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국민이라고!” 포항 지진 진원지 마을 주민 한탄

마을 이장 중심으로 피해 규모 확인 작업
육안 안전진단으로 “생활해도 된다” 답 들은 주민,
“뒷짐 지고 눈으로 이래 보고, 생활해도 되겠습니다?”

19:14

“여보세요” 최영태(54) 용천1리 이장이 하던 일을 멈추고 휴대폰을 들었다. 휴대폰 너머로 어린 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어디야?” “아빠 바쁜데, 너 일단 흥해로 와라. 아빠 지금 마을회관에서 조사하고 있어서, 안 그러면 고모하고 통화해서 남산초등학교로 가” 딸과 통화를 마친 이장은 다시 연로한 주민들이 ‘자연재난 피해신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도왔다.

지난 15일 규모 5.4 포항 지진 진원지 포항 흥해읍 용천리는 1리, 2리로 나누어져 있다. 15일 지진 이후 용천1리는 이장을 중심으로 피해 확인과 수습에 힘을 모으고 있다. 포항시에서도 16일 이후 마을을 찾아 피해 정도를 파악해 가긴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피해 파악은 아무래도 마을을 잘 아는 이장이 주로 할 수밖에 없다. 최 이장은 20일 재난신고서 41장을 작성했다.

“제가 살기는 대성아파트 살 거든요. 우리 집 일 볼 시간도 없이 다니고 있습니다. 글 모르는 어르신들 건 대신 적어드려야 하고요” 흙으로 지은 집 담벼락이 뻐끔하게 구멍 나버린 오순주(88) 할머니 피해신고서를 작성하면서 이장은 말했다.

▲오순주 할머니(오른쪽)는 지난 15일 지진 이후 마을회관에서 줄곧 생활하고 있다.

오순주 할머니는 15일 지진 발생 후 20일 현재까지 마을회관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고 있다. 어젯밤(19일)까지 할머니를 포함해 3명이 마을회관 신세를 졌고, 이날 오전 다른 할머니는 대피소 중 한 곳인 흥해공고로 이동했다. “날도 추운데 내는 거기 못가”라며 오순주 할머니는 마을회관 가운데 자리를 잡고 누웠다. 수시로 할머니는 고개를 들고 좌우를 살폈다. “쪼매만 소리 나도 깜짝깜짝 놀래요. 노이로제 걸린다니까” 이장이 놀란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최 이장의 연락을 받은 주민들이 속속 마을회관으로 찾아왔다. 저마다 집 담벼락이 무너지거나, 균열이 났고, 집 본채도 일부 균열이 났다고 호소했다. “담벼락 무너지고 금 간 거는 다들 그래서 보상이 안 될거기고요. 다른 것도 보상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겠니더. 그래도 일단 적어보소” 이장이 말하자, 나이 지긋한 한 주민이 “나라에서 알아서 다 안 해주겠나” 말을 받았다.

▲용천2리 마을회관 앞에 건물 잔해물들이 쌓여 있다.

용천2리는 1리보다 피해 정도가 심했다. 마을 초입 마을회관 마당에는 지난 17일 군 병력과 자원봉사자들이 나른 건물 파손 잔해들이 수북하게 쌓였다. 오후 2시 50분께 용천2리 마을회관에는 포항 북구청 공무원들이 나와 있었다. “저희는 집에 못 들어가고 경로당에서 주무시는 분들 확인하러 왔습니다” “확인해서 가면 대책은 있나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일단 조사를 해서 가 봐야죠” 공무원은 마을회관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의 이름과 피해 정도를 파악한 후 다른 마을로 이동했다.

마을회관에서 생활하고 있는 최선악(86) 할머니는 기자를 보자 스스로 나서 마을 이곳저곳 피해 이웃을 소개했다. 할머니는 “이 집은 지진 나고 주인이 놀래서 병원에 실려가고 아무도 없어”라면서 빈 이웃집을 내 집처럼 마음 쓰며 챙겼다.

할머니와 함께 찾아간 윤정열 씨 부부네는 지난 17일 긴급안전진단 결과를 듣고 할 말을 잃었다. 윤 씨 부인 조(53) 씨는 두 눈으로 진단팀을 보고도 진단팀이 왔다고 생각지 못할 정도였다.

“여보, 왜 점검 한다드만 안 오노”
“좀 전에 온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라”
“뭐? 그 사람들이 아침에 읍사무소에 있던 사람이라고?”
“그래, 맞다”
“그냥 치우고 살라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가?”
“맞다니까”

▲윤정열 씨가 균열이 간 집을 바라보고 있다.
▲윤 씨의 집은 최대 폭 5cm 까지도 균열이 난 상태다.

윤 씨 부부의 붉은 벽돌집은 크게는 폭 5cm까지 군데군데 균열이 갔다. 가로, 세로 1~2m 너비로 벽돌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곳도 있고, 화장실은 천장이 내려앉았다. 집안에도 군데군데 내장재들이 뒤틀린 듯 벽지가 찢어졌다. 하지만 진단팀은 큰 문제 없이 생활할 수 있다고 말하곤 떠났다. 육안으로 점검한 결과였다.

“우리도 국민이라고, 국민이 안전하게 살 수 있게 기계로 점검하고 ‘들어와서 생활하면 되겠습니다’하면 저희도 안정이 되잖아. 뒷짐 지고 눈으로 이래(이렇게) 보고, 생활해도 되겠습니다 그러면! 개나 소도 그렇게 안 해요” 조 씨가 분노를 토해냈다.

여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균열이 크게 간 집을, 눈으로만 보고 안전하다는 결과를 낸 진단을 윤 씨 부부는 신뢰할 수 없었다. 규모 3.6 여진이 발생한 20일 오전에도 부부는 균열이 간 집 안에 있었다. 집 내부의 쇠붙이들이 부딪히며 우는 소리를 내자 윤 씨 부부는 허겁지겁 집 밖으로 벗어나기 바빴다.

지난 15일부터 18일 사이 포항시는 흥해읍, 환호동, 장성동, 대신동 등 10개 공동주택을 육안으로 안전진단을 한 후 사용 가능 판정을 내린 상태다. 정부는 학교 등 공공기관은 정부 차원에서 정밀안전진단을 진행하고 있지만, 개별 주택 정밀안전진단은 원칙적으로 개인들의 책임이라는 입장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원칙적으론 개인이 해야 하는 게 맞지만, 현재는 특수한 상황이어서 정부 차원에서 정밀진단 관련해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