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 회피’ 한국패션연구원, 숨진 노동자 장례 40일째 못 치러

교섭담당하던 연구원장 직무대행, 2주 병가 내면서 교섭 중단
유족, "원장 직무대행 병가내고, 사측 합의 안 해줘 답답해"
노조, "교섭책임자 위임하면 될 문제...연구원의 책임 미루기"

18:00

한국패션산업연구원과 대책위가 한국패션센터 대관 관련한 보도로 갈등을 빚다 “당신은 펜을 든 살인자”라는 문자를 기자에게 보낸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연구원 손 모(57) 씨에 대한 명예회복을 위한 교섭을 진행 중인 가운데 연구원 측이 교섭을 회피하고 있어 책임 미루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구원이 명예회복을 위한 교섭을 회피하는 사이 고인 사망 40일째 장례가 치러지지 못하고 있다.

▲한국패션센터 1층 로비에 마련된 손 씨의 분향소.

쿠키뉴스 측의 사과 이후 한국패션산업연구원 노사는 고인에 대한 명예회복 등을 두고 6일까지 7차례 교섭을 진행했다. 노조와 유족은 ‘고인에 대해 업무상 사망에 준하는 예우와 보상을 한다’고 요구했고, 연구원 측은 법률적 검토가 필요하다며 합의를 미뤘다.

연구원을 감독하는 권한을 가진 대구시도 원만한 합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진행하라는 권고를 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대구시가 책임을 질 수는 없지만 감독기관이니까 법적인 문제에 우려가 없다면, 가급적이면 돌아가신 분 입장에서 생각해주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이후 연구원이 의뢰한 법률 검토에 대해 ‘노사 합의로 결정한다고 해도 법적 하자가 없다’는 답변이 6일 나왔다. 유족과 노조는 법률 검토 이후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리라 기대했지만, 연구원 측 교섭담당자가 ‘몸이 아프다’고 자리를 떠나면서 교섭이 중단됐다. 연구원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김창규 기획경영실장은 7일부터 22일까지 병가를 내면서 예정됐던 교섭은 무기한 연기됐다.

교섭을 일방적으로 중단된 이유와 관련해 김창규 기획경영실장은 <뉴스민>과 통화에서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해있으니, 담당부서와 통화하라”고 말했고, 윤한영 경영팀장은 “실장님이 교섭에 직접 들어가서 자세히는 모른다. 위로금액의 차이인 것 같다. 정신적으로 부담이 많이 돼서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이해를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유족과 노조는 연구원 측이 고인의 명예회복에 대한 책임을 미루기 위한 태도에 분통을 터뜨렸다.

고인의 아들인 B 씨는 <뉴스민>과 통화에서 “답답하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담당자인 원장 직무대행이 입원해서 병가내고 가 버리고, 사측은 합의를 안 해주고 있다. 잘 끝났으면 좋겠는지 어떻게 될지 모르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박경욱 공공연구노조 한국패션연구원지부장은 “교섭에 나오지도 않다가, 집에 약 먹으러 다녀오겠다면서 연락이 두절됐다. 교섭담당자가 아프다면 위임을 하던가, 연구원이 대체할 수 있는 사람으로 교섭담당자를 선임하면 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박경욱 지부장은 “하루라도 빨리 명예회복을 하고 고인을 보내드리기 위해서 애초 요구했던 연구원 지휘계통의 책임자 문책 등은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원장 직무대행은 교섭을 회피하고, 연구원 이사회도 원장 직무대행 권한을 다른 이에게 넘길 수 있는지 법률검토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31일 한국패션센터 대관 업무를 담당하던 손 모 연구원은 쿠키뉴스 A 기자에게 “당신이 쓴 글에 대해 책임질 것을 바랍니다. 당신은 펜을 든 살인자요”라는 문자를 보낸 한국패션센터 지하 1층 주차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 기자가 손 씨에게 대관 청탁을 했다가 거절당하자 손 씨가 갑질을 하고 있다는 보도를 두 차례 했고, 대구시를 통해 대관 관련 자료 제출 등을 요구했다.

이후 유가족과 노조는 장례를 무기한 연기하고 언론과 대구시 등의 압박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9일 A 기자를 검찰에 고발했다. 11월 15일에는 쿠키뉴스 측이 “그러나 본지가 회사 차원에서 경위를 들여다본 바로는 가까운 지인의 대관을 돕기 위한, 즉 순수하지 못한 동기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고인과 유가족에게 사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