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룰 수 없는 인권, “지금 여기”…대구경북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출범

2018년 국회 입법 목표로 8일 25개 대구경북 시민사회단체로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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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8 15:47 | 최종 업데이트 2017-12-08 15:48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에 나선 배진교 씨는 최근 안타까운 일을 겪었다. 한 장애인과 그의 어머니가 서명하려고 다가왔는데, 어머니가 서명을 만류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진교 씨에게 따졌다.

“이거, 동성애 합법화하자는 법 아니에요? 차별금지법 되면 좋은데, 이건 성소수자 보호하자는 법이잖아요. 이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피해받잖아요”

한국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처음 시도된 2007년, 헌법의 평등 정신에 따라 차별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대상에서 ‘성적 지향’ 항목이 문제가 됐다. 종교계를 중심으로 반발이 나왔고 결국 법 제정은 무산됐다. 이후 수차례 더 제정 시도가 있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동안 무산됐다. ‘성적 지향’은 번번이 큰 논란을 샀다.

19대 대통령 선거 기간에도 진교 씨는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 대통령선거 방송토론회에 나온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동성애에 반대하느냐는 질문을 던진 것 때문이다. 어떻게 대통령 후보로 나선 사람이 성소수자 혐오를 불러일으키려는 것일까. 진교 씨는 아직 한국은 대통령 후보마저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쏟아낼 수 있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군 내 동성애 반대” 등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고, 차별금지법 제정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정부 100대 국정과제 선정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제외했다. 무지개인권연대 대표인 진교 씨는 성소수자에게 차별금지법 제정은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했다. 인권은 미루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필요했다.

“유능한 지도자는 사회적 합의가 없다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배진교 무지개인권연대 대표)

진교 씨는 2018년 차별금지법 입법을 목표로 대구경북 여러 단체와 함께 차별금지법 제정 호소에 나섰다. 무지개인권연대를 포함해, 대구경북지역 25개 정당·노조·시민사회단체는 8일 인권위원회 대구사무소 강당에서 ‘대구경북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구경북차별금지법제정연대 출범 기자회견에 참여한 배진교 씨(오른쪽)

이 자리에는 장애계·여성·이주노동자·청소년 등 다양한 단체에서 참여해 소수자의 인권 실태를 알렸다.

노금호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은 “장애인 차별금지법은 사실상 최초의 인권법이다. 긍정적인 의미는 장애인이 생활하며 답답했던 일들이 바로 차별이라는 것을 법이 알려줬다는 점”이라며 “하지만 제정 10년이 지나도 현실에서 피부로 와 닿지는 않는다. 법 제정 과정에서 장애인의 정의를 생물학적으로만 적용했고, 징벌적인 조항도 도입하지 않았다. 차별 현장을 확인해도 강제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차명희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 이사는 “에이즈 감염인은 유독 한국에서 매년 늘어나고 있다. 소위 ‘부산 에이즈녀’가 원인이 아니다. 원인은 차별과 편견이다. 에이즈는 더 이상 걸리면 죽는 병이 아니다. 감염인에게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장지은 대구북구여성회 대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혐오와 차별을 제도화하는 공포스러운 일을 저지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법 제정은 중요하다”라며 “여성은 오늘도 살아남았다는 말을 하고 산다. 인권은 나중이 없다. 지금 여기에 필요하다. 누구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라고 설명했다.

최선희 대구경북이주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은 “한국에서 이주민을 대하는 태도는 이중적이다. 백인은 친절하게, 유색인종은 무시한다”라며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강제노동을 금지하는데 고용허가제는 강제노동을 제도적으로 허용한다. 공장을 옮기려고 해도 사용자가 거부하면 이주노동자는 불법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진환 청소년교육문화공동체반딧불이 사무처장은 “청소년도 사회적 약자다. 학교 밖 청소년이 하루는 시외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청소년 할인을 받으려고 했더니 학생이 아니라고 안 됐다”라며 “여성, 성소수자 청소년은 더욱 심한 차별에 노출된다. 교육감을 선출할 권리도 없다. 인권문제는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을 의심하고 불만을 표현하면서 나아졌다”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그동안 시민사회의 지속적 요구와 국제인권기구의 권고에도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못했다”라며 “혐오세력의 눈치를 보며 법안을 철회하고 외면하는 정치인들은 소수자 인권을 협상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소수자의 이름으로 다시 쓸 것”이라며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차별금지법,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GOGO 차별금지법 대학캠퍼스 제정운동’, ‘찾아가는 차별금지법 제정 설명회’, ‘지방선거 후보자들에 대한 차별금지법 제정 대응 마련’ 등 선전·교육·조직 활동 등을 이어갈 계획이다. 9일에는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대회에도 평등버스를 타고 참여할 계획이다. 2018년 국회 입법을 목표로 상반기에는 법 제정을 위한 워크샵과 간담회도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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