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2년 특별 인터뷰] “위안부·원폭 피해자 문제 해결할 때 진짜 광복”

일제강점 피해 소송 전문가 최봉태 변호사 인터뷰
“원폭 피해자는 강제 동원, 피폭, 방치 3중 피해자”
“위안부·원폭 피해자 문제는 이어져 있어”

11:35

최봉태 변호사(사진, 55)는 동경대 유학 시절 일제에 갖은 피해를 당한 재일 조선인 변론에 일본 변호사들이 적극 나서는 모습을 목격하고 큰 인상을 받았다. 1997년 귀국 후 일제강점기 피해자 소송에 매달리기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 8월 일본 히로시마 평화공원에서 열린 히로시마 원폭 조선인 피해자 위령제에 참석한 최봉태 변호사. [사진=천용길 기자]

최 변호사는 20년 동안 2004년 한일협정 문서 정보공개 소송 승소, 2011년 위안부,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방치는 위헌 결정, 2012년 일본 미쓰비시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금 지급 판결 등 일제강점기 피해자 구제 소송에서 큰 성과를 냈다.

하지만 완전히 풀지 못한 숙제도 안고 있다. 바로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피해 한국인들에 대한 한·미·일 정부의 책임을 확인하고 마땅한 배상이 이뤄지도록 하는 일이다. 원치 않게 남의 나라에 끌려가 원폭 피해를 당했지만, 원폭을 투하한 미국도, 원폭 투하 원인을 제공한 일본도,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한국 정부도 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최 변호사는 최근 다시 원폭 피해에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 그리고 록히드 마틴 등 원폭 제조사에 책임을 묻는 법정 싸움을 다시 시작했다. (관련기사=한국 원폭 피해자들, 미국 정부-록히드 마틴 상대로 원폭 위법성 따진다(‘17.8.3)) 한·미 정부에 원폭 피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광복 72년을 맞아 최 변호사와 특별 인터뷰를 통해 의미를 짚었다.

원폭 피해, 전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미국을 상대하는 문제
한국 정부가 원폭 문제 해결에 나서게 하는 게 우선 과제

=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습니다. 이번 민사 조정 신청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피폭자 문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미국과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물적 동원을 가지고 있는 군수산업체들이 결합된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어서 접근할 때 순서를 잘 잡아야 해요. 우선적으론 한국 정부가 다시 이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하는데 의미가 있어요. 2011년에 헌법재판소 결정이 있거든요. 원폭 피해자들에 정부가 배상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와 협의하지 않는 건 위헌이라고. 왜 정부가 위헌 결정에 따르지 않느냐 말이에요”

= 원폭 피해라는 게 우리나라 국민 다수에겐 생소하잖아요? 우리나라가 원폭 피해에 직접 노출된 것도 아니어서.

“그래서 우리 입장에선 원폭 피해자들을 3중의 피해자라고 해요. ‘강제 동원’, ‘피폭’, ‘방치’. 3중의 피해자. 우리나라 원폭 피해자들이 구제를 받지 못하는 데는 가해자들끼리의 협잡이 배경에 있어요. 연합국에 대해서 일본이 청구권을 포기했으니까, 이걸 포기하면서 원폭을 투하한 미국에 대한 책임을 가볍게 해주고, 그 대신 미국은 아시아에 대한 일본 침략 전쟁의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은 거로 용인되는 거죠. 이게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한계에요. 그런데 한국정부는?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왜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건지 봐야 해요. 과거 정권이라면 워낙 원폭 피해자들의 인권 문제에 소극적이었으니까 그렇다 쳐도, 이제 정권이 바뀌었으니까 지켜봐야 할 일이죠”

= 위헌 결정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해주세요. 2011년에 헌법재판소가 정부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 위헌이라고 결정을 한거죠?

“당시에 원폭 협회에서 전 회원이 일치단결해서 헌법소원을 했거든요. 판결 취지는 원폭 피해와 관련해서 한국 정부가 손 놓고 있는 건 위헌이라는 이야기에요. 좀 더 정확하게는 청구 협정(한일청구권협정) 해석과 관련해서 일본과 한국 정부가 해석을 달리하기 때문에 해석에 분쟁이 발생했고, 분쟁 해결에 한국정부가 나서라는 이야기거든요. 법률 용어로 작위의무라고 하는데, 법적으로 정부가 원폭 피해자 배상 문제에 대해서 한·일 정부 간 이견이 생겼으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협의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 협의를 안 하는 건 위헌이다. 이런 의미죠.”

