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성리’, 작가적 야심과 성실함이 빚은 “할매들의 민중사”

[기고]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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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1 15:05 | 최종 업데이트 2017-12-11 15:05

*들어가며

<소성리>는 ‘내가 낸데?!’하는 ‘선수’급 관객들의 기대를 즈려밟는 작품이다. 90분 좀 안 되는 상영시간 중에서 사드는 전체 분량의 거의 절반이 지났을 무렵 등장한다. 그동안 관객은 소성리 ‘할매’들이 농사짓고 소일하는 전원풍경을 지켜봐야 한다. 관객이 상상하고 기대하고 있을 ‘어떤’ 풍경들은 도무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다큐3일’을 보고 있는 건가?”

▲[사진=영화 ‘소성리’ 스틸사진’]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들 지경이다. ‘내’가 영화를 보는 눈이 낮아서 감독이 치밀하게 배치해둔 장치들을 못 찾고 있는 건가? 갸우뚱갸우뚱. 하지만 관객의 눈높이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소성리 마을의 자연스러운 풍경인 사드 반대 구호나 현수막도 영화 초반에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눈썰미 좋은 이들이 아니라면 찾기 힘든 배경으로 지나칠 뿐이다. 대체 감독은 무슨 생각으로 투쟁의 현장, 소성리에서 ‘전원일기’를 찍고 있는 것일까?

다큐멘터리 영화 <소성리>의 성취는 여기서 출발한다.

*가로세로-씨줄날줄로 펼쳐지는 소성리 이야기
‘압축적’ 한국근현대사의 소우주가 펼쳐진다

<소성리>를 연출한 박배일 감독은 부산지역에서 다큐멘터리 창작공동체 <오지필름>의 ‘일개’ 감독으로 활동하며 밀양 송전탑 투쟁을 담아낸 밀양 연작1들로 주목받은 차세대 다큐멘터리 작가이다. 밀양 연작들을 통해 ‘할매’들의 이야기를 화면에 담는데 특출한 솜씨를 보여준 감독의 편집과 연출능력은 <소성리>에서도 빛을 발한다. 그러나 단순한 테크니션이 아니라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의식이 철저히 결합한다. ‘할매’들의 삶과 일상이 정교하게 결합하면서 그녀들의 소소하지만 울림이 있는 역사가 드러나고, 중반부부터 본격적인 사드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그 개인사(들)은 온전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드 투쟁으로 ‘화학적’으로 결합한다.

(주로 시각적으로 묘사되는) 한편에서는 평화로운 소성리 마을의 자급자족 이상적 농촌풍경이 펼쳐지고, (반대로 청각적으로 들려오는) 다른 한편에서는 ‘할매’들의 인생역정과 고단했던 삶들이 해방 전후부터 한국전쟁을 전후하는 이념대립의 껍데기를 둘러쓴 살육과 혐오, 차별의 역사를 증언한다. 천연덕스럽게 ‘다큐3일_전원일기 특집편’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가끔 슴슴히 ‘그녀’들이 들려주는 과거사의 편린들을 듣는 순간 관객은 서늘함을 느끼며 얼어붙는다.

▲[사진=영화 ‘소성리’ 스틸사진’]
그렇게 작품은 중반부를 지나면서 격렬해지기 전까지 지독하게 감질나는 ‘예열’과정을 거친다. 단순하게 사람 사는 이야기를 통해 사드 반대 투쟁의 당위와 정당성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보여주지 않기’, ‘드러내지 않기’를 통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연출은 감독이 ‘착하기만 해서는’ 쉽사리 선택하기 어렵다.

