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양돈장 이주노동자 유족의 바람...“동생 같은 비극적인 죽음 없어야”

5남매 중 유일하게 대학나온 동생의 비극적인 죽음
곧 비자 만료로 떠나야 하는 형..."사장이 말 바꿔"
산업재해 인정 받았지만, 민사소송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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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5 15:18 | 최종 업데이트 2017-08-26 20:38

"다시는 동생 같은 비극적인 죽음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24일 오후 7시 대구시 중구 오오극장에서 열리는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10주년 인권영화제 '시네마 수다'를 찾은 발 바하두르 구룽(Bal Bahadur Gurung, 29) 씨가 한국에 와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그는 지난 5월 경북 군위군 우보면 한 양돈장에서 일하다 죽은 네팔 이주노동자 테즈 바하두르 구룽(Tej Bahadur Gurung, 25)의 친형이다.

테즈 바하두르 구룽 씨는 지난 5월 양돈장 집수조 내부에 들어가 돼지 분뇨를 밖으로 빼내는 작업을 하던 중 황화가스에 중독돼 질식했다. 먼저 작업 중인 동료가 질식해 쓰러졌고, 이를 보고 뛰어들어간 테즈 씨도 쓰러져 모두 다 사망했다.

당시 대구고용노동청이 특별근로감독을 벌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 12건을 적발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집수조 등 밀폐공간에 들어가기 전에는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해야 하지만, 측정하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한 집수조 내부에는 황화수소 농도 25ppm으로 일반 작업장 노출 기준(10ppm)보다 두 배나 높게 나타났다. 기본적인 마스크 등 안전 도구도 지급되지 않았다.

▲사고가 일어난 돼지 분뇨 집수조(사진=경산이주노동자센터)

이날 대구인권사무소는 첫 시네마 수다 주제로 이주노동자를 택했다. 영화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자전거 여행>, <잠수왕 무하마드>를 상영하고, 김헌주 경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김헌주 소장은 발 바하두르 구룽 씨가 동생 사망 후 한국에 들어와 산업재해 신청 등을 하는데 함께 하고 있다.

김헌주 소장은 "황화수소라는 가스는 불행히도 바닥에 깔려있다. 사람이 들어가서 첨벙첨벙하면 금방 가스가 올라온다. 한 명이 쓰러지는 걸 보고 뛰어들어갔다. 테즈는 공장에서도 고참이었다"며 "두 사람 다 비극적으로 죽었다. 형님이 이 억울한 사연을 밝히려고 한국에 오셨다"고 소개했다.

발 바하두르 구룽 씨는 지난 6월 10일 한국에 입국했다. 오는 9월 4일이면 비자가 만료돼 출국해야 한다. 산업재해 인정도 받았고 대구에서 동생의 장례도 치렀지만, 민사소송이 남았다. 사업주가 처음과 달리 테즈 바하두르 구룽 씨가 동료에게 군기를 잡으려다 사고가 났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네팔을 오가며 구룽 씨의 통역을 담당하는 시리 시타 씨는 “사장이 처음에는 잘못했다, 내 사업장에 문제가 있다고 했지만, 15일 뒤에 내 책임이 없다고 말을 바꿨다. 억울하다”며 “외국 사람이니까 아무것도 못 하는 거처럼 말했다"며 "이제 민사를 하는 데 얼마 걸릴지 모르겠다. 한국 사람이라면 그렇게 했겠나”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헌주 경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 발 바하도르 구룽, 시리 시타 씨

구룽 씨는 김 소장과 시리 씨가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말수가 적은 구룽 씨를 대신해 시리 씨가 지난 3개월간 상황을 설명했다. 구룽 씨도 내년에 한국에서 일하려고 고용허가를 받기 위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시리 씨는 "시험 붙어야 오지"라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지만, 김 소장은 "이런데도 한국에 오겠다고 하니…"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구룽 씨는 5남매 중 장남이다. 사고를 당한 동생 테즈 씨는 둘째로, 5남매 중에 공부를 제일 잘해 집에서 대학도 보냈다. 그는 네팔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치고,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왔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한국 올 채비를 마쳤다. 한국에서 3년 일하는 동안 네팔에 땅도 사고 집도 지을 수 있었다.

시리 씨는 "같이 고향에 가서 가족들을 만났다. 아버지가 대나무로 제품을 만들어 5남매를 키웠다. 둘째가 공부를 제일 잘하니까, 남매들 돌보라고 공부도 많이 시켰다. 동생들은 아직 학교에 다닌다"며 "테즈가 가족들을 다 책임지고 있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테즈 씨는 집안의 실질적 가장이었다. 이제 구룽 씨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구룽 씨는 한국에서 동생과 같은 죽음이 없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지난 3개월을 보냈다.

김헌주 소장은 "군위에서 두 분이 돌아가시고 대책 활동을 하는 동안 경기도 여주에서 이주노동자 두 분이 똑같은 이유로 돌아가셨다. 좀 더 우리가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또 그런 비극적인 사고가 생겼을까 많이 자책했다"며 "발 바하도르 구룽의 심정도 같다. 다시는 동생과 같은 죽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늘 한다. 함께 마음을 모아서 이주노동자와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시네마 수다에는 관객 30여 명이 모여, 영화 상영 후 1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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