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권 없는 사람들의 ‘우리 편’인 언론이 되어주세요”

[뉴스민 후원회원을 만나다] (6) 후원회원 정지창 씨

20:22

당신이 생각하는 뉴스민의 존재 가치는 무엇입니까? 뉴스민은 어떤 언론입니까? 뉴스민 후원회원들께 물었습니다. 내년도 최저임금 7530원, 월급으로 환산하면 157만3770원. 급등한 최저임금을 감당하지 못한 뉴스민이 이대로 문을 닫을 수는 없다는 일념으로 대대적인 후원회원 모집에 나섰습니다. 뉴스민 후원회원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지속가능한 뉴스민을 만들고자 합니다. 뉴스민과 함께 따뜻한 연말 보내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뉴스민 정기 후원하기

[뉴스민 후원회원을 만나다] (6) 후원회원 정지창 씨

▲영남대학교에서. [사진=정용태 기자]

뉴스민이 만난 여섯 번째 후원회원은 정지창(70) 씨다. 정지창 씨는 2013년, 어떤 사건의 주인공으로 뉴스민의 취재 대상이 된 적 있다. 영남대학교 독어독문과 교수로 재직했던 정 씨는 2012년 대선 기간 중 ‘영남대 재단 정상화를 위한 범시민 대책위’ 공동대표로 활발히 활동했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영남학원 재단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대학을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이듬해 2월 정 씨는 29년 교수 생활을 마치며 정년퇴임했는데 학교 측은 정 씨의 활동을 문제 삼아 명예교수 심사에서 배제했다. 학교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게 이유였다. (관련기사=영남대, 박근혜 재단 복귀 반대 교수 명예교수 탈락시켜(‘13.5.3)) 뉴스민을 후원한 건 그러고 3년쯤 지난 2016년부터다. 지난 10월 24일 영남대에서 정 씨를 만나 이야길 나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우선 소개를 해주시겠어요?

아시지만 2013년까지 영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정년 퇴임을 했는데 학교에서 명예교수 배제를 해서 논란이 됐었죠. 2012년에 박근혜 씨가 대통령 후보로 나오면서 영남대를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활동을 했거든요. 영남대와 박근혜 씨가 어떤 인연이 있는진 잘 아실 테니까 길게 설명하진 않을게요. 어쨌든 그러면서 명예교수에서 배제됐고, 학교에선 그냥 한 1~2년 나와서 강의해달라곤 했는데 안 한다고 했어요. 주변에서 소청 신청을 해보라고도 권했는데 그것도 안 했어요. 싸울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명예교수 그게 별거 아니잖아요. 그런데 학교에서 그때 뭐라고 했냐면, ‘삼성 같으면 회사 방침에 어긋나는 사원을 어떻게 용납하겠느냐’고 그랬거든, 한심한 이야기 아니에요? 도대체 대학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그런 의식 없는 사람들과 싸우고 싶은 마음이 안 들었어요.

대학으로 오기 전엔 저도 잠깐 기자 생활을 했어요. 지금은 없어졌는데 합동통신사라고 있었어요. 거기서 외신부 기자를 하다가 사회부 기자로 끝마쳤죠. 리영희 선생이 거기 외신부장으로 계셨거든요. 그 양반 밑에서 일 배우고 싶어서 들어갔는데, 그분도 쫓겨간 뒤여서 직접 만나진 못했죠. 말년에 사회부 기자로 있을 때 10.26이 터졌어요. 김재규 장군 재판 취재를 했었죠. 모든 신문, 방송 기자들을 방청시킬 순 없으니까, 풀단이라고 하죠? 통신사 기자가 몇 명이 돌아가면서 교대로 들어갔어요. 녹음도 안 되고 사진도 못 찍으니까, 두 명이 들어가서 서로 메모해서 맞춰보고 원시적으로 그랬죠. 80년 2월에 그만뒀는데, 5월에 광주에서 그 일이 터지고 신군부에서 언론자유운동한 사람들 잡아 들일 때 막바지에 남영동(대공분실)에 잡혀가서 한 2주 경험했죠. 9월쯤이라 막바지여서 큰 고생은 안 했는데, 5월이나 7월에 잡혔으면 어떻게 됐을지 알 수가 없죠. 인간 운명이라는 게 참···.

▲영남대학교에서. [사진=정용태 기자]

뉴스민 후원은 어떻게 하시게 된 건가요?

한 1년쯤 됐는데, 뒤늦게 한 셈이죠. 진작 했어야 하는데 미안합니다. 작년에 사드 보도를 열심히 해주시는 걸 보고, 아 지역 언론이 있어야겠구나 싶어서 시작했어요. 그때 뭐, 중앙 언론들은 다 외면했잖아요? 그나마 뉴스민에서 열심히 해주시더라고. 난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사드가 지역 이야기지만, 전국적인 문제인데도, 진보 언론들에서도 잘 보도를 안 했어요. 열심히 안 하더라고. 잘못 된 거지.

그럼 인상 깊은 기사도 사드 관련 기사들이겠어요?

그렇죠. 사드 기사가 제일 기억에 남고, 특히 김수상 시인의 시가 기억에 남아요. ‘저 아가리에 평화를!’ 그 시 있죠? 그 상황에서 시가 안 어울릴 것 같은데, 또 어떤 점에서 상당히 효과적이었고, 작가회의 회원들도 많이들 봤어요. 그걸 구호처럼 하면 호소력이 없는데, 서정적으로 쉽게 하니까 많은 호소력을 갖고 읽힌 거야. 반응이 뜨겁더라고.

▲영남대학교에서. [사진=정용태 기자]

뉴스민이 채워야 할 부분은 어떤 거라고 보세요?

음, 지난 주말에 제가 충북 옥천에 갔는데, 거기에 옥천신문이라고 있잖아요? 오한흥이라고 옥천신문 사장을 만났어요. 이야길 들어보니까 상당히 놀랍더라고요. 기적적인 걸 해놨잖아요? 옥천 군민이 5만 정도인데 4천 부 넘게 발행을 한답니다. 옥천도 보수성은 대구경북 못지않잖아요? 국회의원도 자유한국당이고.

거긴 그런데 지역과 굉장히 밀착되어 있더라고, 온 힘을 기울여서 독자들한테 접근하고 자유총연맹이니, 해병전우회니 이런데 가서도 엉켜서 신문을 보게 만든 데요. 그런 능력이 있어야 해요. 대게 우린 진보적인 성향 가진 사람들한테만 접근해서 ‘봐주십시오’ 하는데, 그런 사람들도 인간적으로 만나고 그 사람들 애로사항도 들어주고 하는 거지.

그렇게 생활밀착형 기사를 많이 써야 해요, 뉴스민은 진보적인 기사를 많이 하고 있으니까 거기에 생활 밀착형 기사를 쓰면서 사람들을 만나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동네마다 숙원 사업들이 있거든. ‘이거 때문에 진짜 못 살겠다’ 이런 게 있어. 그럼 그걸 대변해주는 게 필요하죠. 그러면 우리 편이구나, 느낌을 받지 않겠어요? 지역에 파고들면 동네마다 그런 민원이 왜 없겠어요. 발언권이 없는 그 사람들 대변을 해줘야죠. 이번에 사드 때문에 성주 주민들은 뉴스민 다 알지 않겠어요? 우리 편이라는 게 중요해요. 여기 뭐 신문도 있고 방송도 있지만 ‘저놈들은 우리랑 관계없는 놈들이다’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우리 편이다’ 이게 중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