감독이 ‘예술’하겠다는 고집을 부린 것 아닐까?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소성리>를 만든 박배일 감독과 오지필름, 그리고 작품 마무리 자막에 등장하는 ‘미디어로 행동하라’ 그룹으로 모인 여러 독립다큐멘터리 작가들은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성주 투쟁에 결합한 이들이다. ‘할매’들이, ‘연대자’들이 여러 차례 사드 저지 현장에서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당하며 끌려 나가고 잡혀가고 다치는 분노의 현장에서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분루를 삼키며 카메라를 들었던 이들이 얼마나 소성리의 진실을 알리고 싶겠는가.

그 충동을 억누르고 소성리와 사드 반대 투쟁에 ‘역할’을 다 하기 위한 최적의 방식은 무엇일까 고민해온 결실이 바로 관객의 선입견을 뭉개주는 <소성리>의 표현방식으로 드러난 것이다.

저 평화롭게 살아가는 할매들이 왜 ‘투사’가 되어야 하는가? 혹은, 단지 선거 때마다 (여러 이름으로 둔갑하지만 본질은 반세기 넘게 변한 적이 없는) 극우보수정당에게 ‘묻지마 1번’으로 투표해온 답 없는 TK가 아니라 이념대립이라는 기만 속에 국가폭력에 평생을 당해온 피해자들이었네? 세상에나, 우리가 뭘 좀 잘 알고 말해야겠네?! 라는 효과를 만들기 위해 감독은 치열하게 최적의 방식을 탐구했고, 가장 적절한 방안을 찾아냈다고 생각한 결과물이 <소성리>인 것이다.

작품을 아직 안 본 이들을 위해 (입이 근질근질거리는 것을 억누르고) 구체적으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내용을 이야기하지 않겠다. 직접 눈과 귀로 확인해보시라. 단순한 사실 전달이 아니라 영화를 관람하는 행위가 지적 학습과 토론의 장으로 관객을 이끄는 경험을 <소성리>는 제공하거나 혹은 제공하려 성실하게 노력한다.

▲[사진=영화 ‘소성리’ 스틸사진’]
*21세기에 부활한 ‘서북청년단’의 실재하는 유령,
‘국익’과 ‘안보’라는 이름의 야만을 보여주다

중반이 되면서 관객 앞에 펼쳐진 화면은 대부분이 기대하고 예상했었을 풍경으로 전환된다. 직접 사드 저지 투쟁에 참여했거나 관심을 갖고 뉴스와 영상으로 접했을 이들에겐 익숙한 이미지들, 힘없는 시위자들을 질질 끌어내는 경찰과 이를 재미난 구경거리로 촬영하는 미군들의 오만함, 절규하는 시위자들의 아우성, 그리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드배치 찬성 집회, 사드 문제만큼은 적당히 넘어가고픈 새 정부의 고뇌들이 펼쳐진다.

자주 본 장면들인데 감독이 치밀하게 설계한 구조 때문에 ‘할매’들이 화면에서 펼쳐보인 ‘구술史’ 덕분에 그 장면들은 식상하지 않고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농촌의 일상과 그 속에 감춰왔던 이야기하지 못한 고단한 과거사의 대비는 현재의 전쟁 같은 투쟁 상황 속에 녹아 들어가기 때문이다. 특히 중후반부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드 찬성론자들의 집회 풍경 속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무리들, 21세기에 부활한 ‘서북청년단’의 이미지는 보는 관객들에게 극한으로 강렬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역사 속에 피상적으로 소개된 ‘서북청년단’, 심지어 미화되거나 과거의 존재로 희미해져 가던2 이 정치깡패 집단이 아직도 존재하며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와 자신들이 신앙처럼 신봉하는 미국과 남한 국가를 위해 현실의 폭력을 휘두르려 포효하는 장면은, 이제 단순히 관객들에게 ‘뭔가 모자란 사람들’ 또는 ‘입금되면 움직이는 무리들’이 아니라 과거사에 기록된 학살과 테러가 자연스레 겹쳐지는 공포로 변모한다.

