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펜을 든 살인자요” 목숨 끊은 한국패션센터 직원, ‘언론 갑질’ 의혹

31일 오전 한국패션센터 지하 1층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
노조, "악의적인 언론보도....진상 규명해야"
노조, 유족 진상규명 전까지 장례 무기한 연기
한국패션센터 1층 로비에 분향소 설치

15:46

한국패션센터에서 대관을 담당하던 직원이 악의적인 언론 보도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노조와 유족들은 장례를 무기한 연기하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패션센터 1층 로비에 마련된 손 씨의 분향소.

10월 31일 12시께 대구시 북구 산격동 한국패션센터 지하 1층 주차장에서 손 모(57) 씨가 본인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손 씨는 한국패션산업연구원 기획경영실 소속 책임행정원으로, 연구원이 대구시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한국패션센터에서 지난 17년 동안 건물 대관 업무를 해왔다.

대구 북부경찰서는 CCTV(폐쇄회로 영상)에 손 씨가 직접 번개탄, 페인트통 등을 들고 차량으로 들어간 것을 미루어 보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고 보고 사망 원인 등을 수사 중이다.

전국공공연구노조 한국패션산업연구원지부는 A 인터넷언론의 악의적인 보도로 손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손 씨가 31일 새벽 2시께 해당 보도를 한 B 기자에게 직접 보낸 문자메세지를 공개했다.

이 문자에는 “당신이 쓴 글에 대해 책임질 것을 바랍니다. 당신은 펜을 든 살인자요”라는 내용이 담겼다.

▲10월 31일 손 모 씨가 목숨을 끊기 전 A 인터넷신문 B 기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사진=공공연구노조 제공]

B 기자는 지난 달 16, 30일 두 차례에 걸쳐 한국패션센터 대관 업무에 관한 기사를 보도했다. 손 씨가 10여 년 동안 대관 업무를 담당하면서 갑질을 했다는 게 주 내용이다. 기사에 따르면 손 씨가 임의대로 대관 예약을 받고, 대관하려는 업체로부터 사례도 받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한국패션산업연구원과 노조는 기사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며 악의적인 보도가 손 씨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입을 모았다. 김창규 기획경영실장은 “이미 대관 예약이 되어 있는데, 네이버에 C 업체가 같은 날짜에 행사를 한다고 광고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고인되신 분이 담당자이니 내리라고 한 것이 발단이 됐다”며 “B 기자님은 이것을 센터의 갑질이라고 봤고, 고인되신 분은 또 언론의 갑질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제 보도된 손 씨의 갑질 의혹에 대해 김 실장은 “평소에 우유부단하거나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되는 일을 안 되게 하고, 안 되는 일을 되게할 수 있는 분이 아니셨다”며 “본인도 저희에게 기사 내용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했지만, 회사에서도 같은 입장이다. 평소에 민원 발생 여지가 많은 부분이라 나름의 절차가 있다”고 말했다.

박경욱 노조 지부장도 “일상적으로 민원이 발생하는 부서라서 노조에서도 사건이 발생하기까지 특별한 거라고는 인식하지 못했다”며 “기사로 인한 압박도 압박이겠지만, 평소 강한 성격이신데 그런 결정을 하신 것은 스스로 투명성을 보이기 위한 행동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노조는 손 씨가 컴퓨터 바탕화면에 저장해 둔 A4 용지 3장 분량의 문서를 공개했다. 이 문서에는 지난 4월부터 C 업체와 대관 예약 상담을 나누던 과정과 업체에 대관이 안 된다고 통보한 이후, B 기자와 나눴던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이 문서에는 “B 기자가 전화가 와서 12월 행사 좀 도와줄 수 없냐고 하기에 12월은 도저히 안 됩니다 하니…”, “시장님에게 전화 하고, 10몇년 동안 성실히 근무한 것 박살낸다고 협박하고, 연구원 찾아온다고 하기에 그러시라고 하면서 전화 종료” 등 별다른 감정 표현없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언론 보도로 인한 자살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자 유족들은 2일 예정된 발인을 연기하고, 사측과 해당 언론사에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손 씨의 아들은 “아버지가 불명예스럽게 돌아가셨다. 기사 내용에 대해서 진상 규명을 해서,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으면 좋겠다. 그게 아버지가 원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손 씨의 아들은 “지난 일요일 저녁에 아버지랑 같이 저녁을 먹었다. 이번주에 큰 행사가 있어서 12시가 넘어 퇴근하셨다. 일이 피곤하니까 힘들다는 이야기는 하셨어도, 기사에 대한 얘기하지는 않으셨다”며 “답답하다. 회사에서도 그런 기사가 난 걸 알고 있었는데, 사실이 아닌 것에 대해 반박을 하거나 대책을 세웠는지. 아버지 혼자 다 안고 있었던 거다. 아무 얘기도 안 했으면 (회사가) 방관한 거고, 회사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물어보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뉴스민>은 사실 확인을 위해 B 기자에게 전화를 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았고 “해외에 있어 저녁 10시 이전에는 통화가 어렵다”는 답변을 문자로 받았다.

연구원과 노조는 한국패션센터 1층에 손 씨의 분향소를 마련하고,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장례를 마무리 하지 않을 계획이다. 노조는 유가족과 함께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