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준의 육아父담] 기침·콧물과 함께 가을이 왔다

행복하자 우리, 제발 아프지 말고

13:38

아이들의 기침, 콧물과 함께 가을이 다가왔다. 주말 바깥나들이를 해서일까? 딸아이가 목이 아프다고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목에 손수건을 감아 달라 하고, 몸이 뜨거운 것 같다며 체온계를 귀에 대보기도 한다. 그야말로 자가진단이다. 내심 열이 나길 바라는 눈치지만 어쩌랴. 정확히 36.5도다. 아프면 관심받는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아픈 티를 더 내고 싶어 하는 우리 딸. 바람대로 밤이 되자 자는 내내 기침이 더 심해지고 코가 막혀 숨쉬기가 힘들어 보인다.

그렇게 찾아간 월요일 소아과, 예상대로 모니터에 빼곡한 대기자 이름에 빈칸이 없다. 갓난아이부터 제법 큰 아이까지 온 동네 아이들이 병원에 다 모인 것 같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러 온 아이와 엄마도 보인다. 잔소리가 제법 있는 여자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았다. 둘째 녀석 중이염 때문에 몇 번 혼난 적이 있는지라 조금 긴장된다.

“아버지. 애가 나아지질 않아요. 약 제대로 먹이고 있어요? 아침밥은요? 밥 먹이고 약 먹여서 어린이집 보내셔야죠. 집에서도 약 제대로 안 먹이는데 어린이집에서 제때 먹이겠어요? 그러니까 애가 낫질 않잖아요.” 뭐 대충 이런 식이었다. 이후 병원에 갈 때마다 혼날까 봐 괜히 주눅이 든다. 예상대로 코도 있고 목도 빨갛고 감기다. 처방을 받아 약을 타고, 늘 하던 코스대로 장난감인지 비타민인지 모를 과대포장 캐릭터 비타민도 손에 쥐고 집으로 왔다. 동생한테 옮기면 안 되니까 컵도 따로 쓰고 조심하라는 신신당부를 하면서 말이다.

이 정도는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하던 시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첫째 아이는 두 돌이 되기 전까지 폐렴으로 세 번을 입원했다. 유난히 호흡기가 약했던 딸은 감기를 앓으면 폐렴이 왔고 툭하면 입원하기 일쑤였다. 한 번은 식은땀을 흘리며 축 늘어져 있는 아이를 들쳐 매고 병원으로 가는데 그 아침 지척의 병원 가는 길은 왜 그리도 멀고, 대기시간은 왜 그리도 길게 느껴지는지. 주삿바늘을 꽂아도 아무런 미동도 없이 손가락도 까딱 못하는 아이를 보며 두렵고 무섭고, 다 내 탓이다 싶어 자책하며 ‘미안해’, ‘사랑해’를 수없이 반복하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소아과 병동에서 지내기는 보통일은 아니다. 링거 주삿바늘을 꼽을라치면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르며 울어대고, 링거를 달고 천방지축 날뛰는 바람에 꼬인 링거 줄을 풀어가며 거치대를 잡은 채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검사한다며 뽑는 피는 왜 그리 많이 뽑나 싶고, 혈관을 못 찾아 링거 주사바늘을 몇 번이고 다시 찌를 때면 욕이 절로 나온다. 밤새 이 아이가 울면 저 아이가 따라 울고, 저 아이가 그치면 또 다른 아이가 울고, 온통 울음바다 난리통에 밤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는 건 물론이다.

많은 보호자가 엄마 혹은 할머니 여자사람인데 아빠인 남자사람이 다인실을 같이 쓰는 것도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부담스러워도 1인실을 찾아보지만 예약 순서대로 들어갈 수 있는 1인실은 항상 자리가 없다. 1인실 환자가 퇴원하기를 손꼽아 기다릴 뿐. 그래도 몇 번을 입원하니 병원생활도 익숙해지고 의사 선생님이 전담 주치의처럼 느껴졌다. 또 왔냐며 기억하는 간호사 선생님에게 부탁도 척척할 수 있을 만큼 친해지기도 했다. 어린이날을 병원에서 보내며 병원에서 준비한 이벤트를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기도 하고 말이다.

계속해서 호홉기 질환이 끊이지 않아 호홉치료기도 사고, 침대 매트리스도 소독했다. 이불도 자주 털고 청소도 더 깔끔하게 하게 됐다. 그러는 동안 아이는 이제 웬만한 병은 털어버릴 정도로 훌쩍 컸다. 그동안 아이도 엄마아빠도 참 고생을 많이 했다. 첫째 녀석이 고생을 너무 해서일까? 둘째는 입원 한 번 안 하고 크게 아픈 곳 없이 지금까지 잘 커 줬다. 오히려 이제 너무 무뎌져서 칼같이 맞추던 예방접종도 건너뛰고 검사도 무시하기 일쑤인데 말이다. 다만 첫째의 호홉기 질환처럼 감기와 따라오는 중이염이 항상 걱정이다. 이놈의 중이염은 왜 이리 잘 낫지도 않는지… ‘귀가 아파’ 한 마디에 긴장백배다.

동네마다 수많은 소아과가 있다. 요즘 세상은 아이가 조금만 아파도 자연스레 병원을 찾게 된다. 뭐가 크게 다를까 싶지만, 병원을 선택하는 기준은 집집마다 각자 다르고 은근히 까다롭다. 약을 좀 세게 써서라도 빨리 낳게 해주는 병원을 찾는 집이 있지만, 항생제와 약을 많이 쓰는 병원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 논란이 있는 ‘안아키’처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예 약을 안 쓰고 키우고 싶은 부모도 있을 것이다. 결국 어떤 병원을 선택하고 방법을 찾는 것은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고 싶은 부모의 선택이자 노력이다. 그리고 막중한 책임이다.

내 선택의 기준은 ‘관심’이다. 기왕이면 청진기도 여기저기 오래 대봐주고, 이곳저곳 아픈지 살펴봐주고, 아이가 계속 아픈 곳은 집에서 이렇게 해보라며 조언도 해주는 병원과 선생님에게 믿음이 간다.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것도 부모의 ‘관심’이 기본이다. 날씨에 맞게 옷을 잘 입히는 것부터 잘 씻기고 잘 닦이는 것, 잘 먹이고 잘 재우는 것, 주변을 잘 치우고 청결함을 유지하는 것,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물린 곳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 이 모든 작은 관심이 쌓여서 큰 문제없이 무탈하게 키우는 게 아닐까 싶다.

오늘 또 딸아이 병원을 가니 많이 좋아져서 이번 약까지만 먹고 괜찮으면 안 와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둘째 녀석이 콧물을 줄줄 흘리고 있다.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지금부터 겨울 내내 소아과 뺑뺑이 신세가 될 것이 분명하다. 빼곡한 모니터 한구석에 이름을 올린 채 한참을 대기하면서 말이다. 뭐니뭐니해도 건강이 최고임은 틀림없다. 앞으로도 행복하자 우리, 제발 아프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