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피해 구제 막는 한국 사법부, 재판만 18년째

2013년 미쓰비시, 신일본제철 손해배상 판결 이후 대법원 계류
“40년 넘게 이어진 피해자들의 구제 투쟁 역사 무시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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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2 19:14 | 최종 업데이트 2017-08-22 19:14

“강제 징용자 문제도 양국 간 합의가 개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는 없다. 양국 간 합의에도 불구하고 징용자, 징용당한 강제 징용자 개인이 미쓰비시 등을 비롯한 상대 회사에 대해 가지는 민사적인 권리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 한국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의 판례다”

영화 <군함도> 개봉도 한몫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강제징용 문제가 노무현 정부 때 한일 기본조약으로 해결됐다고 말한 일본 기자에게 한 답변으로 일제강점기 때 벌어진 일제의 강제 징용 문제가 화제가 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갖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일제의 불법적 행위에 대해 피해자들이 사과받거나 배상을 받는 데까지 나아가는데 대한민국 사법부가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미쓰비시 중공업과 신일본제철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4년째 대법원에 계류 중인 것이 상징적이다.

두 재판은 각각 2000년 5월, 2005년 2월 제기돼서 1, 2심 판결 모두 제각각 받았지만, 대법원은 두 사건에 대해 같은 날 같은 판결을 했다. 각각 부산고등법원(미쓰비시), 서울고등법원(신일본제철)에서 진행된 파기환송심도 비슷한 시기에 같은 내용으로 판결 났다.

대법원은 지난 2012년 5월 24일 의미 있는 두 가지 판결을 했다. 바로 미쓰비시 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에 대한 상고심 판결이었다. 대법원은 각각 12년, 7년 만에 일본 측 전범 기업 손을 들어준 원심을 깨고, 전범 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부산고등법원은 2013년 7월 30일에 미쓰비시 중공업이 피해자 1인당 8천만 원씩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서울고등법원은 이보다 20일 앞선 7월 10일에 신일본제철이 피해자 1인당 1억 원씩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사이 미쓰비시 중공업에 소송을 제기한 원고들은 모두 사망해버린 뒤였다.

문제는 그 뒤부터다. 미쓰비시 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은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파기환송심에 반발해서 모두 상고했다. 각각 같은 해 9월 4일(미쓰비시), 8월 9일(신일본제철) 대법원에 접수된 두 재판은 벌써 만 4년째 계류 상태다.

그 사이 또 하나의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이 대법원까지 올라왔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근로정신대로 끌려간 양금덕 할머니를 포함한 5명이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그것이다. 광주고등법원 역시 지난 2015년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했다. 대법원에는 2015년 7월 30일에 사건이 접수돼 2년째 계류 중이다.

일제로부터 각종 피해를 당한 우리 국민들은 지난 40년 동안 개별적으로 법적 투쟁을 통해 성과를 내고 있다. 그 덕에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원폭 피해자들이나 한센병 피해자들에 대해서 자국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보상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대법원이 이미 한 차례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하고도 판결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 6일 경남 합천 원폭피해자복지회관 내 위령각에서 열린 원폭 피해자 추모제.

대법원은 관련 재판이 길어지는 이유를 묻는 <뉴스민> 질의에 “진행 중인 사건이어서 보도에 언급된 내용 외에는 답변드릴 수 없음을 양해 부탁드린다”고 알려왔다.

2012년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한 대법원 판결을 이끈 최봉태 변호사(법무법인 삼일)는 “원폭 피해자나 한센병 피해자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듯 청구권 협정 때문에 피해자들의 권리가 구제되지 못한다는 주장은 법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맞지 않다”며 “청구권 협정을 빌미로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 정부도 타당하지 않지만, 피해국인 우리가 그 논리를 받아들여 고민하는 것도 40년에 걸쳐 피해자들이 투쟁해온 역사를 무시하는 것이다. 우리 사법부가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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