의 자유를 늘 부정(否定)하는 자이다. 국가가 善을 명령할 때야말로, 오히려 그 명령에 의해 善은 훼손되어 무가치하게 되고 만다. 인간은 사악한 자유를 가질 수밖에 없다.”(バク?ニン(勝田吉太??), <神と?家>(世界の名著, 第42?), 中央公論社, 2005.)

신과 국가에 대한 반역과 무신론과 아나키즘의 불가분리의 밀접한 관계의 밑바탕에는 자유의 원리와 권위의 원리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다는 바쿠닌 자신의 강한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이 신념을 바탕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정치조직을 부정한다. 따라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도 배척된다.

“사회주의 없는 자유는 특권이고 부정이나 자유 없는 사회주의는 예속이고 야수성이다.”

그래서 바쿠닌은 맑스주의를 “자유 없는 공산주의”, “권위주의적 공산주의”로 탄핵하였다(박홍규, 128쪽). 이처럼 바쿠닌은 종교와 국가 등 일체의 권위적인 조직을 부정하고, 국가마저 ‘파괴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는, 국가의 완전한 폐지를 원한다. “파괴의 욕구는 곧 창조의 욕구다!”라는 그의 말에서 보듯이 그에게 있어 자유를 쟁취하는 유일한 길은 ‘창조적 파괴’, 즉 혁명이다. 따라서 혁명의 과업은 국가를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이다(김우현?배규성, 21쪽). 그가 꿈꾸는 혁명은 ‘정치혁명’이 아니라 ‘사회혁명’이다. 이종훈의 설명을 들어보자.

“바쿠닌이 강조하는 자유는 ‘연대성에 의한 자유’ 또는 ‘평등 속의 자유’다. 그런데 사회혁명은 ‘보편적인 위대한 자유’와 ‘세상 만인의 경제적, 사회적 평등화에 의한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을 지향하고 있다.”

“사회혁명의 목표는, 이 땅에 태어난 모든 개인들이 말 뜻 그대로 인간적으로 될 수 있는 것, 자신의 천부적 재능을 계발할 권리뿐만 아니라 모든 재능의 계발에 필요한 모든 수단을 향유하는 것, 평등 속에서, 그리고 형제애를 통하여 자유롭고 행복하게 되는 것 등이다.”(이종훈, 박사학위논문, 69~70쪽)

하지만 바쿠닌이 지향하는 사회혁명도 결국은 그 바탕에 있는 것은 ‘자유’다. 그는 말한다. “자유란 개개인의 잠재 능력 상태에 따라 나타나는 모든 물질적, 지적, 도덕적 역량의 완전한 발전“이다. 이것이 또한 바로 사회혁명이 추구하는 바다.” (이종훈, 박사학위논문, 70쪽) 그렇다면 자유가 파괴를 통해 달성될 수밖에 없다는 논거, 즉 사회혁명은 파괴를 수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혁명이 대중, 집단, 코뮌, 결사체, 그리고 개인들에게까지 완전한 자유를 부여함으로써, 그리고 모든 폭력의 역사적 원인 일체와 국가의 권력 및 그 존재 자체를 파괴함으로써 종식시켜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힘에 의한 조직의 이 낡은 체계다.”(Michel Bakounine, <Oeuvres>, tome IV, 1900, p. 261~262; 이종훈, 박사학위논문, 70쪽에서 재인용)

바쿠닌은 “대중, 집단, 코뮌, 결사체, 그리고 개인들에게까지 완전한 자유를 부여”하는 사회혁명을 위해서는 힘, 즉 ‘파괴’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이제 힘을 분쇄하고 격퇴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창조적 파괴’의 본질을 잘 드러내고 있다. 바쿠닌은, “사회혁명 및 사회주의는 정치혁명 및 자코뱅주의보다 ‘천배나 더 인간적이며, 결코 잔인하지 않다”고 하면서 사회혁명을 휴머니즘과 연결한다. 또한 그는 사회혁명이 ’범세계적 혁명‘ 또는 ’보편적 혁명‘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파괴의 욕구는 곧 창조의 욕구다”라는 그의 경구와 더불어 “역사상 전진을 향한 모든 발걸음은 ‘피의 세례’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가능하였다”는 그의 혁명사상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양 진영으로부터 공히 거친 저항과 비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