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아파트는 몇 평이야?”

‘유가’가 이사 간 후 1년, 달라진 것들, 달라질 것들

12:31

노란 버스가 길 위를 달린다. 푸르게 자란 벼가 길 양쪽으로 펼쳐진다. 1분 남짓, 온통 푸르던 창밖 세상은 회색빛으로 변한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으면 왕복 2차선 도로와 합류한다. 담이 낮은 집이, 페인트 가게가, 고물상이, 낡은 가건물이 듬성듬성 길 양쪽에 서 있다. 다시 5분 남짓, 낡고 낮은 건물은 조금씩 사라지고, 대차게 고개를 뒤로 젖혀야 꼭대기를 볼 수 있는 아파트들이 길게 늘어선다.

대구 달성군 유가면 유곡리 978번지. 유가는 1933년 5월부터, 2016년 8월까지 83년 동안 이곳을 지켰다. 6년마다 정든 친구들이 떠날 때도, 한결같았다. 유가면 봉리 623번지. 2016년 9월 1일, 유가는 아파트들 사이로 이사했다. 새로 이사 간 집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13개였던 방만 73개로 늘어났다. 다른 공간까지 포함하면 차이는 더 커진다.

마을은 유가의 이사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마을 주민들은 유가의 이사를 두고 찬반으로 갈라져 싸웠다. 수옥(41)씨네도 유가의 이사를 반대했다. 수옥씨네는 유가가 좋아서 2015년 12월 유곡리로 이사 왔다.

유가가 이사 가기 전까지 18개월 동안 수옥씨네 삼남매에게 유가는 좋은 친구였다. 집을 나서 5분만 걸으면 곧장 유가를 만날 수 있었다. 구불구불한 시골 골목길을 걸을 때면, 이웃 할아버지는 경운기로 밭을 갈고, 유기견일 될 뻔한 대니와 콩순이가 신나서 쫓아온다.

삼남매는 지금도 매일 아침 똑같은 길을 걷는다. 다만 집을 나서는 시간이 조금 더 일러졌다. 오전 8시 5분, 유가면 유곡리 978번지에서 노란 버스를 한 번 더 타야 하기 때문이다. 노란 버스는 유가가 새롭게 둥지 튼 유가면 봉리 623번지까지 삼남매를 옮겨다 준다.

8시 5분 노란 버스를 우민이(가명)는 타지 않는다. 우민이는 수옥씨네 보다 다 유가와 가깝게 살았다.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유가가 있었다. 유가가 이사가고, 우민이는 유가에게 가는 길이 낯설어졌다. 아버지 일규(40) 씨가 출근 길에 우민이를 유가에게 데려다준다.

▲1933년부터 2016년까지 한 자리를 지켰던 옛 유가초등학교 전경.

유가는, 초등학교다. 83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켰던 농촌 작은 학교다. 대구교육청은 지난해 9월 기존 학교를 폐교 처분하고 새로 만든 학교로 유가초를 이전 개교했다. 새 학교를 둘러싼 새 아파트에는 젊은 부부가 많이 들어왔다. 애초 1,050명이었던 정원은 1,245명까지 늘어났다. 학급당 평균 학생이 25.9명이다. 3학년이 평균 28.4명으로 가장 많고, 2학년이 평균 24.8명으로 가장 적다. 전 학급이 전국 평균보다 2~3명씩 많다.

최길영 대구시의원은 이 지역이 인구가 급증하는 것에 비해 교육시설이 부족하다고 우려했다. “급증하는 인구에 비해 교육시설이 부족한 상황에서 누구보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큰 불편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 초등학교 역시 전체학년별 학급당 학생 수 평균이 비슬초와 유가초는 대구시 전체 초등학교와 비교해 많은 수준입니다” 시의원은 의회 발언을 통해 문제를 지적했다.

수옥 씨는 바뀐 환경이 삼남매에 미칠 영향이 걱정이다. “마을 안에 학교가 있었는데, 이젠 우리 마을이 아닌 다른 곳으로 멀리 가는 거니까요. 정서적으로 다르겠죠. 가끔 수업 마칠 때 가보면 버스 기다리면서 고개 숙이고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걸 보면 좀 안타깝죠. 애들요? 애들은 긍정적이니까, 적응은 잘 해요. 큰 애만 운동장이 좁아져서 놀기 힘들다고 이야길 하는 게 전부죠”

아이들은 쉬이 적응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변화의 징후는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발견된다. 2014년부터 2016년 1학기까지 1건도 없던 학교 폭력 사례는 이사 직후인 2016년 2학기에 4건 발생했다. 심한 욕설이나 놀림을 당했다는 사례가 2건, 사이버 괴롭힘 1건, 집단 따돌림도 1건 있다.

“너희 아파트는 몇 평이야?” 올해 1학년이 된 우민이는 알 수 없는 질문을 받는다. 우민이는 옛 유가초와 걸어서 2분이면 닿는 붉은 벽돌 주택에 산다. “아파트가 뭐야?” 우민이는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물었다. “어떤 날은 아파트로 이사 가자고도 했어요” 우민이 엄마 경희(44) 씨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제가 알기론 우민이 반에서 우민이만 시골 마을에 살고, 다른 애들은 전부 학교 근처 아파트에 살아요. 많은 친구들이랑 어울려 지내는 건 중요한 일이지만, 우민이 혼자만 환경이 다르니까 그게 걱정이죠” _ 경희 씨

“폐교하고 1년 만에 우려했던 점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어요. 무엇보다 학교를 없애지 않았다면 학생 과밀은 어느 정도 해결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대구에 작은 학교가 많은데,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학교를 없앤다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까 걱정이에요” _ 수옥 씨

수옥 씨 말처럼 우려했던 문제점이 조금씩 드러나고, 알게 모르게 아이들은 변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청은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학교 통폐합을 주도했던 대구교육청 관련 부서 간부는 학부모 걱정이 기우라고 생각한다. 그는 어려서 한 학년이 1학급인 학교도, 6학급인 학교도 다녀봤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이른바 ‘내가 해봤는데’ 화법은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저희 애들을 큰 학교에 보내는데요. (학교가 커져서 걱정하는 건) 정말 학부형들 생각일 수 있어요. 애들은 친구가 많은 게 좋지 않겠어요? 학급수가 많으면 교사도 많아서 업무 부담이 적고 그만큼 애들한테 관심도 많이 가질 수 있어요”

▲학생도, 건물도, 늘어나고 커졌다. 운동장만 ⅓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학교 앞과 뒤, 좌, 우로 20층짜리 고층 아파트가 늘어섰다. 학교 넘어로 고층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지난해 8월, 아직 건립이 마무리되지 않은 유가초 모습. 학교 바로 뒤로 고층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지난 9월 8일, 낮 12시 수옥 씨와 함께 옮겨간 유가초를 찾았을 때 학교 건물 안에선 재잘거리는 아이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점심시간은 3타임으로 쪼개져 운영됐다. 정원을 넘어선 학생을 급식실은 한 번에 수용하지 못했다.

2층짜리 아담했던 학교는 5층까지 자랐다. 학생도, 건물도, 늘어나고 커졌다. 운동장만 ⅓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운동장이 작아서 불만이라는 수옥씨네 큰아들 이야기가 생각났다. 운동장은 축구 골대 하나 없이 휑했다. 학교 앞과 뒤, 좌, 우로 20층짜리 고층 아파트가 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