▲[사진=영화 ‘소성리’ 스틸사진’]
이들 집단은 경찰이 물리적으로 소성리 주민들과 이들을 차단하지 않는다면 당장 과거의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물리적 폭력을 휘두를 결의로 가득 차보이며, 관객들로 하여금 끔찍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할매’들이 60~70년 전에 겪었던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관객들이 제멋대로 넘겨버렸던) ‘공포’가 재현되는 것이다. ‘관제 데모’를 하는 이들이 사드 반대 투쟁에 맞불작전을 감행하고 제 분을 참지 못해 언어/물리적 폭력을 시도하는 것을 공권력은 방조하거나 이용하는 풍경들은 해방 이후로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 전반에서 펼쳐졌던 냉전시기 이념대립을 빙자한 기득권층의 선동과 학살, 탄압들에서 공통된 풍경이었다.3

이들은 절규하듯 내뱉는다. ‘국익’과 ‘안보’를 위해 소성리 주민들이 희생해야 한다고. 평생을 국가를 위해 희생해온 ‘할매’들의 기구한 생애를 전반부에서 지켜본 관객들이라면 이 순간 울컥하는 분노를 느끼게 된다. 대체 무슨 자격으로 국가는 소성리 주민들에게 더 이상의 희생과 양보를 요구할 수 있냐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대체 왜 이놈의 나라는 국가의 구성원들을 지켜주지는 못하면서 늘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느니 국익을 위해 포기하라느니 강요와 협박만 일삼는지 궁금해진다.

감독은 정확히 이 지점을 노렸다. 그러한 국가의 강권이 안 먹히는 순간 국가는 폭력집단으로 민낯을 드러낸다. 경찰의 곤봉이건 군대의 총칼이건 서북청년단의 죽창이건 그 본질은 같다. <소성리>는 국가폭력이라는 공포영화보다 더 끔찍한 존재를 호명하기 위해 참 오랫동안 함정을 파고 덫을 놓았다. 그리고 관객은 제대로 낚이는 체험을 하게 된다.

*오키나와-대추리-강정-소성리로 이어지는 제국주의 최전선,
그 ‘오래된 미래’를 예고하는 이정표를 제시하다

할매들은 계속 구부정한 허리를 끌고 길을 지킨다. 끌려나가고 다시 돌아온다. 감독의 전작인 밀양 연작의 할매들에게서 본 익숙한 풍경이다. 할매들은 그녀들이 겪어온 차별과 배제의 삶을 후손들에게 되 물려주지 않기 위해 기력이 다할 때까지 싸워나가겠다고 다짐한다. 작품을 통해 할매들의 과거와 현재를 본 관객들은 그녀들의 결의가 참임을 믿게 된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최대 교역국인 중국이 그토록 반대하며 신경질을 부려대도 사드 배치는 이미 거의 다 이뤄졌고 뜯어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분하지만 이제 끝난 것 아냐?’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다.

▲[사진=영화 ‘소성리’ 스틸사진’]
하지만 사드 문제는 정치군사적으로 동북아시아 군비경쟁과 신냉전 구도 긴장 고조로 이어지는 갈등의 핵심임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소성리 할매들이 그런 국제정세를 알건 모르건은 중요하지 않다. 할매들의 여생을 건 싸움이 정확하게 핵심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 지점 때문에 사드 반대 투쟁은 사드가 배치되는 것으로 종결되는 싸움이 아니다. 지식이나 학습의 결과가 아니라 할매들의 삶이 한국현대사와 접합되는 순간 할매들은 경험으로 터득해버린 것이다.