▲최봉태 변호사

원폭 피해자, 배상청구권 소멸 주장하는 일본 정부
일본 사법부, ‘손진두 재판’ 통해 개별 국가 보상 인정

= 일본 정부가 어떻게 나오길래 서로 이견이 있다는 건가요?

“일본 정부 이야기는 원폭 피해도 한일협정에 의해서 배상청구 권리가 소멸했다고 주장해요. 그런데 그건 일본에서 이른바 건강수첩 발부 사건으로 법리적으론 규명이 돼 있거든요. 어떻게 규명이 돼 있냐면, 피폭자 법 관련해서 일본에서 제일 먼저 만든 게 의료 관련 법(원자 폭탄 피폭자의 의료 등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거든요. 건강수첩을 원폭 피해자에게 발부하게 되어 있는데, 한일협정 체결 전에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이 넘어가서 건강수첩 발부 요구하면 해줬거든요. 한일협정 이후에는 발부를 안 해줘요. 그걸 재판이 걸렸는데 이게 바로 ‘손진두 재판(1978년)’이라는 거거든요. 일본에서 열린 재판인데 거기서 우리가 이겼어요”

= 손진두 재판이요?

“핵심만 말씀드리면, 이게 최고재판소(우리나라 대법원) 판결인데 원폭 의료법이 국가 보상적 취지를 같이 갖고 있다. 그러니까 사회 보장적 측면뿐 아니라 국가 보상적 취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도 국가보상의 대상이 된다는 거거든요. 이 법에 따라 적용해줘야 한다는 거죠. 이 이야기는 뭐냐면, 청구권 협정을 통해서 국가보상에 대해서 일본 정부가 다 소멸시켰다고 하면, 이 법이 국가 보상적 법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인들에게 이 법을 적용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일본 사법부는 청구권 협정과 상관없이 보상 책임을 인정한 거에요”

= 왜 일본 재판부랑 행정부가 다른 의견을 내고 있는 거죠?

“재판부는 정치적 고려 없이 법적으로 판단한 거죠. 법관이나 재판관이라고 하면 기본적인 상식이죠. 법이 국가 보상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법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건, 피폭자에 경우도 한일 협정과 상관없이 보상 대상이 된다는 판결이거든요. 이 법리는 일본 외무성에서는 자기들 정치적·외교적 이익에 따라서 끝났다(청구권이 소멸했다)고 하는데, 끝났다는 주장도 일관되게 이야기한 것도 아니에요. 개별 청구권이 별개라는 이야기는 일본 국회에서도 많이 답변을 했어요”

= 네? 무슨 말씀이죠? 일본 정부가 국회에서랑 법원에서 하는 말이 다르다?

“이런 게 너무 많아서 일일이 언급할 필요도 없는데, 일본 국회 전후보상문제국회의사록을 보면 관련 내용이 나오는데요. 일본 의원들이 청구권 협정에 의해서 개인 청구권은 어떻게 된거냐 묻는데요. 여기에 보면 ‘한·일 양국 간에 정부로서 외교 보호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개인 청구권은 국내법적 의미에서 소멸했다는 건 아닙니다’ 이런 답변을 계속했거든요. 국내법적으론 소멸시킨 건 아니라고 이야길 해왔다고, 그런데 개별적으로 재판만 하면 다르게 말하는 거죠. 핵심은 사법부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예요. 왜냐하면 3권 분립인 나라에서 조약 해석에 대한 궁극적인 해석 권한은 사법부가 가지고 있거든요. 행정부가 조약 체결 권한은 있더라도 체결된 조약에 대한 해석은 사법부가 해요. 사법부에서는 1978년 판결로 한일협정에 의해서 소멸 된 게 아니라고 판결을 한거죠. 사유재산권이 보장되는 헌법을 가진 국가와 국가 간 협정을 통해서 국가와 별개의 법 주체인 개인 권리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바로 소멸한다는 건 헌법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요. 국내법을 통해 협정 체결 사후에 가능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는 자도 있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협정 체결 후 국내법을 통해 개인 청구권을 소멸시킨 바가 없는 상황이어서 더 그렇죠. 일본 정부도 한국 정부에 아직까지 이를 요구한 적이 현재까지 없어요”

