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도 변한다] ④ “국민소환제 필요한 대구 국회의원 너무 많아요”

세월호 참사 이후 스티커 만들고 나눠주기 시작
‘가짜 언론’ 때문에 4개월 만에 활동 접어
언론 대신 유튜브 통해 사회 문제 공부

14:59

[편집자 주] 2016년 11월부터 지난 3월까지 대구에서 17차례 전 대통령 박근혜 탄핵 촉구 촛불집회가 열렸다. 연인원 21만 명이 집회에 참여했다. 하지만, 두 달 뒤 대구는 다시 ‘역적’의 도시가 됐다. 탄핵 국면에도 불구하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가장 많은 득표를 했기 때문이다. 손가락질이 빗발쳤다. 요지는 변할 줄 모른다는 거였다. 그러나 대구도 변하고 있다. 다만 속도가 느릴 뿐이다. <뉴스민>은 탄핵 정국을 지나오면서 변화를 맞은 대구 시민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얼마나 진행될지 알 수 없다. ‘이 사람이 딱 인터뷰 대상이다’ 싶은 독자들의 제보도 받는다.

상자를 가득 실은 손수레가 광화문 광장을 수차례 오갔다. 손수레에서 내려진 상자 안에는 각양각색 스티커가 채워졌다. 노란나비 십여 마리가 새겨진 손수건도 상자 안을 메웠다. 차량용 스티커만 10만 장, 손수건까지 합하면 20만 장. 11월, 겨울바람을 막아내려 입은 붉은 점퍼는 수차례 손수레를 끌면서 가슴팍까지 지퍼가 내려갔다. 내려진 지퍼 손잡이 옆으로 노란 리본과 태극기 배지가 나란히 달렸다.

5차 박근혜 하야 촉구 촛불 집회를 하루 앞둔 지난해 11월 25일, 박재현(49, 사진) 씨는 사비를 털어 제작한 스티커와 손수건을 들고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법조비리, 해외자원비리, 4대강 비리, 방산비리, 철저한 재조사 및 강력한 처벌”, “국민의 힘으로 전기 누전제 없애자!”,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철저한 재조사”, “박근혜 대통령 하야하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갖은 병폐에 대한 그의 관심이 종류별로 준비된 스티커에서 드러났다.

재현 씨는 평생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경첩 제작이 본업이다. 2014년 4월 16일은 토박이 대구 시민 재현 씨에게도 충격적인 날이었다. 이날 이후 그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사비로 스티커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제작한 스티커는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활동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4개월 남짓. 언론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보도했다. 유가족을 음해했고, 참사를 정쟁화시켰다.

“개인적으로 제가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부정부패에 대한 분노가 컸는데, 가짜 언론들이 세월호를 다루는 걸 보고 저도 길을 잃었어요. 그때는 보수-진보 언론 문제가 아니라 모든 언론이 그랬잖아요. 보통 시민인 저 같은 사람은 언론을 통해서 사건을 접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어서 활동을 그만뒀죠···. 지금도 이야기하는데 (세월호 참사는) 언론도 다 공범이라고 생각해요”

일상으로 돌아왔다. 생업을 이어가면서 틈틈이 유튜브를 통해 사회 문제를 공부했다. ‘가짜’언론 대신 유튜브에서 ‘진실’을 본 셈이다. “유튜브는 조금 더 깊은 내용이 나온다고 해야 할까, 과거 역사에 대한 정보도 접하게 됐고, 많이 잘못됐다는 걸 느끼게 된 거죠” 그러던 중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수십만 명이 광장으로 몰려나와 촛불을 들었다. 재현 씨 마음속 촛불에도 불이 붙었다. 11월 25일 시민들에게 나눠준 스티커와 손수건은 활동 재개를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스티커 만들고 나눠주기 시작
‘가짜 언론’ 때문에 4개월 만에 활동 접어
언론 대신 유튜브 통해 사회 문제 공부

3월 10일, 역사적인 대통령 탄핵이 결정됐다. 수많던 사람들이 시나브로 광장을 떠났다. 찬 바람에도 버티던 촛불이 잦아들었지만, 재현 씨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재현 씨는 부패한 대통령 한 명 몰아낸 것으로 우리 사회 부정부패가 일소된다고 생각지 않았다. 약 한 달 동안 활동을 쉬면서 다음 활동을 모색했다. 그렇게 ‘국민소환제’를 알게 됐다. 국회의원의 부정부패를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죄를 지으면 대통령도 쫓아낼 수 있는데 국회의원은 안 되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자기들이 법을 만드니까 그런거예요. 그래서 국민 힘으로 만들어야 하는 거예요”

▲박재현 씨가 대구 2.28운동기념공원 앞에서 국민소환제 제정을 위한 시민 서명 운동을 하고 있다.

국민소환은 선출직 공직자가 위법하거나 부당한 행위를 하면 국민이 투표로 해당 공직자를 해임할 수 있는 제도다. 대통령도, 지자체장이나 지방의원도 탄핵이나 주민소환제를 통해 해임할 수 있지만, 국회의원은 해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

17대 국회부터 지난 19대 국회까지 국회의원 국민소환법이 발의됐지만, 매번 소관 상임위도 통과 못 하고 폐기됐다. 20대 국회는 좀 더 관심을 보이긴 한다. 현재까지 관련 법 3건이 발의됐다.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 등 11명이 가장 먼저 발의했고, 지난 2월 3일 바른정당 황영철 의원 등 33명도 발의했다. 김병욱, 황영철 의원 발의안은 소환할 수 없는 기간(김병욱 : 임기 시작 후 6개월·끝 6개월 전 / 황영철 : 임기 시작 후 6개월·끝 1년 전) 등 일부 차이가 있지만 큰 틀에선 유사하다. 두 발의안과 큰 차이를 보이는 법안은 2월 13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등 18명이 발의한 법안이다.

앞선 두 법안은 해당 지역구 유권자에 한해서 지역 국회의원을 소환할 수 있도록 했지만, 박 의원 발의안은 누구나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소환할 수 있다. 또 두 법안은 전체 유권자 15% 서명을 받아야 소환 투표가 가능하지만, 박 의원 발의안은 이전 총선거 투표율의 15%에 해당하는 유권자 서명을 받으면 소환 투표가 가능하다. 이렇게 하면 소환 투표를 위한 서명인수가 현격하게 줄어든다.

재현 씨는 매주 수요일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대구 2.28운동기념공원 앞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국민소환제 제정을 위한 시민 서명을 받고 있다. 당연히 스티커도 제작했다. 푸른 바탕 위에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지지합니다”고 적힌 스티커를 서명대 위에 쌓아두고 나눠준다. 주말이면 서울 광화문이나 국회 앞도 찾는다. 모두 사비를 들여 하는 일이다. 오십 평생 대구에서 살아온 재현 씨가 활동에 열성인 이유는 두 가지다. 바로, 자성과 희망.

“대구엔 국민소환이 필요한 국회의원이 너무 많잖아요. 어떻게 보면 사죄를 해야 하는 거죠. 대구에 그런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도 해야 하구요. 그런 차원에서 열심히 하는 것도 있지만, 더 큰 건 지금은 국민들이 노력하면 바꿀 기회가 있잖아요. 예전엔 바꾸려고 하면 희생만 당했는데, 지금은 과도기이긴 해도 노력하면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까, 이젠 해볼 만 하다는 마음도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