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해직자들이 김부겸 장관 사무실에서 나흘 농성한 이유

[인터뷰] 전대곤 공무원노조 회복투 대구·경북권역 위원장
2004년 이후 13년째 해직 생활
“대화 상대로 생각하기 때문에 면담 요구”
“입장 다른 것 확인되면 공세적 투쟁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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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나흘 동안 대구 수성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국회의원 지역구 사무실에서 해직 공무원들이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김 장관과 면담을 요청했고, 의원실에선 날짜를 특정해 면담 일정을 잡는데 난색을 보였다. 금방 끝난 줄 알았던 농성은 나흘간 이어졌다. 이들이 김 장관과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까지 한 이유는 뭘까?

전대곤 공무원노조 회복투 대구·경북권역 위원장
2004년 이후 13년째 해직 생활

▲전대곤 위원장을 비롯한 해직 공무원들은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나흘간, 김부겸 행안부장관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농성을 벌였다.

나흘간 농성을 한 전대곤(58) 전국공무원노조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 대구·경북권역 위원장은 2004년 12월 1일 해직됐다. 그해 11월 15일 전대곤 위원장을 포함한 공무원노조는 총파업에 나섰다. 정부가 입법한 공무원노조법(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때문이었다. 정부는 쟁의권을 제외하고 교섭권과 단결권을 인정하는 공무원노조법을 만들었다. 교섭권도 온전하게 보장된 건 아니었다.

전 위원장은 “사실상 1.5권, 정부로서는 2권이라곤 했는데, 1.5권도 안 됐죠. 단체행동권(쟁의권)도 없고, 단결권만 있고. 교섭권도 굉장히 정부 측에 유리한 수준이었고. 그걸 반대하는 의사 표시로 총파업을 하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정부 강경 대응으로 파업 대열은 빠르게 무너졌다. 지역 곳곳에서 파업에 동참했던 지부들이 업무에 복귀했다. 정부는 즉각적인 징계 절차에 돌입했다. 파면, 해임만 400여 명. 그밖에 징계를 포함하면 천 명 넘는 공무원들이 징계를 받았다.

▲2004년 11월 16일 오후 5시, 100여 명의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은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 환승통로에서 게릴라 시위를 벌였다. [사진=참세상]

당시 전 위원장은 공무원노조 대구경북본부 수석부본부장이자 대구 남구지부장이었다. 1984년 수성구에서 9급 일반행정직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주로 실세 부서로 분류되는 총무, 기획, 인사 업무에 몸담았다. 2001년에 대구 남구청 공무원 직장협의회장으로 당선됐다. 공무원노조 설립에 함께 하겠다는 걸 공약으로 내걸고 맡게 된 회장직이다. 상명하복에 젖어 불합리하게 운영되는 공직사회 부조리를 바꿔보고 싶었다. 2003년 전 위원장은 공약대로 공무원노조 지부를 설립했다.

“공무원노조 들어가기 전에 경주에서 열린 대의원 대회에 참관했다. 6시간인가, 대의원대회를 하는데, 참 치열하게 토론을 하더라. 그걸 보고 확신을 갖고 2003년 9월에, 9월 4일이었다. 남구청에서 거창하게 창립 대회를 했다. 남구청 그 좁은 주차장에서 차는 다 치우고 무대 설치하고 의자 깔고···그땐 정말 6급 이하 공무원은 거의 다 가입했다. 95% 정도는 됐다”

지난 10여 년 동안 노조는 대량 징계와 정부 탄압으로 위축됐다.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 정부 9년 동안은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전국공무원노조와 전국민주공무원노조, 법원공무원노조가 통합해 전국통합공무원노조로 새롭게 설립 신고를 내자 이를 반려했다. 조합원에 해직자들이 있다는 이유였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같은 이유로 전교조를 법외노조화한 것보다 4년 앞선 일이다. 노조는 2010년, 2012년, 2013년, 2016년까지 설립신고를 했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부겸 장관, 대화 상대로 생각하기 때문에 면담 요구”
“입장 다른 것 확인되면 공세적 투쟁 전개”

전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노조 설립신고 문제와 자신을 포함한 해직자 136명 문제도 해결할 길이 열릴 거라고 기대했다. 촛불 정부인 데다, 노무현 정부의 정통성을 잇는 정부인만큼 결자해지 해주길 바랐다. 문 대통령도 2012년, 2017년 대선에서 공무원노조 문제 해결을 위한 전향적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4개월 동안 이 문제 해결을 위한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급기야 지난달 31일 김주업 공무원노조 위원장이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고용노동부는 김 위원장이 단식을 시작하고 8일 만인 지난 7일에야 단식 농성장을 찾아 실무교섭을 제안했다.

우여곡절 끝에 노동부와 소통 자리가 마련됐지만, 공무원노조와 업무적으로 직접 당사자인 행정안전부와는 여전히 소통 창구가 열리지 않고 있다. 전 위원장을 포함한 대구·경북 해직자들이 나흘간 농성을 한 이유가 여기 있다.

▲전대곤 전국공무원노조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 대구경북 권역 위원장.

“대구 출신 행안부 장관이기도 하니까 면담 거부에 대해 규탄하곤 있지만 기본적으로 김부겸 장관을 투쟁의 대상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면담을 요구한다는 게 그렇지 않나. 투쟁 대상으로 본다면 면담 요구를 왜 하겠나.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니까 면담을 요구하는 거다. 그런데 정말 우리 입장과 정말 반대구나 하는 게 확인되면 그땐 좀 더 공세적인 투쟁의 대상으로 전환하게 될 거다”

18일 김부겸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을 수행해 미국을 방문한다. 전 위원장과 동료들은 장관 본인이 한국에 없는 상황에서 농성을 계속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15일 저녁 농성을 정리하기로 했다. 김 장관의 의원실과는 면담 일정과 관련해 계속 협의하기로 했다. 전 위원장은 이날 농성을 풀면서 “기대치 만큼 안 되는 건 분명히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