위헌 결정에도 나서지 않는 국가
개인이 나서 타국 정부와 소송이어와

= 이 정도면 우리 정부가 나설 여지가 많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위헌 결정하고 나서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어요. 한국 정부가 꼼짝 안 하니까. 이런 부분은 손해배상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재판을 했는데, 한국 정부 입장은 원폭 피해 문제도 협상하고 있다고 변론을 한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배상청구권에 대해서 협의를 하라는 건데, 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큰 틀에서 주고받은 이야기만 갖고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변론을 했는데 법원이 이걸 인정해줬어요. 그런데 실질적으론 안 하고 있거든요? 외교부가 원폭 피해자 관련해서 협상한다는 이야길 들어본 적 있습니까? 형식적인 건데, 똑같은 근거를 헌법재판소는 위헌으로 결정했는데 말이에요”

= 그러다 보니 국가가 아니라 개개인이 타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고 있는 상황인거네요?

“그렇죠. 국가가 안 나서니까 개인 피해자들이 가서 길을 열고 있는 거죠. 제가 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랑 원폭 피해자를 같이 헌법 소원을 했냐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법리적으로 가장 서포트 해줄 수 있는 게 원폭 피해 문제거든요. 그렇잖아요? 일본이 원폭 피해자들에 대해선 재판에 져서 치료를 해주고 수당을 지급하는 등 어느 의미에서는 국가 보상을 해주고 있거든요? 판결이 나와서. 그런데 위안부는 안 해줘요. 똑같이 일제시대 피핸데. 이들만 인권이 있고 위안부는 아니냐 이 말인거죠. 결국 일본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는 위안부 피해자는 피해자로 안 보는 거예요. 자기들이 피해자로 보면 한일협정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도 않고 보상도 할 수 있고, 선례도 있는데 피해자로 안 보니까 이러는 거거든요”

연결돼 있는 위안부-원폭 피해
“위안부 문제 해결 위해서라도 원폭 피해 구제 나서야”

=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원폭 피해자 구제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맞아요. 일본에서는 2015년에 합의됐는데 왜 위안부 문젤 이야기하냐고 하잖아요. 그럼 작전상 이거(원폭 피해) 이야기하자고 하면 될 거 아니에요. 이걸 하다 보면 위안부 문제도 자연히 이야기되는 거 아니에요. 이게 위안부 문제하고 원폭 문제가 왜 링크되어 있냐면 김학순(우리나라 최초 위안부 피해 증언) 할머니가 커밍아웃하게 된 동기가 원폭 피해자들 영향이 있어요. 김학순 할머니가 원폭 피해자인 이맹희 여사 투쟁 의식을 통해 격려를 받으면서 이름을 공개하게 되거든요. 위안부 문제하고 원폭 피해자 문제가 이어져 있는거죠. 원폭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성과를 많이 내고 있고, 한국 내에서나 세계적인 투쟁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많이 하고 있는데, 이걸 별개 문제로 보지 말고 같은 문제로 보고 대처해야 하거든요. 한국정부가 위안부 문제만 어설프게 대응을 하다 보니까 이런 협의까지 온 거라고 봐야 해요”

= 다른 문제이긴 한데, 원폭 피해 2세에 대해서는 각국 정부 입장이 있나요?

“일본과 미국 정부의 기본 입장은 원폭 피해 유전성을 인정 안 하는 거예요. 한국정부도 마찬가지고, 그건 미국 논리인데, 실질적으로 알아보면 원폭 피해자들에 대해서 당장 1세대 피해자들이 자식들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고 2세대 중에서는 몸이 안 좋은 사람이 유의미하게 나타나고 있어요. 이런 데이터를 미국이 ABCC(Atomic Bomb Casualty Commission, 원폭상해조사위원회)을 통해서 조사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자료 공개를 안 하고 있잖아요. 미국 입장에서는 ‘핵실험’을 하고, 핵실험에 대한 데이터를 만들어가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이번에 정보 공개에 대해서도 조정 요청을 한 거죠”

= 마지막으로 원폭 피해자의 권리를 찾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 말씀 해주시면?

“합천을 히로시마의 히로시마라고 하거든요. 앞서 이야기했든 한국 원폭 피해자는 3중의 피해자니까 오로지 피해자 입장에서 목소릴 낼 수 있어요. 그렇게 가해자로부터 사죄를 받아내야 하고요. 그런데 아무도, 미국도, 일본도 사죄를 안 하죠. 오바마가 일본 가서 했다는 건 사죄로 볼 수도 없어요. 원폭 문제를 제기하는 건 결국 미국을 건드리는 것이니까. 원폭 피해자 이야길 하는 만큼 우리가 우리 자주성을 찾아가는 길이 될거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