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 칼럼] 문재인 정부의 ‘불가피한’ 사드배치는 사실상 미국 압력에 굴복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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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1 18:03 | 최종 업데이트 2017-09-11 18:08

지난 7일 새벽 성주 소성리에서 벌어진 일을 실시간 중계로 지켜보았다. 시차 때문에 내가 살고 있는 뉴욕은 하루 늦은 6일 대낮이었다. 경찰이 차량과 병력을 투입해 소성리로 진입하는 길을 모두 봉쇄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나는 반사적으로 80년 광주를 떠올렸다. 도시로 들어가는 모든 도로가 차단되어 외부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채 거대한 국가폭력에 혼자 맞서야 했던 광주. 소성리를 80년 광주처럼 혼자 외롭게 싸우게 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구 반대편에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저 주민들이 경찰 폭력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스크린을 통해 지켜보면서 같이 울고 분노하고 응원하는 것 외에 별 도리가 없었다. 그 시각 숨죽이며 소성리를 지켜본 사람은 나뿐 아니었을 것이다. 역사의 한 장으로 영원히 기억될 그 순간을.

▲2017년 9월 7일 새벽, 경찰은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배치를 저지하던 시민들을 진압했다.

주민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드 추가배치는 완료됐다. 폭력적인 강제해산으로 부상자만 50여 명이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수치로 가늠할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은 상처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촛불하면서 우리 편 되는 척하면서 이래 사드를 들여다 놓느냐”는 한 소성리 할머니의 항변처럼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이 느낀 배신감과 실망은 다 어찌할까.

사드배치 후 이낙연 총리는 국가 안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발표했다. 공권력이 소성리를 짓밟고 있을 때 러시아 방문 중이었던 문 대통령도 다음 날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드 임시배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며, 기습 사드배치를 “현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라고 정당화했다.

불가피한 선택?

불가피한 선택이란 말은 다른 대안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말은 종종 위정자들이 정당하지 않은 선택을 한 다음 하는 변명에 불과하다.

지금 서울구치소에 수번 503을 달고 앉아있는 전 대통령 박근혜는 5.16 군사쿠데타를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유신은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국민 대다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불가피한 선택이란 말로 어찌 5.16 군사쿠데타가 정당화될 수 있으랴.

또 다른 예를 들면, 태평양 전쟁 말기에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수십만 명을 학살한 것을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미국은 주장한다. 어쩔 수 없었지만, 정당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히로시마를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피해자들의 빗발치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이런 식의 ‘불가피한’ 선택의 예는 역사에서 너무 쉽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수사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질문을 끄집어내야 한다. 과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선택인가? 이 선택으로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고통을 받는가?

대선 기간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는 했지만, 문 대통령은 사실 일관되고 분명하게 사드를 반대하지 않았다.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말로 분명한 입장 표명을 회피해 왔고, 사드 배치에 대해 재검토하겠다고 말할 때조차 사드배치 철회를 뜻하지는 않았다.

▲9월 6일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하지만 문재인 스스로 약속했던, 이전 정부의 사드 도입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 국회에서의 공론화와 합의 도출, 기지 전체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등 민주적, 절차적 정당성 확보조차도 이행하지 않은 것에 대한 제대로 된 설득도 없이 그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퉁치고 넘어갈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불가피한’ 선택은 사실상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 취임 첫날 트럼프와의 전화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 안보 정책의 근간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미국과 관계에 관해선 적어도 이전 정부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을 시사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도발 억제와 핵 문제 해결을 여러 안보 사안 중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며 트럼프의 대북 압박조치에 큰 이견이 없음을 내비쳤다. 강경화 외무장관 또한 취임 직후 “한국 정부는 기본적으로 한미동맹의 정신에 입각한 합의를 번복할 의도가 없다”며 사드배치 번복에 대한 의구심을 일축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인 9월 4일 트럼프와의 전화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사드 추가 배치를 신속히 마무리하겠다고 하면서 7일 소성리에서 벌어진 일은 이미 예견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미동맹이라는 더 큰 대의(?) 앞에 국민과 소통하겠다던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그렇다면 한미동맹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할 절대 선인가?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한미동맹인가?

한미동맹은 한마디로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과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수단이지, 한국을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다. 미국이나 한국의 주류 언론은 북의 위협이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유일한’ 요인인 것처럼 떠들어 대고 있다. 미치광이 김정은의 도발 때문에 핵전쟁 위협이 고조되고, 그를 무력화하는 것만이 평화를 위한 유일한 해법으로 비친다. 핵무장론, 전술핵 재배치, 김정은 참수부대 창설 같은 평화에 도움이 안 되는 위험한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강행하면서 미국과 충돌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북한의 핵개발이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북한의 호전적인 대응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최근 다시 고조된 한반도 전쟁 위협 속에서 북핵을 비난하는 소리는 좌우 모두에서 높지만, 정작 미국이 동아시아와 한반도에서 긴장을 고조하고 있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소리는 크지 않은 듯하다.

