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세대와 2017년 촛불 세대의 만남

대구참여연대 6월항쟁 토크콘서트, ‘짱돌 사라지고 촛불이'

19:01

1987년 6월항쟁부터 2017년 촛불혁명까지, 30년의 시차를 두고 시민이 스스로 주권자로서 권력을 행사해야 했던 일이 발생했다. 그 사이 짱돌이 촛불로 변했고, 최루탄 대신 최루액 섞은 물대포가 등장했다. 물론 2016년 10월부터 지난 3월까지 이어진 촛불혁명에는 최루액 섞은 물대포도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물대포로도 끌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 거다.

30년 전 짱돌을 들었던 이들도 촛불을 들고, 변해버린 사회를 만끽했다. 30년 전 짱돌을 책에서만 보고 배웠던 청년들은 촛불을 들고 ‘짱돌’을 경험했다. 29일 저녁 6시 29분, 30년 전 짱돌 세대와 촛불 세대가 한데 모여 이야길 나눌 시간이 마련됐다.

대구참여연대는 이날 6월항쟁 30주년을 기념해서 토크콘서트 ‘1987 짱돌에서, 2017 촛불까지’를 준비했다. 6월항쟁 당시 경북대학교 총학생회장이었던 박형룡(53) 씨, 영남대학교 총학생회 사회부장이었던 이용석(51) 씨, 경화여고 학생회장이었던 한유미(50) 씨가 짱돌 세대로, 이동엽(24, 경북대), 최미나(22, 계명대) 씨가 촛불 세대로 함께해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했다.

▲대구참여연대는 29일 저녁 1987년 6월항쟁 세대와 2017년 촛불 세대의 토크콘서트를 마련했다. (사진=정용태 기자)

짱돌 세대는 이젠 구시대 유물이 되어버린 최루탄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하면서 웃었고, 촛불 세대는 짱돌 세대가 더이상 최루탄이 보이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준 것에 감사하면서 ‘평화 시위’가 가능해진 ‘새 시대’를 이야기했다.

박형룡 씨는 “사과탄 같은 건 불발탄도 많았다. 불발탄은 총학생회에서 모아놓고 돌려주기도 하고 없애버리기도 했는데, 저는 한동안 사과탄을 갖고 있었다. 6월항쟁 끝나고 노태우가 대선 후보로 대구에 왔었는데 그때 가서 던지려고 가지고 갔다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냥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며 사과탄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해 청중들의 웃음을 이끌었다.

한유미 씨는 “최루탄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은 많지 않다. 저는 최루액이 끔찍하더라. 한진중공업 투쟁할 때 처음 최루액을 맞아 봤어요. 살수차에서 최루액 섞은 물을 쏟아내는데 저는 최루액을 맞고는 견딜 수가 없더라”고 사라진 최루탄과 새롭게 등장한 최루액에 대해 이야기했다.

6월항쟁과 촛불혁명을 모두 경험한 짱돌 세대도 촛불 혁명이 새 시대의 이정표가 될 거라고 입을 모았다. 이용석 씨는 “법과 제도, 깨어있는 시민의 의식이 결합해서 최소한의 출발점, 기준점은 촛불혁명 완수에서 시작하는 맞을 것 같다”며 “새 정부가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충돌의 경우가 많을 거다. 그럴 때 우리가 얼마나 공동의 이익을 위해 우리 욕구를 누를 수 있을지 고민을 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형룡 씨도 “이제는 박근혜 씨 처럼 능력 없는 사람이 은폐된 채로 대통령이 되는 장막의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며 “투명한 세상이 될 거라는 부분에서 촛불혁명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발전사에 엄청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미 씨는 80년 광주와 세월호 참사에서 87년 6월항쟁과 촛불혁명의 공통점을 찾기도 했다. 유미 씨는 “개인적으로 저는 87년 6월항쟁 이전에 80년 광주가 있었다. 87년 6월과 80년 광주가 연결되는 거고, 이번에는 세월호 참사와 촛불이 연결됐다”며 “2014년 세월호 있고 안산합동분향소 갔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영정사진을 보면서 여기가 광주인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고 설명했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각각 경북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박형룡 씨, 경화여고 학생회장 한유미 씨, 영남대 총학생회 사회부장 이용석 씨(왼쪽부터) (사진=정용태 기자)

촛불 세대들은 촛불혁명을 6월항쟁의 연속 선상에서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평화적 시위’라는 점에서 차별화를 시도했다. 물론 평화 시위의 기반에는 6월항쟁이 있었다는 점은 잊지 않았다.

이동엽 씨는 “4.19혁명이나 광주항쟁, 6월 민주항쟁 이번에 촛불혁명까지 계속해서 사회변혁이나 불합리에 저항하는 일들의 연속성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미나 씨는 “이번엔 평화시위였고, 그 점에서 뜻깊다고 생각한다. 유모차 끌고 아이들과 함께 참여하는 건 30년 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을 것”이라며 “30년 전 6월항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 평화 시위도 가능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특히 이들은 ‘갈등’적 관계로 표현되던 세대 관계를 촛불을 통해 서로 이해하는 계기를 갖고, 함께 사회를 꾸려 나가는 ‘동지’적, ‘화합’적 관계로 해석하는데 의견을 함께했다.

형룡 씨는 “사실 탄핵 투쟁 처음에는 ‘내가 이 나이에 또 고생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그런데 집회에 나가보니까 그런 생각을 안해도 되더라. 전 그게 발전이라고 본다”며 “애들부터 노인까지 각계각층에서 참여하더라. 이런게 정상적이거다. 특별히 학생이 더 많이 참여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운을 뗐다.

형룡 씨는 “경제적, 사회적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진보를 표현하고 있다고 믿는다. 투표율에서도 그런 게 반영된다고 본다”며 “각자의 재능을 살려 전체 사회가 발전하는데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고민하는 게 집단화되고 사회적 흐름으로 발전했으면 한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유미 씨도 “저는 우리 세대와 청년이 민주주의를 누리는 방법도 다르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청년들이 한국 사회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것이 냉소, 혐오의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을 뿐인데, 사회적 집단의 힘으로 표출만 된다면 우리보다 더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예가 이번에 촛불 혁명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촛불 세대 최미나(계명대), 이동엽(경북대) 씨(왼쪽부터) (사진=정용태 기자)

촛불 세대도 “내가 그때 학생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물음이 생기더라. 당시(6월항쟁)에 참여했던 분들이 굉장히 존경스럽다”(최미나)거나 “여기 계신 분들도 그렇고 모든 분들이 민주화의 주역이다. 그런 분들을 직접 보면서 이야길 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가슴 떨린다”(이동엽)며 짱돌 세대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동시에 미나 씨는 “기성세대는 우리가 노력을 안 한다고 한다. 노력을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강의 기적을 그들이 숭상하는 대통령의 공으로만 생각하고 노동자의 희생은 잊었다. 그런 희생을 청년에게 요구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건 부조리하다. 그 부조리를 없애야 한다”고 청년세대를 향해 노력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기성세대를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