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째 장례 못 치르는 패션연구원 노동자…‘업무상 재해’ 두고 노사협의 난항

12:24

한국패션산업연구원에서 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 인정 여부를 두고 노사 협의가 난항을 겪으며 장례가 미뤄지고 있다.

▲한국패션센터 1층 로비에 마련된 손 씨의 분향소.

‘한국패션산업연구원 노동자 사망 관련 진상규명대책위원회(대책위)’는 지난 23일 오전 11시 대구시 북구 산격동 한국패션센터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쿠키뉴스의 사과와 정정 보도 등으로 사건의 실체가 밝혀졌는데도 대구시, 한국패션사업연구원 이사회와 경영진은 사태 해결에 미온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경욱 대책위 집행위원장(공공연구노조 한국패션산업연구원지부장)은 “대구시는 연구원과 원만한 합의를 위해 조율을 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대책위 요구사항을 연구원에 전달했지만, 몇 차례 교섭에서 연구원 이사회와 경영진은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연구원의 과실 인정과 고인의 명예 회복 ▲유가족 위로 ▲관련자 인사조치 ▲노사 공동장례 등을 요구했다.

산업재해 인정을 위해서는 고인의 자살과 업무의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업무 중 사고로 인한 질병이나 부상, 사망 등은 업무상 인과관계가 비교적 명확하지만, 노동자가 스스로 자살했을 경우 유족, 사용자 측 등 관련자들이 밝히는 업무와 연관성이 산재 판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광오 공공연구노조 단체교섭국장은 “사측에서는 사용자의 판단에 의한 보상이나 공동 장례를 거부하고 있다. 업무상 재해에 대한 판단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한다”며 “그간 언론을 통해 사측이 분명히 업무 과정에서 협박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섭 자리에 들어가면 태도가 바뀐다”고 꼬집었다.

반면 김창규 한국패션산업연구원 기획경영실장은 “유족 측이 산재 신청을 하면 저희가 협조를 할 것이다. 사건 발생의 객관적 경위를 저희가 확인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라며 “업무상 재해다 아니다를 저희가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한국패션센터는 대구시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위탁해 운영을 맡긴 건물이다. 사망한 손 모(57) 씨는 한국패션연구원 소속으로 지난 17년 동안 한국패션센터 대관 업무를 해오다, 쿠키뉴스 A 기자에게 “당신은 펜을 든 살인자요”라는 문자를 남기고 지난달 31일 숨졌다.

유가족과 대책위는 손 씨가 A 기자와 대관 문제로 갈등을 빚던 중, 언론 보도, 기자의 자료 요구에 대한 대구시 또는 연구원의 압박 등으로 손 씨가 숨졌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검찰에 해당 기자를 고발하고, 고인의 명예 회복과 진상규명이 될 때까지 장례를 무기한 연기했다.

쿠키뉴스는 지난 15일 “(해당 기자가) 가까운 지인의 대관을 돕기 위한, 즉 순수하지 못한 동기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사과문을 게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