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 피해 구제’ 첫 조정 재판 열려…정부, “조정 어렵다” 반복

록히드 마틴, 보잉 등 핵무기 제조사 빼고 열려
피해자들, “조정 어려받는 정부, 실망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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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8 19:34 | 최종 업데이트 2017-09-19 00:22

“한국 정부가 신청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우선 확인했으면 한다. 미국은 노근리 사건의 선례가 있기 때문에 (원폭 피해자들에게) 공감이 되면 신청 취지에 대해서 미국 정부도 선례가 있으니 수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선 우리 정부가 어떤 의사인지 확인해야 할 것 같다” _ 최봉태 변호사

“수임한 지 얼마 안 돼서 정확히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성질상 조정이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_ 정부 측 변호인(정부법무공단)  

정부는 여전히 난색을 보였다. 법률상 ‘조정’은 법원 판결이 아니라 당사자간 양보와 합의로 해결책을 찾는 분쟁 해결방법이다. 따라서 “조정이 어렵다”는 말은 양보와 합의가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정부 측 변호사는 약 20분간 진행된 조정 재판에서 “조정이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만 여러 차례 반복했다.

▲18일 첫 조정 재판을 마치고 나온 후 최봉태 변호사(제일 왼쪽)와 피해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8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제1별관 204호 조정실에서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이 한·미 정부와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 Corporation), 보잉(The Boeing Company), 듀폰(E. I. du Pont de Nemours and Company) 등 원폭 제조사에 원폭 투하 행위의 위법성을 묻고, 미국 정부의 사죄, 대한민국 정부의 피해자 구제를 위한 책임 있는 행동 등을 요구하는 조정 신청 첫 재판이 열렸다.

첫 재판은 예상보다 일찍 열렸다. 애초에 조정 신청 대상에 미국 정부와 미국 기업들이 있기 때문에 조정신청서 송달 과정을 거치는 데만 수개월이 걸릴 거로 예상했다. 실제로도 첫 재판이 열린 이 날까지 미국 정부와 록히드 마틴 등 기업에는 조정신청서가 송달되지 못했다. 재판부는 우리 정부만을 대상으로 먼저 기일을 잡았다.

정부는 재판을 앞두고 지난 금요일(15일) 촉박하게 조정 기일 변경을 요청했다. 재판부는 변경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예정대로 재판을 열었다. 재판부는 “사안의 성격상 조정을 하기엔 쉽지 않은 것 같다. 조정에서 다룰만한 사안인지 양쪽 의견을 들어보고자 한다”며 이르게 기일을 잡은 이유를 설명했다.

피해자 측 변론을 맡은 최봉태 변호사(법무법인 삼일)는 “(조정이 아닌) 민사소송을 하게 되면 금전 청구를 중심으로 소송을 하게 될 텐데, 피해자들은 금전보다 신청 취지에 대해 구제되길 원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 입장을 타진한 후에 절차를 진행했으면 한다”고 신청 취지를 요약해 설명했다.

지난달 3일 원폭 2세 환우회 부회장 한정순(58) 씨를 포함한 원폭 피해 1, 2, 3세대 당사자들이 제기한 조정 신청 취지는 ▲원폭 투하 행위의 위법행위고, 미국이 국가책임이 있음을 확인 ▲미국이 피폭자 관련 정보 공개 및 사죄 ▲대한민국 정부가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에 대해 일본과 협의 이행 ▲한·미 정부, 원폭 관련 기업들의 한국인 피폭자 실태 진상조사 협력 ▲피해 회복 재단 설립 및 손해 배상 등이다.

금전적 보상보다는 한·미 정부가 원폭 투하에 대해 책임 있는 사죄를 하고, 피해 구제를 위해서도 책임 있고 구체적인 행동을 하도록 하는데 초점이 모아졌다. 특히 원폭 투하 이후 현재까지 미국 정부가 축적하고 있는 정보를 공개해서 원폭 피해가 대를 물려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규명하는 데도 목적을 뒀다.

재판부는 11월 20일까지 신청인들의 신청 취지에 대한 정부 측 답변서를 받아보고 추후 일정을 잡기로 하고 이날 재판을 종료했다. 한정순 부회장은 “전체적으로 원폭 피해 환우들이 받고 있는 고통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조정을 신청한 거지 개인적인 보상을 받기 위해 조정을 신청한 게 아니”라며 “그런데 정부에서 조정은 어렵다고 하는 걸 보니까 실망스러웠다”고 첫 재판을 마친 심정을 전했다.

최봉태 변호사는 “조정은 상대방과 협의를 통해 원만하게 합의를 하려는 동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어 보이니까 재판부에서도 본 재판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며 “정부 입장에선 이 조정 신청 자체가 조용히 넘어가길 바라는 것 같다”고 짚었다.

최 변호사는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유감 표명을 했던 노근리 학살 사건을 사례로 들면서 “우리 정부가 어떤 입장을 보이는지가 중요하다. 미국 입장에선 이 사건이 노근리보다 더 명분이 있는 사건 아니겠나”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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