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감염인 고령화 시대, 감염인도 요양병원이 필요하다

[인터뷰] 차명희 대구경북에이즈예방협회 상담팀장

12:30

[편집자 주] <뉴스민>은 HIV 감염인, 가난의 면역결핍사회 한국을 살다 보도 이후 차명희 대구경북에이즈예방협회 상담팀장을 만나 HIV 감염인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 변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빈곤한 가운데 HIV감염까지 더해 막다른 길로 내몰린 덕수 씨(가명) 소식을 듣고 지난달 31일 차명희 대구경북에이즈예방협회 상담팀장과 연락이 닿았다. 6분간 짧은 통화에서 덕수 씨와 춘희(가명) 씨 상황을 들었다. 덕수 씨가 입원했던 대학병원은 조만간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춘희 씨에게 알렸고, 명희 씨는 막막한 심정이었다. 비용은 둘째 치고, 덕수 씨를 받으려는 병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명희 씨는 요양병원 위주로 수소문해 봤지만, 도무지 입원을 허락하는 병원이 없었다. 당장은 다른 병원으로 옮겨 진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에이즈는 만성질환이기 때문에 임시방편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다. 장기적으로 입원해 관리받을 수 있는 요양병원이 필요했다. 명희 씨는 연락하는 요양병원마다 거절당했다고 한다. 어떤 요양병원은 스프링클러 공사 때문에 신규 입소자를 받을 수 없다는 말도 했다.

국내 HIV 감염인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1985년 2건, 1995년 114건, 2005년 734건, 2015년 1,152건, 2016년 1,199건이 신규 감염인으로 신고 됐다. 반면 치료법의 발달로 꾸준한 치료를 받는 감염인은 기대수명만큼 살 수 있게 되며, HIV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줄어들었다. 대구의 경우,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2012년 6명, 2013년 8명, 2014년 4명, 2015년 6명, 2016년 4명, 2017년 5명에 그쳤다. 즉, HIV는 만성 질병으로서,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고, 신규 감염인도 증가하는 추세 속에서 감염인을 돌볼 수 있는 병원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자료 출처=질병관리본부

현행법상 감염인은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 있다. 정부는 요양병원이 감염인 입원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2015년 12월 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했지만, 여전히 감염인에게 요양병원 입원은 바늘구멍이다. 국가의 에이즈 정책은 1985년 한국 첫 감염자가 나타난 이래, 시간이 지나며 감염인의 인권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바뀌었지만, 사회의 편견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요양병원협회가 2016년 3월 발표한 설문조사결과를 보면 요양병원 종사자는 일반인보다 더 높은 비율로 감염인의 요양병원 입원을 반대했다. (관련기사: 요양병원협회 “에이즈 환자 요양병원 입원 반대”)

명희 씨는 감염인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사회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거기에는 감염인 자신도 포함된다. 감염 사실을 알게 된 감염인이 삶을 포기하는 사례를 숱하게 봤다. 덕수 씨처럼, 그리고 약물치료를 거부했다가 뒤늦게 후회한 진환 씨처럼.

뉴스민(이하 뉴): 명희 씨와는 경황없이 연락이 닿았죠. 덕수 씨와 춘희 씨를 취재하다 들은 명희 씨 이야기도 인상 깊었습니다. 기사에 소개된 명희 씨 이야기는 잘 안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지만. 기사에는 좀 생략됐는데, 이번에는 명희 씨 얘기도 들어보고 싶어요.

▲차명희 씨

명희: 어릴 적 트라우마 이야기는 기사에서 나왔죠. 수녀원에서도 눈 때문에 차별도 있었고. 수련원을 나오면서 여성학에 관심이 갔어요. 상대적으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제2의 성으로 차별받고 힘드니까. 그러다가 성교육 강의에도 나섰고, 에이즈까지 접하게 됐어요. 알고 보니 HIV 감염인은 소수 중의 소수더라고요.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아웃팅(본인의 동의 없이 성 정체성 등을 폭로당하는 상황을 말한다) 공포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아요. 저희 센터에 오는 것도 무서워하죠. 감염인들을 만나다 보니 배경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덕수 씨와 춘희 씨처럼 ‘가난’이 배경인 경우도 있고, 부모나 가족이 배경이기도 하고, 성소수자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의 편견이 배경인 경우도, 폭력과 성폭력, 성매매가 배경인 경우도 있어요. 감염인에게 손가락질하며 저 사람이 문제야,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사실 가만히 보면 HIV에 감염될 수밖에 없었던 삶의 고난이 보이게 돼요.