예를 들면,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하기 직전, 8월 21일부터 열흘간 진행된 한미연합 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을 보자. 미국은 UFG가 ‘방어’ 훈련이라고 주장하지만,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이 세계최강 군사력을 코앞에서 과시하는 군사도발이다. 특히, 올해 훈련 마지막 날에는 미국의 최신예 F-35 스텔스 전투기와 전략폭격기 B-1B가 처음으로 한반도 상공에 동시 출격해 북한을 겨냥한 가상 폭격을 하며 무력을 과시했다. 그뿐인가. 같은 날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북한과 대화는 답이 아니라는 노골적인 위협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순순히 핵 개발을 멈추고 대화에 임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핵무기 개발을 격려하는 김정은. [사진=로동신문]
워싱턴에 있는 비영리 단체인 군축협회(Arms Control Association)에 따르면 올 7월 기준으로 북한은 1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현재 핵탄두 6,800개를 가지고 있다. 김정은이 국민들의 안녕은 안중에도 없는 미치광이 독재자라면 트럼프도 그에 못지않다. 북한보다 700배 가까이 많은 핵무기가 현재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의 통제 속에 있다. 러시아는 미국보다 많은 7,000개를 보유하고 있다. 김정은, 트럼프, 푸틴, 이 중에 이성적이라고 믿을 수 있는 자가 도대체 하나라도 있는가? 북한 핵만이 문제가 아니다.

또 하나, 핵실험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핵무기를 사용한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가 미국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특히, 인종주의자 트럼프의 ‘미국 우선(America First)’ 정책 속에 한반도 보통 사람들 안위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실제로 트럼프는 그의 속마음을 그대로 내뱉었다.

북한의 핵 개발을 내버려 두느니 전쟁도 불사하겠다며, “북한과 전쟁이 나서 수천 명이 죽어도 거기(한국)에서 죽는 것이지 여기 (미국)에서 죽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를 미치광이 트럼프의 헛소리라고만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미국은 철저히 세계평화가 아닌 제국의 이해를 위해 움직여 왔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중국의 참전을 핑계로 한반도에서 핵무기 사용을 적극 고려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이 다시 한반도에서 핵전쟁을 고려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아무것도 없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전혀 도움이 안 되지만, 북한의 이런 군사도발은 현재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미국의 호전적인 대북 정책의 결과다. 따라서 북핵뿐 아니라 미국의 핵무기와 군사 도발에 대해서도 단호히 반대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평화는 요원하다. 미국의 제국주의 패권과 군사 확장이야말로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사드배치는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기는커녕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 사이의 군사 대립과 긴장을 더 높일 것이다.

사드배치 반대운동은 반전반핵운동으로 더 나아가야.

그토록 소통을 강조해 온 문재인 정부가 무력을 동원해 기습적으로 사드 배치를 강행한 것은 한 시사주간지 기자의 표현처럼 “미국이 짖으라고 하는 대로 짖어 주고 있는 것”이다. 힘의 논리로만 본다면 미국의 뜻을 거역할 수 없는 정부의 불가피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 문재인 정부는 무조건 미국을 따라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경찰이냐”는 소성리 주민들의 울부짖는 항의를 무시한다면, 작년 겨울 광장을 울렸던 ‘이게 나라냐’라는 항의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주 소성리를 방문한 질 스타인.

지난 7월 ‘사드배치철회 미국시민평화대표단’ 일원으로 소성리를 방문한 미국녹색당의 전 대선후보인 질 스타인은 사드 배치 결정 과정이 한국 정부가 동등한 주권을 행사한 것이 아닌, ‘미국의 군사적 우위가 반영된 결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미국은 한반도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성주에서 사드에 반대해 싸우는 사람들을 전 세계 군비 확장, 군사주의에 맞서 외롭게 싸우는 다윗에 비유했다. 그리고 그 외로운 다윗의 투쟁에 같이 동참하겠다는 아직은 작지만, 소중한 목소리가 미국에도 있다는 걸 알려줬다.

우리는 2001년 9월 11일 직후 전쟁의 광기 속에서도 많은 미국인들이 자국의 제국주의 침략과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의 목소리를 높인 것을 목도했다. (관련 기사=[남수경 칼럼] 9.11 15주년을 맞아 테러리즘을 생각한다, 2016.9.19) 지금이야말로 다시 한번 평화를 원하는 전 세계 민중들이 전쟁 반대와 반핵의 기치 아래 함께 연대해 싸워야 할 때다. 꿈같은 이상주의라고 치부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이 평화를 위한 진정한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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