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비스 투쟁 무엇을 남겼나

[열사 투쟁으로 얻은 노조 깃발] (5)연재 마치며

21:12

흔히들 ‘노조 결성과 노동권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집단적으로 단련된다’고 말한다. 아마도 노동자와 자본 간의 대립을 확인하고 집단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민주, 사회적 의식이 높아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 ‘민주노조에 대한 탄압과 많은 사건사고에도 노조 조직을 지키고 이끄는 원동력은 노조 내 민주주의에 있다’고들 한다.

지난 해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삼성서비스지회) 조직과 투쟁, 블라인드 교섭의 결과는 이 같은 노동자들의 의식 확대와 노조 조직력 강화로 귀결됐을까? ‘노조 깃발을 삼성에 꽂았다’는 블라인드 교섭 결과는 삼성서비스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 출처 : 정운 현장기자/ 미디어충청 자료사진 ]
[ 출처 : 정운 현장기자/ 미디어충청 자료사진 ]

‘삼성’은 노동조합도 다르다?

비정규 사업장 교섭에서 ‘원청 사용자성’과 ‘교섭 책임’은 늘 핵심 쟁점이었다. 하지만 지난 해 삼성서비스 교섭에서 ‘원청 사용자성’은 블라인드 교섭 뒤로 숨어버렸다. 원청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라는데, 원청인 듯 원청 아닌 상대와의 교섭이 한마디로 1대1 블라인드 교섭이었다. 그 결과 원청은 ‘책임’에 대해 모르쇠이고, 하청인 서비스센터만 남았다.

‘삼성’이라 자본뿐 아니라 교섭도, 노조 운영도 다른 건 삼성서비스지회 내부 소통과 의사결정에서 나타났다. 최근 충남 천안센터 노조탄압으로 음독을 시도했던 정우형 씨와 관련, ‘책임자 처벌과 사과’를 요구하는 정씨의 투쟁에 동의를 표한 조합원과 정씨 등 8명을 SNS(밴드)에서 강제퇴장(강퇴)시킨 일이 7월 20일 발생했다. 이 밴드엔 삼성서비스지회 전 조합원 및 삼성서비스 투쟁에 연대하는 이들이 가입해있다.

라두식 삼성서비스지회장 직무대행은 7월 23일 밴드에 “현장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에게 더 이상의 상처가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결단을 내려야한다고 판단하여 조직의 수장으로서 살을 배는 아픔으로 밴드 강퇴라는 조직적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어 조합원에게 “이번 일로 인해 정우형 조합원 당사자에게 일체의 감정적 대응을 자제해주시고 공조직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고 두 열사에 대한 약속을 지키면서 걸어가자”고 했다.

강퇴 당한 이들은 7월 27일 공동명의로 “우리가 밴드에서 했던 것은 간단하다. 취업규칙 개악에 맞서 음독까지 시도한 정씨가 투쟁하는 것을 지지하고 알리기 위해 사진과 메시지, 투쟁 상황 정리 문서를 올렸다. 투쟁을 알리는 것까지 막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면서 ‘지회 집행부의 사과’와 ‘밴드 활동 보장’을 요구했다. 이들은 “사측도 아닌 노조에서 나를 버린 것 같다”는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통신발달에 따라 자연스럽게 의사 소통공간으로 자리 잡은 밴드에서 집행부에 반하는 의견을 표명한 조합원을 강퇴시킨 행위를 뭐라 해야 할까? 삼성서비스지회 ‘밴드 운영규정’이란 게 없으니 규정위반은 아닐 테고 ‘조직의 결정사항(교섭합의안 찬성결과)에 반하는 행위자이기에 어쩔 수 없는 조치’였을까? ‘조직적 강퇴 조치’는 의사소통과 표현의 자유라는 노조 내부 민주주의 원칙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게시판 글 수정과 삭제, 이동조차 제한하는 ‘민주적 운영 목적’의 금속노조 정보통신사업 운영규정을 준용한다면 정면 배치되는 행위다.

삼성서비스지회가 이런 남다른 운영행태를 보인 적이 또 있다. 금속노조 규약과 지회 규칙은 선출직 간부는 선출기관에 의해서 탄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직선 지회장을 대의원대회에서 탄핵했다. 지난 1월 대의원대회에서는 위영일 지회장에 대해 ‘직무 무능력과 불이행, 유기’로 탄핵소추안을 발의, 승인하고 총회 개최 전까지 지회장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현재까지 탄핵 내용은 불분명하다.

이와 관련 금속노조는 공문을 통해 절차상 ‘지회규칙 위반’이며, “위영일 지회장 탄핵소추 발의는 소멸됐기 때문에 직무정지 결정은 합당하지 않다”고 뒤늦게 밝혔다. 결국 이 문제는 지회장의 자진사퇴로 마무리됐지만 규약 따위는 종잇조각 취급한 지회 대의원대회와 금속노조의 늦장 지도라는 묘한 태도가 빚었다는 인상을 준다.

