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준의 육아父담]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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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념해야하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할로윈데이로 온 동네가 떠들썩하다. 이런 유행에 절대 뒤쳐질 수 없는 유치원도 할로윈데이 행사를 한다고 한다. 준비물은 없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만일 뭔가 준비하라고 했다면 ‘이걸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대면서도 발걸음은 마트로 향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유치원을 다녀온 딸아이가 휴대폰을 달라더니 자기 방안으로 가서 문을 꼭 닫는다. 그리고 한참 지난 후에야 방에서 나온다.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18분짜리 영상이 하나 찍혀있다. “안녕~ 연수와 장난감 친구들의 연수에요. 오늘 할로윈데이 행사를 유치원에서 했거든요. 그래서 오늘 소공녀 머리띠도 했어요. 유치원에 갔더니 선물을 정말 많이 줬어요~” 초콜렛, 사탕, 카라멜 등을 하나하나 소개하면서 시식도 한다. 카메라 각도는 항상 자신을 향하도록 주의를 기울이며 ‘음~’, ‘쏭~’, ‘짜자잔~’과 같은 추임새와 배경음악까지 넣어가면서 말이다. 그렇게 다소 긴 영상의 끝은 “해피 할로윈을 잘 보내면 좋겠네요.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 주세요~”로 자연스럽게 마무리된다. ‘연수와 장난감 친구들’은 할로윈데이 특집방송을 촬영한 것이다.

비단 오늘 뿐만이 아니다. 커피집을 가도 “안녕~연수와 장난감 친구들의 연수에요. 오늘은 엄마아빠랑 같이 카페를 왔어요. 연수는 오늘 토마토 주스와 마카롱을 시켰어요. 한번 먹어볼게요. 음~ 정말 맛있어요.” 공원을 가도 “안녕~ 연수와 장난감 친구들의 연수에요. 오늘은 공원에 왔어요. 날씨가 산책하기 딱 좋아요.” 문구점을 가도 “오늘은 문구점에 왔어요. 무엇을 살까요? 예쁜 볼펜도 많고 색종이도 있어요~함께 찾아볼게요. 고고고~” 어디를 가든, 카메라가 돌아가나 안 돌아가나 개의치 않고 혼잣말이 아닌 혼잣말을 내내 중얼거린다.

그리고 마지막 멘트는 항상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주세요”로 끝낸다. 휴대폰과 태블릿PC에는 이런 영상이 수북이 쌓여 있다. 다만 ‘연수와 장난감 친구들’ 방송은 엄마아빠가 영상을 편집할 기술도 정성도 없고 업로드 할 용기도 없어 정말 ‘개인방송’에 그친다는 치명적인 한계가 존재할 뿐이다. 그러니 열심히 찍어도 방송을 시청해줄 시청자가 없다.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달라는 애타는 호소는 허공 속 메아리에 불과하다. 그래도 영향을 받은 이가 있긴 하다. 누나의 영향으로 둘째아이도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 중계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받는 캐리 [사진=캐리와 장난감 친구들 유튜브 방송 갈무리]

이게 다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로 전국의 어린이들을 들었다놨다한 캐리 때문이다. 장난감을 소개하면서 일인다역을 하며 장난감 놀이에 흠뻑 빠진 캐리. 참 잘도 논다. 다 큰 어른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약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심한 덕후 같기도 한데 이게 우습게 볼게 아니다. 캐리는 아이들의 우상이다.

아이들은 캐리가 갖고 노는 장난감이 갖고 싶고, 캐리 언니와 놀고 싶어 환호한다. 아마 나 어릴 적 뽀뽀뽀의 뽀미언니가 그랬을까? 아니다. 훨씬 더 대단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누구 할 것 없이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하는 방송, 아빠가 하는 방송, 아이가 하는 방송, 가족이 나와서 하는 방송들이 인터넷에 넘쳐나기 시작했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음식을 같이 만들기도 하고, 일상을 찍어 올리기도 한다. 애든 어른이든 아무거나 막 해도 누구나 ‘유튜브 스타’가 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유튜브 스타 캐리의 등장은 부모들을 고민에 빠뜨렸다. 이제는 만화 상영시간을 딱딱 맞춰 TV채널을 돌리는 시대가 아니다. 기다릴 필요가 없다. 마음만 먹으면 무제한 무한반복으로 다양한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시대다. 아이들은 중독수준으로 동영상을 찾기 시작했고 모든 중독이 그렇듯 한 번도 안 볼 수는 있어도, 한 번만 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틈만나면 캐리를 보여 달라고 아우성치고, 캐리가 갖고 노는 장난감을 사달라고 졸라댄다. 방송을 하고 흉내를 내고 장래희망직업으로 ‘유튜버’, ‘BJ’가 등장하기도 한다. 지금 인터넷 개인방송이 그러하듯 인기를 끌기 위해 앞으로 더 자극적, 폭력적으로 하지마란 법은 없다. 원래 나쁜 것은 빨리 배우는 법이니까.

시종일관 방송질(?)을 일삼는 딸아이를 나와 아내는 ‘관종(관심종자)’으로 진단했다. 눈치를 많이 보고 관계에 예민한 딸아이는 항상 관심에 목마르긴 하다. 하지만 과연 아이만 ‘관종’일까? 맛있는 것을 먹었으면 먹었다. 몸이 아프면 아프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시시콜콜 모두 SNS에 공유해야하는 나도 사실 ‘관종’일지 모른다. 사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호응해줄 ‘자랑꺼리’에 항상 목마르다. 엄마아빠들이 내세우고 싶은 최고의 자랑꺼리는 단연 자기 자식이다. 그리고 아이의 사진과 영상을 올리면서 행복을 느끼고 열띤 반응을 기대하기도 한다. 더 넓은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의 관심을 갈구하는 우리는 냉정하게 말해 모두 ‘관종’이다.

딱히 재주도 없는데 딸아이의 방송을 그냥 ‘개인방송’으로 남기려고 한다. 지금까지도 자식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사진과 영상을 벌써 많이 노출하진 않았나 싶다. 당사자 동의도 구하지 않고 말이다. 내 추억 속 사진앨범을 ‘전체공개’하고 싶지 않듯 아이들에게도 자신만이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 필요하지 않을까? 누구나 은밀한 부분은 필요한 법이니까. 또 철이 들고 부끄러운 흔적을 발견하고는 무단 공개한 나를 원망하면 어떡하나 싶기도 하다. 어차피 내 휴대전화에 아이들 사진과 영상으로 용량이 꽉 차있듯, 내 머리 속에도 아이들과 함께한 기억으로 꽉 차있다. 아이들의 커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구독하고 또 좋아해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