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지루함과 싸우는 것 /변홍철

[기고] '박근혜 명예훼손 사건' 항소심 공판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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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2 17:06 | 최종 업데이트 2017-12-12 17:06

[편집자 주=이 글은 ‘박근혜 명예훼손 사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변홍철 씨 페이스북 글입니다. 당사자 동의를 얻어 뉴스민에 게재합니다.]

소위 ‘박근혜 명예훼손 사건’ 항소심(대구지법 제1 형사부 임범석 판사) 두 번째 공판이 모레, 12월 14일(목) 11:30, 대구지방법원 신별관 202호에서 열린다. 지난 10월 19일 항소심 첫 공판에서 재판부가 우리측 변호인의 요청에도 ‘결심’을 하지 않고 한 차례 더 기일을 잡겠다고 해서 또 시간을 끌게 된 것인데, 이번에는 제발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번 내가 준비했던 변론이다. (관련 기사=비판 전단 뿌려 ‘박근혜 명예훼손’ 시민 3명 항소심 1년10개월 만에 열려)

아직도 이런 변론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딱한 노릇이지만, 민주주의는 (여러 의미의) 지루함과 싸우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기억하며, 다시 마음을 곧추세운다.

▲2017년 10월 19일 항소심 재판을 앞둔 박성수(가운데), 변홍철(오른쪽), 신모(왼쪽) 씨.

***

재판장님

제가 1심에서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은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합리적이고 균형 있는 판단으로써, 무죄를 선고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2015년 2월 16일, 당시 새누리당 대구시당 앞에서 배포하였던 전단지에서 다루었던 내용, 특히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씨의 헌정유린과 국정농단 등에 대해 더 이상 길게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씨는 이미 이 나라의 주권자인 국민들의 민의에 의해 정치적으로 심판받았고, 헌법재판소의 적법한 절차에 따라 대통령 직에서 ‘파면’되었습니다.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그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자신의 죄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법원의 권위마저 무시하고 있지만, 법원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박근혜 씨의 범죄행위에 대해 합당한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저의 행위의 정치적 정당성에 대해서는 재판장님도 충분히 공감하실 것으로 감히 확신합니다.

다만 덧붙이고 싶은 것은, 우리 헌법상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와 국가기관 및 공직자에 대한 형법상의 ‘명예훼손’ 문제가 이번 재판을 통해 합리적으로 다투어지고, 정당하게 환기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의견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공화국 시민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가지는 권리이자, 민주주의의 필수불가결한 기본권입니다. 특히 자유민주국가에서의 표현의 자유는 다른 기본적 인권과 비교하여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헌법재판소도 표현의 자유가 “민주체제에 있어서 불가결의 본질적 요소”임을 인정하고 “사회 구성원이 자신의 사상과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민주사회의 기초이며, 사상의 자유로운 교환을 위한 열린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민주정치는 결코 기대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1998. 4. 30 선고 95헌가16 결정 참고)

또한 공직자에 대한 비판이나 풍자를 했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민주적 기반을 훼손하므로 형법상의 명예훼손죄를 삭제하라고 2011년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한국정부에 이미 권고하였던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0년 한국의 표현의 자유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프랑크 라뤼 특별보고관이 한국을 공식방문 조사한 결과는 2011년 17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보고서로 채택했습니다. 당시 광우병 의심 미국산 쇠고기 관련 보도를 했던 PD수첩 제작진이 체포되고 기소되는 등 명예훼손죄로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한 일들을 조사했습니다.

-프랑크 라 뤼(Frank La Rue), 의사와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에 대한 특별보고관 보고서, 2011년 3월 21일 배포, 대한민국 실태조사 보고서 (발췌)

28. 명예훼손이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형사상 범죄로 남아 있어 본질적으로 가혹한 조치이며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부당하게 위축시키는 효과를 야기한다는 점에 우려를 표한다. 개인은 체포, 재판 전 구속, 고비용의 형사 재판, 벌금부과, 투옥, 전과자 낙인의 위협을 늘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특히 민법에 명시되어 있는 개인의 명예에 대한 손상을 시정하는 데 있어 비형사적 제재(non-criminal sanctions)의 적정성에 비추어 볼 때 형사상 제재는 정당성이 없다. 따라서, 특별보고관은 대한민국 정부가 형법에서 명예훼손죄를 삭제할 것을 권고한다.

89. 명예훼손이 민법에서 금지되고 있음에 비추어, 대한민국정부는 국제적 동향에 맞추어 형사상 명예훼손죄를 형법에서 삭제하여야 한다. 특별보고관은 공무원과 공공기관들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모든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직은 견제와 균형의 일환으로서의 대중에 의한 감시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또한, 특히 공무원, 공공기관 및 기타 유력 인사들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여 비판적 의견을 수용하는 문화를 조성할 것을 대한민국 정부에게 촉구하며, 이러한 문화는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다.

재판장님, 우리 헌법의 정신을 다시 한번 살피고, 아울러 인권 신장과 민주주의를 위한 국제사회의 엄중한 권고를 충분히 고려하시어, 저를 비롯한 피고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헌법을 유린한 범죄적 정치권력을 평화적인 수단으로 심판하고, 나아가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함으로써 국제사회에 아름다운 모범을 보여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높은 수준을, 법원이 다시 한번 확인하는 판결을 내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2017년 10월 19일
피고인 변홍철
대구지방법원 제1 형사부 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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