: 손가락질이란 건, 이번에 언론이 ‘부산 에이즈 성매매녀’라는 식으로 보도한 것 말씀이시죠.

명희: 그렇죠. 언론은 그 여성 뒤에 있는 배경은 보지 않죠. 그 여성이 지적 장애인이었고, 성매매하도록 사주하는 나쁜 남성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대체로 빠지죠.

: 에이즈에 대해 한국은 사회 전반적으로 어떻게 인식한다고 보시나요?

명희: 한국에 감염인이 처음 나왔을 때 즈음, 정부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심을 알리면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공익광고에서 에이즈를 죽음과 연관 지은 공포스러운 메시지를 보냈죠.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 인식은 바뀌었어요. 감염인 인권도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제 곧 세계 에이즈의 날(12월 1일) 30주년인데, 사회적인 인식은 잘 안 바뀌어요. 제 일을 아는 사람은 간혹 대단한 일이라고, 어떻게 그런 일을 하느냐고 해요. 그럼 저는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가 대단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요. 그 칭찬은 에이즈에 대한 두려움이 투사된 말이라 씁쓸했어요. 감염인을 직접 만나는 걸 대단하다고 생각했나 봐요. 편견이죠. 이런 일도 있어요. ‘부산 에이즈’ 보도 이후 지방정부에서 전화가 왔어요. 별일 없는지, 그동안 무심했나 싶었다고 하는데, 혹시나 지역에서 문제가 생길까 봐 사전 관리 차원에서 연락하는 거죠.

: 사회적인 시선이 좋지 않으니까, 감염인도 감염 사실을 숨기게 되고, 때로는 덕수 씨처럼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생기는 거 같아요.

명희: 감염인도 성장 배경이나 학력, 성향, 조건이 모두 다른데, 감염 이후에는 ‘에이즈’라는 한 단어로 모여요. 감염인에게 쏟아지는 시선, 편견은 상상할 수 없을 거예요. 어떤 분은 전철을 타면 맞은 편에 앉은 여자가 자신을 쳐다보면 에이즈인 줄 알고 본다고 생각해서, 지하철을 타는 내내 좌불안석이에요. 곳곳에서 그런 시선을 의식하는데, 그분도 감염되기 전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가진 상태인 경우 더 심해요. 심지어는 ‘문란’, ‘처벌’이라든가 하는 생각 때문에 자승자박하는 경우도 많아요. 감염인이란 것이 트라우마가 된 경우이지요. 우울증과도 연결되고.

▲차명희 씨

그래서 상담이 중요해요.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하는 감염인 한 분이 있었는데, 상담을 마치고 그분한테 맞는 글이 있어 문자를 보냈어요. 그분은 많이 고마워했고, 계속 문자를 보내달라고 했어요. 한 사람이라도 그 옆에서 지지하고 연결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게 소중하다고 생각했어요. SNS로 매일 아침 출근 전에 메시지를 보내는 ‘1분 인문학’도 운영하게 되었어요. 세상에 자기와 연결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연결선이죠.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뿐만이 아니라, 자랑이나 기쁜 일을 들어줄 사람도 필요해요. 재능 많은 한 감염인 한 분이 있는데, 자랑할 곳이 저인 거예요. 그 자랑을 듣다 보니 저도 신나더라고요. 기쁠 때 말할 사람이 없는 것도 고통이더라고요. 그 삶을 함께 나누는 것이 중요하죠.

: 사회적으로 가장 우선 바뀌어야 할 문제는 어떤 게 있을까요?

명희: 이제 감염인도 기대수명만큼 살 수 있고, 그러면서 점점 고령화되고 있어요. 요양병원이 필요해요. 그런데 요양병원은 감염인 입원에 반대해요. 소문나면 누가 입원하려 하겠느냐는 거죠. 정부도, 지방정부도 에이즈에 대해 제대로 알려야 할 책임이 있어요. 지자체가 운영하는 요양병원에 지자체는 개입해야 해요. 사람들을 설득하고 변화시켜야죠.

급성기 병원은 오래 입원할 수 없어요. 덕수 씨 사례에서 알 수 있죠. 길어도 6개월을 못 넘겨요. 치료할 것은 없고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게 필요하니까, 이후에는 요양병원으로 옮겨야 하는데 안 되죠. 그래서 지금은 병원의 원장이나 의사 한 사람의 가치관과 호의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정부는 감염인에 대한 편견을 해소할 수 있도록 앞장서서 노력해야 해요. 요양병원이 공적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감염인이 차별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제 차별과 편견은 없애고 감염인도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이 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