조합원과 금속노조의 거리

삼성서비스지회 블라인드 교섭 이후 드러나는 노조 내 민주주의 문제나 내부갈등이 직접 원인은 아니겠지만 노조 조직률은 지난 해 기준협약 체결 이전보다 떨어졌다. 삼성서비스 충남지역 센터 가운데 조합원 절반이 금속노조를 탈퇴한 곳도 있다. 남은 조합원들은 취재 과정에서 “노조 탈퇴자가 많아 전국 조합원 수가 30%가량 줄어든 것으로 알고 있다”, “1천여 명에서 800백여 명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SNS을 통해 간단한 노조활동을 홍보했는데 노조탈퇴자가 꽤 있고 누구인지 몰라 이들에게도 홍보메시지를 보낸 난감한 일이 있었다”고 전하는 민주노총 간부도 있다.

이런 고민은 금속노조 자료에서도 확인됐다. “기준협약 체결 이후 장장 5개월 이상을 후속교섭으로 조직내적인 피로도가 높아지고 지역별로 차이가 발생되는 문제가 있다. 또한 임금 및 단체협약에 대한 노사 간 해석의 차이를 보임으로써 임금하락의 문제도 발생되면서 소위 ‘노조효과’도 약해진다. 더불어 업체폐업으로 인해 고용불안이라는 위협요소도 계속 상존해왔다. 2014년 임단협 이후에도 생활고와 노조의 불안정성 등으로 인해 노조 탈퇴자가 발생하거나 조합원 자격은 유지하고 이직하는 경우도 발생했다”고 적고 있다.

삼성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은 지난 해 기준협약 체결 과정과 지회의 현실을 어떻게 진단할까? 한 조합원은 노조 조직력 약화 원인에 대해 사측의 각종 노조탄압과 생활고를 들었다. 그는 “삼성 사측이 비조합원과 차별해 조합원에게 물량을 주지 않고 생활고로 압박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월급이 적고 생활이 어려워 떠나는 동료들이 있다”고 전했다.

반면 다른 조합원은 지난 해 체결된 임단협 합의 내용을 문제 삼으며 “상대적으로 근속년수가 높거나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임금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합원도 “사측의 탄압과 동시에 우리가 원하지 않는 협정근로 등이 임단협에 포함되고 임금이 하락해 노조를 떠난 동료들이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 해 염호석 열사 투쟁 때 열심히 싸웠고 금속노조가 적극 지원했지만 현재 투쟁과 교섭에서 조합원이 주체가 됐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고, 조직 내 정보를 소수가 공유하고, 비판하면 밴드에서 내쫓는 이상한 조직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블라인드 교섭에 대해선 “사실 조합원들은 내밀한 교섭과 투쟁방식까진 잘 몰랐고 지금도 그렇다. 노조활동 10년 한 것도 아니고 우리가 이를 잘 알 순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민주노조운동진영, 금속노조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남겼나?

금속노조는 올 초에 제출한 ‘삼성서비스 염호석 열사 투쟁 및 2014년 임단협 투쟁 평가’에서 “기준단체협약 사수 투쟁을 통해 지회 조직력 확대, 임금과 고용안정 투쟁 등을 통해 단체협약 개정 투쟁의 발판 만들기, 민주적인 교섭구조와 현장과 소통하는 주체적 교섭관행 정착”을 이후 투쟁방향으로 정했다. 또, “무엇보다 간접고용을 깨는 두터운 투쟁을 벌여야 삼성서비스지회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목표와 투쟁, 평가 사이에 ‘금속노조 스스로 삼성 원청이 드러나지 않도록 배려해준 것에 대한 자기비판이나 책임’은 없어 보인다. 또, 투쟁의 주체라는 조합원이 과정에서 결과까지 소외된 것에 대한 반성도 보이지 않는다. ‘간접고용을 깨는 두터운 투쟁을 벌여야 지회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서도 ‘블라인드 교섭이 간접고용을 깨는 투쟁으로 배치되었던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은 없다. 평가서만 놓고 보면 블라인드 교섭이 이해되거나 당시 금속노조의 고민을 알만한 단초는 없다. 그저 당위와 현실 나열만 있을 뿐 솔직함도, 금속노조다운 책임도 없다. 이런 면에서 한지원 씨가 블라인드 교섭 당시 사회진보연대 내부 카톡방에 “삼성서비스지회, 간접고용 철폐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며 “정규직 열망 자체가 운동의 모티브인 현대차사내하청과 정규직 열망보다는 도급업체 내 불법행위와 원하청 간의 불공정 관계에서 파생하는 임금저하가 모티브인 삼성전자서비스가 같을 수 없다”고 밝힌 것은 차라리 솔직하다. 솔직함은 블라인드 교섭을 비판하는 미디어충청의 기사에 대한 그의 행동을 이해라도 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비정규, 불법파견 사업장이라고 규정했지만 이 문제가 부각되지 않은 삼성서비스지회 교섭과 투쟁, 노조탄압에 맞선 현장의 저항에 금속노조와 민주노조운동진영이 함께하며 놓친 것은 무엇일까? 현재진행형인 ‘삼성에서 노조 만들기’와 도급으로 위장된 비정규 사업장 문제를 푸는 힘을 모으기 위해 삼성서비스지회 투쟁평가가 좀 더 공개적이고 대중적으로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기사제휴=미디어충청 / 정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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