그런 경험은 옆 나라 일본에서 내부 식민지로 착취만 당하다 2차 대전 이후 승리자 미국에 제물로 던져진 오키나와, 중국 견제를 위한 신속대응전력 핵심축으로 유용하다고 평가된 평택 대추리와 제주 강정의 과거 (그리고 현재도 유지되고 있는) 경험들과 실상 동일한 것이다. 주유소 옆에서 담뱃불 켜면 당연히 위험하다고 말리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21세기에도 이어지는 냉전의 거짓 신화는 맥아더를 보살처럼 섬기는 무속신앙처럼, 미국을 과거의 사대주의처럼 대국/천자국으로 받드는 맹신으로 여전히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오히려 이 사회의 기득권층, 식자층일수록 거기에 더 깊숙이 잠식되어 있음에도 이를 깨닫지 못한다. ‘할매’들은 이미 저 멀리 나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 부분에서 할매들의 고단했던 개인사(들)은 동북아시아에서 냉전시기를 겪으면서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연작 중 부제인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처럼) 보편적인 민중사 기록으로 자리를 잡는다.

▲영화 ‘소성리’의 박배일 감독

박배일 감독은 할매들의 삶 속에 감춰졌던 한국현대사의 어두운 기억을 호출하고, (그녀들이 별 도움 없이 어렵게 일궈온) 평화로워 보이는 일상을 파괴하는 국가주의와 군사주의의 폭력을 보여줌으로써 국가의 존재의의를 반문하고, 군사세계화와 냉전 구도가 과연 할매들에게만 삶을 건 문제인지 성찰할 것을 관객들에게 요구한다.

관객은 비록 영화를 보는 행위가 시험을 치거나 숙제하는 것과는 다른 성격일지언정 상당히 흡사한 고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체험들은 멀티플렉스에서 킬링타임을 위해 할리우드와 씨제이의 블록버스터를 보는 것과는 같으면서도 무척 상이한 경험일 것이다.

<소성리>를 보고난 몇몇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데에는 다양한 방식이 가능하며, (한국의 독립다큐가 전통적으로 견지해왔던) 영화라는 매체가 보이는 것 외에 소외된 이들 혹은 공간을 비춰주는 역할로 공공성을 지닌다는 작은 ‘진실’을 공유할지도 모른다. 투쟁에 연대하는 수많은 독립다큐멘터리 작가들이 지금도 현장을 지키고 있으며 이들 각자에게 더 많은 주목과 지원이 절실하지만 특히 박배일 감독과 오지필름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러한 독립다큐의 역할과 효과에 대한 2017년 현재시점에서 우뚝 솟은 한 정점으로서 <소성리>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그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 나가며

<소성리>의 대구경북지역 첫 상영4은 12월 13일(수) 저녁7시30분,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에서 대구사회복지영화제 주최로 이뤄질 예정이다. 일회성 상영이 아니라 이후 지역에서 가능한 많은 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 작품을 접할 수 있는 ‘촉매’로 기획하는 상영회이니 많이들 보러와 주시라. 지역 첫 상영이라고 부산에서, 소성리에서 어려운 발걸음 할 박배일 감독과 작품에 출연한 소성리 주민들에게 작은 힘을 보탤 수 있도록…… <소성리> 상영회가 연대와 우애가 어우러지는 찰나의 순간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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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밀양전>(2013), <밀양아리랑>(2014) 2편이 완성되었으며, 3부가 될 차기작은 1-2부와는 다르게 극영화로 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2. ‘서북청년단’과 해방전후 정치깡패들에 대한 대표적인 미화로는 드라마 <야인시대> 2부에서 김두한과 주변인물들이 있으며, 현재의 청년-장년 세대는 이런 이미지로 그 존재들을 자연스럽게 연상하고 있다. 반대로 이들 집단의 ‘백색테러’를 담은 영상작품은 독립다큐 <레드툼>(2013, 구자환 감독) 정도가 있지만 웬만한 품을 들이지 않고는 접하기 어려운 현실.
  3. 인도네시아의 공산당 대학살은 <액트 오브 킬링>과 <침묵의 시선>(각 2012, 2014,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 대만의 게엄령 치하 풍경은 <비정성시>(1989, 허우샤오시엔 감독) 등의 영화에서 간접체험할 수 있다.
  4. 작품의 배경인 소성리 마을에서 진행한 주민 대상 상영은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